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호러영화 <여고괴담2> 이후 한동안 두문불출했던 김태용 감독이 간만에 아주 간만에 수상한 영화 한 편을 들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가족의 탄생>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신파와 코미디로 승부를 걸었던 <간큰가족>이나 <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콩가루 집안의 이면을 들춰낸 <바람난 가족> 비스무리한 영화로 나름 생각했더랬다. 근데 그것도 아니다. 일종의 요령부득인 셈이다. 글로써는 당최, 이 영화의 정서를 말하고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는 말씀이다. 드라마틱한 사건을 뒤로하고 특별한 관계로 묶인 이들의 감정을 조심스러우면서도 예민한 시선의 카메라에 담아 보는 이에게 느껴보라고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것두, 기승전결에 따라 진행되는 게 아니라, 별반 관계없는 듯한 하지만 분명 관계있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영화는 구성돼 있다.
혈연에 속박된 가족이 아닌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으로 엮여있는 내밀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관계' 혹은 '연애'에 대해 <가족의 탄생>은 말한다. 지 엄마뻘 되는 여자를 연인이라며 소개하는 남동생이 불쑥 찾아오질 않나, 대관절 어떠한 애증의 발로인지는 몰라도 징징대는 엄마를 딸이 매몰차게 다그치는 역할이 전도된 모녀가 등장하지 않나, 친절한 성격 탓에 만인의 연인이 된 여친과 그로 인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소심한 삐돌이 남친이 나오지 않나, 뭐 이런 범상치 않은 인물들의 관계를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아 소개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은 마지막 이야기에서 기묘하게 죄다 마주하게 된다.
지리멸렬한 삶과 관계 속에 내쳐진 등장인물들은 마냥 고단한 일상에 묻혀 지낼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그 놈의 피보다 진한 정으로 아옹다옹하면서도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상처도 받고 생기도 얻는다. 이내 후회하면서도 한 뼘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 사이기에 사소한 일에 원망하고 야속해하는 주인공들의 솔직한 감정이야말로 우리네 자화상임을 고두심 엄태웅 등 쟁쟁한 배우들의 호연을 밑천삼아 영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피가 섞여든 안 섞여든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종착점에 이르러 행복스런 대안가족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 딱 포개지지 않는, 풍경 역시 전시한다. 사회의 금기와 경계가 무시되고 지워지는 소박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낯선 형식을 빌려 영화의 정서와 이야기를 전하기에 <가족의 탄생>을 대중의 입맛에 맞는 영화라 볼 수는 없다.
시쳇말로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라며 속으로 되 뇌일 수도 있다. 하나, 각박한 세상으로 인해 무뎌진 감성을 살짝 열어젖히고, 영화가 흘려보내는 소리와 이미지에 좀 더 다가선다면 남다른 감정이 이입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 헤아려진다.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대안가족이든 연인이든 남매든 아버지가 부재한 영화의 중심에 찌질이 남자를 다독이며 여성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호러장르 안에서 과도기인 놓인 소녀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여고괴담2>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전작에 이어 캐릭터들, 특히 여성의 감정과 찰나적 표정을 세밀하게 길어 올리며 보는 이의 마음을 묘하게 흔드는 살맛나는 수작이다.
● 이제야 말하련다.
엄태웅의 연상녀로 나오시는 우리의 고두심 누님! 상당한 미모를 영화에서 자랑하신다. 근데 연상녀 캐릭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다. 곽지균 감독의 1992년작 <이혼하지 않은 여자>에서 장군의 아들 박상민과 이미 연인으로 분한 적이 있었더랬다. 재밌는 건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고두심 박상민의 키스신 타임이 역대 한국영화 최장시간이라며 잠깐 동안 화제가 됐었다.
2006년 5월 11일 목요일 | 글: 서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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