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 ‘중천’은 천인(天人)들이 전생에서의 기억을 지우며 살아간다. 죽은 자들의 공간인 그 곳에서 7일간 7개의 공간을 돌며 49일째가 되는 날 환생 하는 영혼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은 원귀가 되거나 영원히 천인으로 살게되는것이다. 그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때는 통일신라 말기, 현대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청춘 아이콘 김태희, 정우성의 결합으로 화제가 된 영화 <중천 (제작: 나비픽처스)>은 중국 항저우(杭州) 인근에 위치한 헝디엔(橫店) 촬영소에서 마지막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중국 대작 <영웅>과 <무극>이 만들어졌던 이곳은 실제의 80% 규모로 만들어진 자금성과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중국 청명절 도성을 묘사한 그림)를 그대로 재현해낸 거리등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 크기만큼이나 밤 촬영은 엄두도 내지 못한 곳이지만 <중천>의 밤 촬영을 대형 크레인 8대를 설치, 1,200㎾ 분량(한국의 경우 평균100㎾면 충분)의 조명을 동원해 영화 제작최초로 진시황궁 앞 세트를 환하게 밝혀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실내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미용실에서나 볼 수 있는)긴 머리를 둥글게 말아 헤어핀으로 고정한 정우성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오늘 공개된 장면은 소화(김태희)가 지닌 ‘천혼의 영체’를 손에 넣으려는 반추(허준호)와 이를 막으려는 이곽(정우성)의 대결 신이다. 32개의기둥이 나란히 서있는 넓은 공간은 인간의 모든 번뇌가 응축되어 있다는 물의 공간으로 표현돼 고무 부츠를 신은 스태프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을 첨벙거리며 동선을 맞추고 있었다.
<무사>의 조감독으로 있었던 조동오감독의 데뷔작 <중천>은 이미 <비트>,<태양은 없다>,<유령>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정우성, 정두홍 무슬 감독의 팀웍이 더해져 한국 영화계에 보기 드문 판타지 무협 액션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상대배우와 칼을 부딪히며 연습을 하고 있던 정우성이 긴머리를 풀어헤치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자 일순간 현장에서는 긴장이 감돈다.
노려보는 두 배우의 기 (氣)로 인해 물결이 이는 간단한 장면을 찍기 위해 물 바닥 밑에 담궈논 긴 봉을 끄는 스태프 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상하좌우에 위치한 4대의 카메라가 배우의 주변을 돌며 정확한 장면을 필름에 담는 찰나 연이은 NG를 의식한 탓인지 부딪히는 칼을 일부러 크게 떨며 “장난치지마. 웃기잖아”라고 말하는 정우성으로 인해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되었다.
현장 밖에서는 정두홍 감독이 “카메라를 피하지마. 왜 이렇게 튀지? 회전이 빨라서 그런거야. 우성아! 그냥 정면으로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같은 장면을 배우만 달리해서 48컷으로 찍어야 하는 방식이라 빠르게 진행된 이번 촬영은 조동오감독의 ‘컷’소리와 함께 마무리 되었다.
상대 배우의 클로즈업 장면에 뒷모습만 보이는 대역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 탓에 그물의상을 머리에 묶고 현장에 도착한 허준호는 바로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장에 매달릴 준비를 하며 대기중인 김태희와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촬영이 끝난 정우성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너무나 능숙한 모습으로 테이프를 돌려 모니터링 하는 모습은 배우임과 동시에 예비감독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테스트샷이 가장 좋았다는 정두홍 감독의 말에 배우들이 서로의 감상을 자유롭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순제작만 110억원이 투입된 <중천>은 한국영화최초로 디지털 액터 액션장면이 삽입돼 새로운 판타지 영화를 선보임과 동시에 한중일 최고의 스태프들이 참여해 아시아 합작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보인다. 6개월간의 현지 촬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천>은 후반 CG작업을 거쳐 올 12월 개봉된다.
여기 누구보다 ‘잘 나가는’ 세 배우가 있다. 영화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승화시켜 선배 허준호로부터 “물올랐다”라는 평가를 듣는 정우성과 첫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쇄도하는 CF를 뿌리치고 영화에만 올인하는 김태희는 연인의 모습으로 최고의 캐스팅을 선보인다. 선 굵은 연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허준호 역시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드는 보기 드문 베테랑 연기자다. 이승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여자와 그녀를 기억하는 퇴마무사, 그를 최고의 무사로 만들어낸 처용대 수장이란 캐릭터는 영화 안에서 어긋나는 인연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테지만 각자 나눈 얘기는 서로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신뢰로 넘쳐났다. 그들과 나눈 일문일답을 고스란히 공개한다.
중국에서의 영화촬영은 어떤가? 90%이상 촬영이 진행됐는데 소감을 알려달라.
허준호: 작년부터 거의 1년 동안 있었다.(웃음) 음식을 안 가려서 적응할만하다. 사실 나는 액션이 별로 많지 않은데 우성이랑 태희가 많이 고생이지 뭐.(웃음) 내가 해놓은 거를 확인해야 되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되는 찰나 이 작품이 들어왔다. 자기 작품에 절대 만족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고민이 많았다. 첫 대사 칠 때 7가지 버전으로 내놓기도 했었다.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영화다.
정우성씨는 최근에 영화 출연이 특히 더 잦아진 것 같은데…특히 <중천>은 시나리오 구상부터 많은 의견을 반영했다고 들었다.
정우성: 사실 한국배우들 처럼 작품수가 적은 배우들은 드물다. 사실 더 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20대에 청춘영화를 더 많이 했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있을 정도다(웃음) 지금 더 많이 찍고 40대에 후회할 것 같지 않아서 참여하게 되었다. 극중 ‘이곽’은나를 많이 투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똥개>의 철민만이 나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캐릭터를 완성하고 뭐든 한가지를 얻었다고 느끼면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정두홍감독이 사석에서 “액션의 각이 나올 정도로 액션배우로서 손색이 없다”라고 표현하더라.
정: <비트>때는 허리근육이 파열될 정도로 겁 없이 몸을 던졌는데 지금은 여러 액션을 경험하다 보니까 적응하는 시간이 빨라진 것 뿐이다. 와이어 액션은 처음 해보는데 조금만 뛰어도 멀리 나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진짜 멋지더라. 완전 반해버렸다. (웃음)
김태희씨는 영화 초반 와이어 때문에 울기도 했다던데?
김태희:첫 영화라 정신적인 부담이 클 때라 육체적인 힘듦 때문에 운 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액션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났었던 것 같다.(웃음)
사실 두 분은 이번 작품이 처음이라 초반에는 이래저래 어색했을 것 같다.
정: TV에서 처음 본건 <천국의 계단>때였는데 어찌나 눈에 힘을 주던지 내가 데뷔때 듣던 ‘힘들어간 눈’이 어떤 건지 알겠더라. (웃음) 사람과의 교류가 중요한 게 영화라는 장르니까 그 작업을 충분히 즐기길 바랬는데 다행히 잘 받아들이는 성격이었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
김: 드라마에서는 상대배우와의 리허설이나 진행상황이 영화와 많이 달라서 고생했었는데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시고 조언을 해주셔서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중국에 와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연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다. 지금은 영화를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천>속 역할이 1인 2역이라 첫 영화치고 난해한 감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촬영 전에 따로 준비한 게 있는지?
김:평소 무협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읽어본 상태도 아니라 감이 잘 잡히질 않았다. 시나리오에 나오는 용어조차 생소하더라.(웃음) 그래서 <영웅>과 <연인>,><무사>를 참고해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다. 가장 먼저 생각난건 <천녀유혼>이었는데 왕조현씨가 섹시한 캐릭터라면 난 귀여운 아기 이미지랄까. 사실 이런 장르를 언제 다시 해볼까란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허준호씨는 엄밀히 말하면 2세 배우의 1세대 라고 할 수 있는데 나름 의도한대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허: 쉽게 말하면 내가 캐스팅됐을 때 ‘걔 왜 했어?’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사실 방송국가면 ‘영화배우 왔어?’ 영화판가면 ‘탤런트 왔어?’ 하는 소릴 들었다. 후배들에게도 다양한걸 많이 해 보라고 조언한다. 태희에게도 발레연습, 호흡, 연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걸 가르쳐주는 이유도 이쪽이 워낙 갑자기 들어와서 크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영화로 들어오면 힘들어지는걸 알고 있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50대 이후에도 액션이 가능한 배우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더 노력하는 거고.
마지막으로 <중천>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정: 이 작품에서는 관객에게 정우성은 무협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싶다.항상 힘겨운 사랑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귀여운 여인>같은 로맨틱한 역할을 맡고 싶다. 나도 신분상승 좀 해야지.맨날 노비, 백수 이런 것만 했으니.(웃음)
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환상 속에 빠져있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허: 나와 정우성씨를 대결구도로 보시는 분이 많은데 이 영화는 극히 인간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 악의 축은 따로 있다.(웃음) 전혀 새로운 장르로 나올 거라 확신한다.
● <중천>의 현장 사진과 미리 공개된 CG컷!
취재: 이희승 기자(중국-헝디엔)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