대를 이어야 할 며느리가 딸만 낳은 상황에서 피임약을 복용하고, 언덕에 몸을 던져 애를 유산시키는 갈등요소는 그 당시 여성의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출산’이 빈부의 격차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해석되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남자들이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피임상식인 ‘콘돔’이 ‘감’에 우선시되어 배제 되는 상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잘살아보세>가 가지는 감성코드가 단순히 지난 시절의 향수를 이야기 한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잘 살기 위해 산아제한을 했던 그 당시 상황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얘기를 함축하고 보여주는 지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세련된 서울말에 대학까지 나온 박현주(김정은)요원이 마을 유지인 강 이장(변희봉)의 땅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는 변석구(이범수)와 함께 계몽운동을 벌이는 것까지는 <잘 살아보세>가 지닌 표면적 스토리를 잘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대적 사고방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박대통령을 만나 동향임을 어필하고,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와 경상도 사투리로 변화하는 영화 중반이 넘어서면 우리는 그 당시 남아있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부딪히는 그들이 벌이는 과장된 ‘계몽’이야 말로 가장 비인간적이고 위험한 ‘사상’임을 깨닫게 된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휴먼 드라마의 정점을 보여주는 영화 <잘살아 보세>는 국민모두가 잘살기 위해 애썼던 그 시절,물질적 혹은 사회적으로 보상받았던 일들이 개인의 삶에는 정작 어떤 풍요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더불어 더 이상 그들만한 적역이 없을 정도인 배우들의 열연은 자칫 코미디로 묻힐뻔한 이 영화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할 정도로 절절하다. 마냥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웃음과 더불어 나름의 ‘문제의식’을 깨닫고 나오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006년 9월 29일 금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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