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영화제] 진정한 친구들이 강력추천한 '베니스에서의 죽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무비스트가 고른 알짜배기 초이스 |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 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무비스트가 고른 알짜배기 초이스 |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 이지선 영화칼럼니스트
시네마떼끄가 운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는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줄어든 관객수도 문제겠지만 영화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 본질적인 어려움에 다다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들이 영화를 끝끝내 삶에서 놓지 않는 이유는 카메라 안에 담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약에 취하듯 영화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란다. 시네마떼끄를 운영하는 진정한 친구들이 선택한 영화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명작 <베니에서의 죽음>이다.
당 영화 분명 현대의 관객들에게는 어딘가 모자란 재미를 선사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택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의 아름다움을 궁극의 영화적 ‘재미’로 승화했기에 관객들에게 한 번쯤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시네마떼끄의 든든한 지원자이기를 바라마지 않는 무비스트가 초이스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아름다움은 함정이다. 극치의 미(美)는 혹세무민의 다른 이름이며, 그것은 그리하여 보는 이에게 함정이 되고 만다. 멀게는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던 황진이의 경우가 그러하고, 가까이에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호흡장애를 가져다 주는 장동건, 강동원이 있다. 그들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취한 사람들은 ‘불온한 욕망’이라는 함정에 빠져 넋을 잃고, 할 일을 잊고, 나아가 생을 잊기도 한다.
루키노 비스콘티 만년의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이러한 극치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토마스 만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휴양지로 요양을 왔던 음악가 구스타프 아센바흐가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에게 반해 기이한 열정에 사로잡힌 뒤,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 이야기를 그린다. 현실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혹적인 소년의 외모는, 품위와 도덕이 예술의 근간이라고 믿었던 노년의 예술가를 완전히 흔들어 놓는다.
‘예술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는 친구 알프레드의 말처럼, 소년 타지오의 아름다움은 노력으로 근접할 수 없는 예술적 차원의 것이었다. 그 극치의 아름다움 앞에 도덕과 품위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다. 아센바흐는 모호한 눈길만 던지는 소년의 주변을 맴돌고, 금기된 욕망으로 인한 수치심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현실만을 자각케 한다. 아센바흐의 도덕적 강박이 ‘예술’ 그 자체인 타지오로 인해 뿌리부터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현재와 회상을 오가며 예술의 악마적 본질에 대한 고민, 당대의 질병에 대한 공포, 욕망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영화는, 본질적 아름다움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답게 또한 탐미적 영상을 자랑한다. 고전주의 회화작품을 연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상은 하여 이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으며, 영화의 시작부터 드리운 죽음과 욕망의 그림자는 밀도있는 복선이 되어 대단한 사건이 없는 진행임에도 관객이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든다. 또한 영화의 스코어 역할을 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과 4번은 불안해서 더욱 아름다운 작품의 정서를 한층 고양시킨다.
어쩌면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탐미적 욕망을 가진 관객에게 하나의 함정이 될 지도 모르겠다. 소년 타지오가 아센바흐에게 있어서 욕망의 대상이자 생의 함정이 되었던 것처럼, 비스콘티가 선사하는 느리고 아름다운 영상과 이야기는 잠자고 있던 관객의 미적 욕구에 불을 당길 지도 모른다. 게다가 수천 명을 오디션한 끝에 겨우 찾아냈다는 타지오, 비요른 안데르센은, 아센바흐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미모를 자랑하는 미소년계의 전설이 아니던가.
하니 스스로를 범인이라 생각하는 관객이시여. 부디 이 영화를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우는 범하지 마시길. 그 처연한 최후가 예술가 아센바흐만의 것일 수는 없는 법. 남은 생을 안전하게 살고 싶다면, 타지오의 고혹적 눈짓에 눈맞춤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눈으로 아름다움을 본 자는 누구나 죽음의 제물이 된다”는 경구를 기억할 일이다.
TIP: 지독한 열망에 시달리는 음악가 구스타프 아센바흐의 모델은 알려진대로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다. 만의 원작에는 소설가로 설정돼 있었으나, 말러의 교향곡을 스코어로 끌어온 비스콘티는 직업을 음악가로 바꾸어 그 연관성을 더욱 확연하게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