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들의 인권과 성(性)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룬 만큼 영화는 내내 무겁다. 원작과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 또한 무게감에 한 몫 한다. <도가니>는 얼렁뚱땅 마무리 되어버린 문제를 소설에 이어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귀공자 이미지를 벗고,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돌아온 공유의 얼굴 또한 새롭다. 영화는 9월 22일 개봉한다.
● 한마디
모든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과연 존재할까. 자막이 올라도 여전히 걷히지 않은 안개에 얼마간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도가니>는 계급사회 속, 대극점에 서있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극단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시선을 고정하게 만든다. “내가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세상이 나를 바꾸는 걸 막기 위해서.” 이는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로 영화의 목적이자 의미가 된다. 관객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 영화를 보러 오리라 기대해본다.
(무비스트 유다연 기자)
거대한 쓰레기통 속에서 쓰레기를 파헤치다 보면 결국 쓰레기 더미에 깔려 밑바닥으로 매몰될 것이다. <도가니>는 쓰레기를 목격하고 이를 주워 담으려던 한 남자가 자신이 쓰레기통 한 복판에서 매몰될 위기에 놓였음을 깨닫고 겪게 되는 갈등과 결심을 그린 작품이다. <도가니>는 공지영의 원작에, 그 이전에 실화에 빚을 진 작품이다. 그리고 영화는 자신이 짊어진 의무와 책임을 잘 알고 있다. <도가니>는 분노를 먹어야 사는 영화다. 분노할 일에는 분노하는 게 옳다. 다만 그 분노의 낭비를 경계해야 한다. 영화는 그 진실의 현장으로 관객을 이끌고, 응시하게 만들며, 공분을 일으킨다. 중요한 건 이 지점이다. 그 공분은 영화 밖의 현실로 향해야 한다. 영화는 어느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도가니>는 자기 역할에 충실한 고발 영화다. 허투루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남는 건 결국 현실에 대한 물음이다. 누군가는 그 쓰레기 속에 매몰될 것을 알면서도 쓰레기를 파낸다. 당신도 그 쓰레기를 보았다. 함께 파내려 갈 자신이 있는가. 적어도 이 영화는 옳은 게 옳다는 것을 알고, 말하면서도 제 몸 건사하고 식구도 먹여 살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당신이 머무는, 혹은 당신이라는 도가니를 끓게 만든다. 좋은 온도다. 나를 끓게 만든, 그리고 당신과 우리를 끓게 만들 것이라 믿는 그 온도를 지지한다.
(beyond 민용준 기자)
2011년 9월 7일 수요일 | 글_유다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