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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필모그래피는 참으로 다양하다. 1990년 <물장구 치는 금붕어>로 데뷔한 이래 10년이 넘는 지난 시간 동안 그는 매년 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여왔으며, 때론 평범한 듯 때론 엉뚱한 듯, 조용히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의 연기는 오랜 시간 동안 그를 기다려온 한국의 팬들까지 만들어냈다. 오시마 나기사(고하토), 기타노 다케시(자토이치), 구로사와 기요시(밝은 미래), 이와이 슌지(피크닉), 고레에다 히로카즈(환상의 빛) 등 일본 현대 영화의 명감독들과의 작업을 거쳐 왔을 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더욱 왕성한 활동과 함께 허우 샤오시엔 감독(카페 뤼미에르)을 비롯해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그리고 펜엑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이자 강혜정과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보이지 않는 물결> 등 명실공히 아시아로 뻗어나가고 있는 배우로 자리잡은 아사노 타다노부. 그가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되는 <녹차의 맛><란포지옥>의 무대인사로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7월 6일 한국을 찾았다.
6일 오후 3시, 압구정에 위치한 스폰지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 이제 막 한국에 도착한 아사노 타다노부가 덥수룩한 수염에 모자를 눌러쓰고,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회견장에 들어섰다. 이날 진행된 기자회견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한국에 온 소감은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예전에 부산에 왔던 후 몇 번 요청은 있었지만 계속 시간이 맞지 않아 못 왔었다. 이번에 오게 되어서 기쁘다.
이번에 상영되는 <녹차의 맛>과 <란포지옥>에 대한 간단한 소개
<녹차의 맛>은 시골의 어느 가족에게 일어나는, 가족 각자가 겪는 평범하고도 신기한 체험을 그린 영화다. <란포지옥>은 에도가와 란포라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4명의 감독이 각자 개성을 살려 찍은 신선한 기획으로, 나는 각각의 작품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녹차의 맛>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등학생의 삼촌으로 그 고등학생 어머니의 남동생 역할을, 그리고 <란포지옥>에서는 4가지 에피소드에 따라 역할이 다른데, 그 중 두 편에서는 아케치 고코로라는 탐정을 맡고 있으며 다른 두 편에서는 조금 특이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다양한 영화에서 여러 역할을 선보여왔음에도 늘 아사노 타다노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배우가 하고 싶어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서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 배우가 정말 하고 싶어서 거기 빠져 있다 보면 본래의 자신이 보이지 않지만 약간 거리를 두면 자기 자신의 존재가 보이니까 그게 드러나는 것 같다.
작품 선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
재미라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역시 자기가 읽었을 때 각본이 재미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리고 감독이 누구인지도 선정 기준이 된다.
<녹차의 맛>에서 나오는 노래와 그 녹음 장면이 재미있었다. 특히 녹음 장면에서 당신의 표정이 재미있는데 촬영 에피소드는 없는지
사실 그 장면이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좀 궁금했다. 나 역시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노래야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때 표정은 연기라기 보다는 솔직히 그 노래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이다. (웃음)
외국 감독들과 많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외국에서 일할 때 가장 곤란한 것은 음식인 것 같다. 쉽게 질려버리니까 역시 밥이 먹고 싶어진다. 그리고 좋은 점이 있다면 역시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현장에서 무슨 문제가 생겨도 잘 모르니까 같이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좋은 것 같다. (웃음)
명실공히 아시아의 배우가 되었다. 외국 감독들이 당신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까 답과 비슷하지만 역시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다른 배우들은 이건 뭔지 저건 뭔지 자꾸 물을만한 것도 그냥 웃고만 있으니까 이 녀석은 쓰기 편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웃음) 특히 허우 사오시엔 감독은 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자유분방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준 감독이다. 그는 굉장히 엄격한 감독이고 그와의 작업은 나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는데 그 작업을 통해 다른 외국 감독들과의 작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스로 아시아의 배우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아시아의 배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렇게 봐주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아시아의 배우든 일본의 배우든 어떻게 봐줘도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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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가죽…>은 이시이 감독의 첫 영화로, 물론 감독 역시 찍고 싶어했던 영화였지만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데뷔작으로 찍는 것은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원작이 있으면 자유롭게 감독이 원하는 것 전부를 보여주기 어렵다. 그 뒤에 <party7>에서도 함께 작업했는데 그 작품에서 이시이 감독도 보다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었고 감독이 쓴 내용이 나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녹차의 맛>을 찍을 때도 역시 서로 신용할 수 있어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녹차의 맛>으로 부천을 방문했던 이시이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냥 걸어 다닐 뿐인 것 같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연기가 사실은 더 많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연기 스타일은 어떤가
최근에는 역할에 대해 머릿속으로 생각해보거나 연구해볼 때도 있지만, 예전에는 연구를 하기 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해보곤 했다. 그런 점이 현장에 나갔을 때 자연스러운 연기로 나온 것 같다.
일본 배우들 중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90년대 나온 배우로, 현재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 중 중간 세대쯤인 것 같다. 어떤 위치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배우들과 달리 영화만 하고 있으니까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되는 두 편의 영화에서 사실 선보이는 것은 네 가지 역할이다. 가장 연기하기 힘든 역과 본인과 닮은 역은 무엇이었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란포지옥>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에피소드 <화성의 운하>로, 아이슬랜드에서 찍었다. 보면 알겠지만 거의 전라로 등장하기 때문에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다.
나와 닮은 부분이 있는 것은 <녹차의 맛>의 삼촌 역과 <란포지옥>의 <벌레>에 나오는 역할. 연기하기 좀 수월한 편이었다.
연기가 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인 느낌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배우가 되려고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연극이나 텔레비전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연극 무대의 배우가 하는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 조차 굉장히 과장된 느낌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평소 생활에 그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처럼 평소대로 하는 것이 관객 입장에서도 신용할 수 있는 느낌을 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왔다. 그래서인지 <포커스>라는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 적이 있는데 그 작품이 마음에 든다.
드라마를 하지 않고 영화만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영화는 내용이나 감독이 모두 시작 전부터 결정되어 있는데 반해 드라마는 촬영 직전에 모든 게 결정되고 시작할 때 내용 역시 끝까지 알 수 없다. 그 점이 걸려서 드라마는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하지 않을 예정인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할 마음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특별히 계획은 없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 있는가
사실은 일본영화든 외국영화든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우연히 권상우와 최지우가 나온 드라마(<천국의 계단>)를 봤다. 재미있었다. 최지우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용이었는데, 신선하더라. 한국인과 일본인은 그냥 보면 똑같아서 일본 드라마인가 하고 봤는데 더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 드라마인가 싶어서 보니 한국 드라마였다. 닮아 보이면서도 굉장히 다른 내용이라 신선했다.
지금까지 작업한 감독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감독이 있다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부산에도 함께 왔었던 소마이 신지 감독이 기억에 남는다. 그와의 작업은 역시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였다는 동기를 부여해준 작업이었다.
특별히 인디영화쪽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대중적 영화에 출연해볼 생각은?
뭐든 해보고 싶지만 스스로 납득이 안 가는 영화는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대중적 영화에서 제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웃음)
일본 인디영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 자신이 인디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라서 한국에서의 뜨거운 반응이 나도 무척 반갑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오히려 내가 알고 싶다.
취재_김혜민 기자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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