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밤 거리를 깔깔대며 몰려다니던 여자들이 남자의 갈비집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왁자하게 들어서더니 영업 끝났다는 말도 무시하고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는 그녀들. 뚱해진 남자를 불러 앉히더니 그 중 가장 예쁘장한 여자가 동그란 눈알을 데굴거리며 말을 던진다. “나 아저씨 꼬시러 왔어요.”
영화 <연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은 이 한 마디로 시작된다. 흥미로운 시작이다. 남자는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고 연애는 시작된다. 남다르게 시작했으니 그들의 연애도 당연히 남다르다. 내뱉느니 욕설이요, 애정표현은 싸움으로 한다. 싸우고 욕하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은 룸살롱과 방석집이 채우고, 술주정과 고성방가가 화면 속에 넘쳐난다. 적어도 영화 초반까지는 이 배설에 가까운 직설적 묘사가 <연애참>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20여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반복이다. 그들의 악다구니와 싸움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등장인물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술집과 룸살롱, 방석집을 오간다. 이야기 진행은 전형성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정서는 철 지난 ‘호스티스 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소리지르며 욕을 하고 몸을 내던져 부딪히면서 그들의 사랑은 처절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할 뿐이다.
격렬하긴 한데, 감정이입할 틈 없는 관객으로서는 반복되는 아수라장이 지루하기만 하다. 그나마 집중도라도 높으면 태생적으로 처절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연애에 측은지심이라도 느껴보겠는데, 너무 많은 인물들을 우겨 넣으려는 감독의 욕심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주변인물 묘사에 할애된 수많은 컷들은 그저 주인공의 연애담을 비틀거리게 만들 뿐, 희화화된 수컷의 적나라한 배설을 목격하는 불쾌감 이외엔 별다른 감흥도 낳지 못한다.
가뜩이나 철 지난 이야기를 더욱 예스럽게 만드는 것은 영상이다. 영화는 고답적인 이야기를 위해 일부러 선택했다고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고풍스러운 영상을 자랑한다. 시대배경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다. 뜬금없는 줌-인, 줌-아웃은 드라마의 흐름을 계속 뒤흔들고, 전형적인 타이밍의 카메라 패닝은 실소를 부추긴다. 결정타는 판타지 장면이다. 죽자고 싸운 뒤 술 몇 잔에 남자 품에 안겨 “첩년이라도 좋아!”를 외치던 여자가 ‘난 괜찮아’를 부르면서 자신의 신혼여행을 상상하는 장면은, 드라마적으로도 난데없는 판타지의 난입이라 당황스러운데, 촬영 또한 지극히 옛스러워 민망할 지경이다. 스카프에서 여자의 얼굴로 수평이동한 카메라는 부감과 클로즈업을 오가며 오래된 광고화면의 냄새를 풍긴다. 수 십 년 전 눈밭에 누워 <별들의 고향>을 바랐던 ‘경아’가 무색하도록 넘쳐나는 시대착오. 난감하다. 참을 수 없긴 한데 가볍지도 않다.
대체 <파이란>의 강재가 보여줬던 징글징글한 삼류인생의 애환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차라리 2.35:1로 보는 <사랑과 전쟁>의 선정적 재미라도 있었다면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견딘 것이 이토록 허무하지는 않았을 텐데. 적어도 20년은 늦게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마초적 호스티스 판타지 앞에서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걸까? 당혹스러울 뿐이다.
글: 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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