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다섯 개 남짓의 상영관에서 현재까지 무려 7만이라는 관객을 동원, 조용한 흥행을 이어나가며 장기 상영에 들어간 영화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로 ‘아는 사람은 아는’ 인상적 영화를 만들어 낸 이누도 잇신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와타나베 아야, 그리고 ‘잘 나가는’ 배우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가 그려내는 게이 양로원의 이야기 <메종 드 히미코>가 바로 그 영화다.
<조제…>를 기억하는가? 츠마부키 사토시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이케와키 치즈루가 굽는 생선이 최고의 이별장면으로 남는 그 영화. 이누도 잇신 감독과 작가 와타나베 아야라는 콤비가 단편소설 하나를 가지고 만들어낸 현실적 사랑이야기는 예상치 않고 찾은 사람에게 영화를 본 후 며칠 동안 한숨을 쉬게 만드는 실연 대리 효과를 체험하게 만든다. 끝이 뻔히 보이는 연애를 포장하지도, 주인공이 죽어버리지도 않아서 신선하기까지 한 영화이며 좋아하게 되었지만 때문에 자주 볼 수는 없다. DVD를 소장하고 있다해도 플레이어에 넣기까지는 또 다른 마음의 준비, 즉 영화가 끝난 뒤 엄습하는 잔잔한 우울을 이겨낼 강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조제…>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뭉쳤다는 이유만으로도 <메종 드 히미코>를 기다렸을 것이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 영화는 흥행성적으로만 본다면 <조제…>의 그것을 뛰어넘는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몇 번씩 보면서 급기야는 옥의 티 찾기까지 하고 있다는 이 시점에서 개인적 기억이더라도 조금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 <메종 드 히미코>에 관하여.
다른 문화와 비교한다면 일본에서 영화 산업은 규모가 작은 편일 것이다. 거기에 자국의 영화가 우리처럼 힘을 얻지 못한 일본에선 흥행 성적도 상영관 수도 –일부 인기 드라마의 극장판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를 제외하곤- 우리 영화들이 요즘 올리는 수치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상황. <메종 드 히미코> 역시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극장, 시네마 라이즈에서 단독으로 먼저 개봉 되었는데, 그 곳에서 무려 1800엔을 지불하고 표를 구입, 그것이 처음이었다.
역시나 사전 정보는 제작진과 출연진의 이름뿐. 오다기리 죠는 지난해 너무 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췄고 그래서 약간 지쳐 보인다(?)는 것과 그가 게이로 나온다는 것. 그리고 시바사키 코우의 등장. 그러나 시바사키 코우에 관해서는 아주 예전에 지인 중 누군가가 “<배틀로얄>에 그 낫 들고 나오는 무서운 애 있잖아” 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이래 어디를 가나 그녀와 낫은 머릿속에 함께 공존해 있었으니… 상상만으로 그녀가 이누도 감독의 영화에 어떤 이미지로 등장할지 쉽사리 연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첫인상에서 단연컨대 가장 큰 수확은 바로 그녀, 시바사키 코우였다. 단역까지도 가능한 한 직접 캐스팅을 한다는 이누도 감독의 영화는 캐릭터들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게 매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검은 상복을 입고 여배우도 이렇게 하면 못생겨 보일 수 있다 라고 보여주는 것 같을 정도로 지나친 무방비(?) 상태로 등장하는 그녀가 연기하는 ‘사오리’가 여배우로서 시바사키 코우의 매력과 가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길 <조제...>에 비해 생소한 느낌을 줄 수 밖에 없는 설정의 <메종 드 히미코>가 과연 한국에서 개봉한다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조제…>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이 영화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서양의 그것과는 또 다른 일본적(?)-‘게이’라는 소재와 함께 <조제…>의 스타일에 비해 더 강화된 판타지적 요소, 이를테면 갑자기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피키피키핏키” 라든가 코스프레, 댄스 장면 등 이런 요소가 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의구심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2.2005년 11월 서울.
몇 달 후 CJ아시아인디영화제 상영작으로 <메종 드 히미코>가 결정, 매진의 벽을 뚫고 드물게 굉장히 성실하고도 민첩한 예매로 티켓을 구입, 다시 한번 이 영화와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서울에서 다시 본다는 것과 함께 이번에는 그로부터 약 1주일 전 <조제…>의 1주년 기념 재상영으로 한국을 찾았던 이누도 감독에게 들은 몇 마디가 뇌리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장애를 가지고 혼자 사는 조제나, 게이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이나, 모두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지금 같은 세계의 경계선 밖에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존재하는 이미지로 그 경계선을 넘어 누군가가 그 쪽으로 가는 내용의 이야기를 계속 하는 셈이에요. (무비스트[인터뷰] 바다가 보고싶다던 '조제' 한국에 오다! 참조)
사랑이라는 것은 –이성, 동성, 연인, 가족 등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조금씩 마주 보는 것…. 서로에게 상냥해지는 것…’임과 함께 이야기는 누구나가 가지고 싶어하는 각자의 ‘욕망’을 담고 있다. 여자인 사오리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소원인 것처럼 ‘욕망’은 인간의 고독과 직결된 개인적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그것은 결국 누군가와의 소통과 이해를 통해 이루어져간다.
<메종 드 히미코>의 사람들이 결국 그 공간 안에서 현실 속의 경계선을 허물고 만나듯이 영화는 결국 누구나 가지고 있을 ‘욕망’을 발견하게 하고 스스로가 정한 현실의 경계선에 묶여 욕망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지기 위한 공간을 제시한다. 그리고 한국의 관객들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영화제 관객들과 함께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순간 마음에 걸렸던 그 장면들은 <메종 드 히미코>라는 영화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되어 있었으니까.
서로를 이해하기,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이성적 노력이나 인내 보다는 마음의 끌림과 일련의 작은 이벤트들의 작용 효과가 더 크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댄스씬이나 애니메이션 등 돌발행동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은 영화가 현실과 달리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이벤트인 셈이다. 지나치게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예전의 <조제...>가 마지막에서 현실의 경계를 너무 현실적으로 보여줘서 마음을 적적하게 했다면 이번 <메종 드 히미코>는 적어도 그 경계를 넘어가기 위한 영화적 판타지를 심어준다. 다양한 캐릭터의 인간적 고뇌는 관객에게 공감을 주고 영화의 판타지는 관객들에게 동화된 행복감을 선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영화를 몇 번씩 다시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다시 몇 달 후 <메종 드 히미코>는 정식으로 개봉했고 조용하지만 뜨거운 지지를 얻었으며 그 성과에 따른 감독과 주연배우의 내한소식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흥행성적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 영화가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은’ 영화 만나기가 나날이 힘들어지고 능동적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사람들에게는 또 한번 이 영화가 예뻐보이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물론 어떤 영화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지만, 밝히건대 이 글은 선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쁜' <메종 드 히미코>를 지지하려는 마음을 담은 글이다. 사실 그런 배경을 접어두고서도 <메종 드 히미코>는 보기 드물게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는 영화이기에 충분히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지만 말이다.
나를 찾아온 젊고 아름다운 남자, 그는 아버지의 연인이었다.
그는 배바지를 입고 있었고, 아버지는 꽃무늬 패션을 선호하며 나는 화장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늘 화가 난 듯한 여자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메종 드 히미코’를 찾아가면 갈수록 그 곳은 모두에게 편안한 각자의 공간이 되어 줄 것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예쁜' 영화다. 길게 얘기했지만 요점은 그것이다. 일단 시선을 돌려 보면 발견되는 그런 영화, <메종 드 히미코>를 계기로 '예쁜' 영화가 더 많이 발견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