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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된 시간에 대하여, 가 연상시키는 영화
2005년 6월 7일 화요일 | 유지이 이메일

시계는 계속 움직인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속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사람이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인상적인 단락으로 나누어 시간을 보관한다. 어떤 단락은 하루같은 1분을 담고있고, 어떤 단락은 기억에 남지도 않은 찰라의 시간에 하루를 보관한다. 굳이 아인슈타인 물리학을 참고하지 않아도, 인간에게 시간은 상대적이다. 당연히 인간에게 소구하는 영화에서 시간은, 상대적이다.

pm11:14 (2003)
pm11:14 (2003)
가끔씩 개인에게 시간은, 특별한 순간에 발견된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자신이 있던 시간에 동시에 벌어지면, 그 순간은 신비로운 경험이 된다. 나중에야 고백도 못하고 추억 속에 묻어 놓았던 짝사랑이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동시성. 이를테면 아무런 연관도 없었던 사건이 같은 시간에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자신에게 다른 결과로 돌아오는, 신비로운 동시성. 보통은 벌어졌더라도 알아채기 힘든 이런 신비로운 사건이 에서는 저녁 11:14분에 벌어진다. 전혀 다른 사람 사이에 벌어진 엉뚱한 사건은 조금씩 쌓여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각자에게 돌아간다.

작은 사고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큰 사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는 까다로운 선택을 한 영화다. 작은 사고를 매일 같은 시각에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힘으로 해결한 시나리오는 조금 아쉽지만, 영화가 사건을 모으는 과정은 매끈하다. 쉽사리 지갑에서 관람료를 끌어내기 쉽지 않을 법한 배우들의 존재감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쏠쏠히 재미있을 법한 영화다. 하지만 의 가장 큰 약점은 비교를 할 때 발생하겠다. 시간을 공유하는 군상의 연속적인 사고를 소재로 삼고 있다면 이 영화, 비교 우위를 잃게 된다. 사람의 기억에 남아있는 분절된 시간은 훨씬 많은 방법으로 영화화되었고, 그 사이에서 초현실적인 순간 는 그다지 특별한 영화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월적 존재의 초현실적 시선

살인자가 없는 연쇄 살인극을 영화화한 기발한 영화 <데스티네이션>은,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 여행 전 예지몽에 의해 사고가 벌어질 여객기에 타지 않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공포스러울 만큼 현실적이었던 예지몽에 반신반의하며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사고에 이은 탑승자 전원 사망 상황에 불안한 안도를 숨기지 못한다. 함께 비행기를 탔던 가까운 사람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만 어쨌든 자신은 살아 남았던 것. 영화의 전개는 운좋게 살아 남았던 사람들이 사고로 죽어가며 발생한다. 벌어지는 사고는 제각각 달랐지만 계속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어가자 우연으로 돌릴 수가 없었던 것.

영화의 공포는 명확한 사고로 생존자를 살해하는 살인자가 '죽음' 자체라는 것에 있다. 형체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예정된 죽음은, 운좋게 피해간 자에게 다시 돌아와 죽음으로 가는 사고를 일으킨다. 사고의 순간,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개인의 분절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생존자들은 같은 시간에 서늘한 경험을 한다. 다른 생존자 한 명이 죽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는 징후가 나타나는 것. 죽음이 예정한 서늘한 동시성은 끔찍한 방법으로 생존자들을 위협한다.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 (2000)
데스티네이션Final Destination (2000)
영화 속 생존자들은 잡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죽음에 쫓긴다. 알고보면 사람인 슬래셔의 살인마는 이에 비하면 양반인 셈이다. 그러나 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존재를 관객은 정확히 느끼고 있는데, 이 부분에 영화 만이 할 수 있는 동시성의 마술이다. 관련이 없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모든 생존자를 동시에 비추어 주는 것만으로 <데스티네이션>은 초월적인 죽음의 존재를 암시한다.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 개인이 실제로 받아들인 시간은 절대 같을 수가 없지만, 영화 속 죽음은 생존자 모두를 동등한 시간으로 바라본다. 동시에 한 사람은 죽어간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을 보내며 어떤 생존자는 애인과 사랑을 나누며 길고 깊은 기억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며 어떤 생존자는 지나가며 기억도 나지 않는 일로 시간을 보내 1초 만큼도 기억에 남지 않았을 수 있지만, 죽음은 소름끼치게도 모두를 동일한 시간으로 바라본다. 한 명은 죽어가는 동안.

영화가 벌리는 동시성의 마술이란, 시나리오와 카메라를 조합하는 연출의 기교다. 실제라면 개인이 기억하는 시간은 철저히 개인에게 분절되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영화는 두 사람 이상이 보내는 동시를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기둥 하나 정도의 아슬아슬한 장애물 때문에 서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연인을 보며 아쉬워 할 수 있고, 형사들이 절대 찾지 못한 숨겨진 증거를 보며 사건의 진실을 알고 감탄할 수 있다.

정말 마술같이 절묘한 동시성은, 초현실적인 죽음 따위의 존재를 빌리지 않아도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의미없이 벌어지는 작은 사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두 시간의 요란한 이야기로 발전하는 것은 처음부터 영화가 자랑했던 장기였다.

시간의 동시성, 영화적 테크닉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2001)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2001)
팀을 이룬 전문 사기꾼들의 통쾌한 사기극 만으로 영화를 이끄는 케이퍼물은 정교하게 이루어진 작은 조각이 어떻게 커다란 사기극을 움직이는 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전문 영역이 확실한 전문 사기꾼의 합작이 한국은행에서 50억을 훔쳐내는 <범죄의 재구성>이나 절묘한 팀워크로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1억 5천만 달러를 훔쳐내는 <오션스 일레븐>같은 전형적인 케이퍼 영화에서 최소한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사기극이 성립하는 순간에는 주인공 사기꾼 각각이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 정밀한 기계 부속처럼 자기의 역할을 마친 결과는 스위스 시계처럼 정교한 결과로 나타나고 케이퍼 영화의 쾌감이 된다.

하지만 전형적인 케이퍼 장르의 쾌감은 영화의 동시성보다는 정교하게 합을 맞추어 놓은 시나리오에 빚진 바가 크겠다. 개성과 기능이 뚜렷한 캐릭터를 시나리오에서 조립하는 것만으로도 케이퍼 물의 매력은 분명해진다. 분명히 동시에 벌어지는 영화의 장면은 시나리오를 기초로 하겠지만, 가장 영화다운 매력은 영상과 영상의 조합에서 나오는 것, 케이퍼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지라도 캐릭터의 전문성이 옅어진다면 결과는 꽤 다르다. 전문적인 케이퍼의 등장인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멍청이들이 벌이는 사건이 전형적인 케이퍼 영화처럼 매끈한 범죄로 마무리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동시성의 마술이 끼어든다.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 (1998)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 (1998)
정교한 시나리오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지도 모르는 바보들을 같은 시간에 배치한다. 엉뚱한 우연이 바보같은 오해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사건은 점점 쓰나미가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동시성은 가장 영화적인 방법으로 장면을 교차하며 엉뚱한 사건을 벌인다. 이제는 마돈나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가이 리치의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와 <스내치Snatch>는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사람들이 얽히고 섞이며 큰 사건으로 발전하는 영화다.

단순히 도박비를 벌려고 했던 일이 마약 밀매와 골동품 절도와 살인과 이어지는 좌충우돌은, 영문도 모른 상태에서 상황에 휩쓸리는 군상을 비추는 카메라를 통해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또는 가이 리치의 강탈 영화를 여러모로 벤치마킹한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를 참고해도 좋겠다. 이 영화 역시, 단순한 사기와 가벼운 음모가 현금 강탈과 지하 투견 도박과 이어지는 동시성의 쾌감을 선사하니까

스네이크 아이즈Snake Eyes (1998)
스네이크 아이즈Snake Eyes (1998)
사건의 동시성이 대부분 잘 쓴 시나리오에서 온다고 믿는 쪽이라면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과 같은 케이퍼 물과 <스내치>나 <피도 눈물도 없이>같은 강탈 영화를 구분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사실 앞뒤 잘 가려서 맞추어 놓은 유쾌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서브 장르는 같다. 그러나 캐릭터에 대부분을 기대는 케이퍼와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에 대부분을 기대는 강탈극은 영화적으로 꽤나 다르다. 굳이 구분하자면, 영상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쪽이 더 영화적이랄 수 있겠다.

라스베가스 카지노 지하에서 프로 복싱을 구경하다 암살 사건을 맡게된 형사 이야기 <스네이크 아이즈>를 기억하면, 영화적인 접근이 얼마나 다른 가능성을 지니는 지에 대해 알 만하다.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브라이언 드 팔마는 <스네이크 아이즈>에서 유감없이 그 유명한 솜씨를 보여주는데, 특히 영화 중반부 복싱 경기가 조작되었음을 알아내는 장면이 특히 뛰어나다. 경기를 승부지었던 결정적인 펀치를 공중에다가 설치해 놓은 카메라를 통해 보니 짜고치는 고스톱, 합을 맞추어 맞아준 펀치였던 것. 영화는 단번에 각도를 달리한 카메라 앵글 만으로 다른 진실에 접근한다. 아아, 절묘한 동시성이여.

동시성의 마술, 혜안으로 향하다

이 지극히 영화적인 테크닉은 감독의 깊은 재능과 만나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기도 한다. 개인에게 절편으로 끊어져 있는 시간이 교묘하게 이어 붙여 한가지 주제를 가진 큰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가이 리치나 줄스 다신 류의 강탈 영화가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퀀틴 타란티노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어차피 개인마다 단절되어있는 시간이라면 시간 순서를 따라 순차적으로 이어 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 한 것. 순서가 바뀐 사건은 경쾌하게 전복되며 새로운 의미를 발전시킨다. 정신없는 이야기 <펄프픽션>이 빛나는 이유는, 가볍기 짝이 없는 마피아와 한물 간 복싱선수와 정부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기발한 방식으로 이어지며 풍부한 주제를 내놓기 때문이다. 뒷골목 인생의 삼류 인생이 묵직한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다가오는 것, <펄프픽션>의 매력이다.

21 그램21 Grams (2003)
21 그램21 Grams (2003)
남미 투견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비루한 삼류인생에게 <펄프픽션>의 테크닉을 벤치마킹해 냉정한 시선을 보냈던 <아모레스 페로스>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아랴니투 감독은, 본격적으로 헐리웃에서 만든 <21그램>으로 <펄프픽션>에 빚을 갚는다. 심장을 이식 받아 살아난 남자가 자신에게 심장을 준 기증자를 추적하며 벌어지는 <21그램>은, 현란한 테크닉으로 사건의 전후 관계를 섞어 놓으며 묵직한 주제에 접근한다.

시간이 지나 업그레이드된 <펄프픽션>식 테크닉은 <펄프픽션>이 가지지 못했던 묵직함과 진지함을 얹어서 <21그램>에 탑재된다. 질풍노도의 십대의 우발적 행동에 <펄프픽션>식 테크닉으로 이야기를 조립한 <고>도 만듦새는 좋았지만 <펄프픽션>의 가벼움을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시종일관 진지하게 유지하는 <21그램>은 세 사람의 동시성에서 육중한 인생을 찾아낸다.

꼭 현란한 편집을 거치지 않아도 좋다. 사무라이의 아내가 낭인에게 살해 당한 사건에 대해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서로 다른 기억을 모아서 만든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은, 차분하게 서로 다른 증언을 순차적으로 소개할 뿐으로 묵직한 주제를 내놓는다.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가 가진 동시성은 결국, 모두에게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것.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비를 피해 모인 사람들의 기억은 전혀 달랐고, 그 어느 것도 진실이라 말할 수 없었다. 기억이란, 동시에 목격한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개인에게 그렇게나 상대적이다.

현대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말한다. 다른 공식 유도를 거쳐 영화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물리학은 우주의 진실에 접근하고 영화는 인생의 진심에 접근한다.

4 )
qsay11tem
의미있는 영화네여   
2007-11-26 11:49
kpop20
좋은 기사네요   
2007-05-17 12:30
js7keien
도니 다코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2006-10-01 23:41
alice00
올해 본 영화중 최고..메멘토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꼭 보세요^^
  
2005-06-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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