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레이디 버드(2017)
장르: 코미디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시간: 94분
‘레이디 버드’라고 스스로 이름 지은, 고등학생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의 목표는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저렴하고 가까운 주립이나 시립대학을 갈 것을 강요하고, 동시에 사춘기 딸에게 충고와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2018년 골든 글러브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전미 비평가 협회 감독상과 각본상 등 유수 영화제를 휩쓴 그레타 거윅의 연출 데뷔작 <레이디 버드>는 감독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레이디 버드’가 고향을 벗어나 뉴욕의 한 대학으로 떠난 직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는 대학에 간 ‘레이디 버그’가 고향이 샌프란시스코라고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점 상으로는 영화 말미에 자리하고 있지만, 실은 감독이 각본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라고 한다. 이렇듯 영화는 특별하고자 했던 한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느끼는 수치심으로부터 발전해 나갔다.
촌스럽고 구질구질한 집안에서 벗어나 튀고 싶었던 소녀는 그 나이 때 소녀라면 누구나 겪는 갈등들을 지나 비로서 ‘크리스틴’이란 이름을 되찾게 된다. 잘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절친을 외면하고 쓰레기 남친들을 만나 울고 불며, 잔소리하는 엄마와 대판 싸우며 상처를 주고 받는, 미성숙한 소녀에서 성인으로 나아가는 이 과정은 비단 ‘레이드 버드’나 그레타 거윅 감독의 특수한 경험이 아닌 보편적인 감정으로, 그 시절을 지나온 여성들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작은 아씨들>(2020)
장르: 드라마, 로맨스
등급: 전체 관람가
시간: 135분
그레타 거윅과 시얼샤 로넌의 의기투합은 <작은 아씨들>에서도 이어졌다. 본인이 각본과 주연을 맡은 <프란시스 하>(2014),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등 주로 자전적 경험을 영화로 풀어내던 그레타 거윅 감독은 150여년 동안 소녀들의 친구가 되어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대적인 터치를 더해 재해석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은 이미 수 차례 드라마와 영화화된 고전을 다시금 재현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이름 올린 것을 시작으로 타임지 선정 올해의 영화 TOP10, 뉴욕 타임즈 선정 올해의 영화 TOP10 등 해외 유수 매체와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10대 특유의 허세와 똘기가 넘치는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과 시대적 상황과 조응하지 않는 꿈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작은 아씨들> ‘조’. 하나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형된 캐릭터이고 다른 하나는 감독의 멘토가 되어준 기성 캐릭터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두 인물 모두 단단해 보이지만 내면은 아직 미성숙하고, 허물어지는 순간을 딛고 성장한다는 점. 시얼샤 로넌, 그리고 그레타 거윅 감독은 ‘조’의 입을 빌려 성차별적인 시대적 상황 속에서 꿈을 좇는 여성이 맞닥뜨리는 괴로움을 전한다. 더불어 엠마 왓슨, 엘리자 스캘런, 플로렌스 퓨 또한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자유가 인정되지 않던 시대에서 나름의 꿈을 지닌 자매들로 등장한다. 이들은 꿈을 좇든, 시대적 분위기를 따르든 간에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을 위한 선택을 내리고, 네 자매가 겪는 고민과 성장은 과거뿐만 아니라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현대의 여성들과도 함께 호흡한다.
<바비>(2023)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시간: 114분
다양한 외모, 인종, 직업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바비’들과 그들의 들러리를 자처하는 다양한 ‘켄’들이 모인 세계 ‘바비랜드’. 그 중에서도 풍성한 금발 머리와 화려한 외모를 지닌 ‘전형적인 바비’(마고 로비)는 어느 날 아침 자기 몸에 이상이 생긴 걸 느낀다. 원인은 현실 세계와 연결된 바비랜드의 포털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 이를 조사하기 위해 ‘바비’는 남자친구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인간 세계로 여정을 떠나고, 현실의 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이들을 맞이한다.
새크라멘토 출신의 한 소녀의 자전적인 경험에서부터 자유와 권리가 없던 과거의 여성들, 나이와 국적을 불문한 모든 성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쩌면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까지도) 그레타 거윅의 세계는 이렇게 확장했다. 여성의 자유가 지금만큼 보장되지 않던 시대엔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불렸던 바비 인형은 현대에 이르러 ‘페미니즘의 후퇴’ 같은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1959년 첫 등장해 당시의 기준으로 완벽한 ‘여성성’을 표상화한 ‘전형적인 바비’가 2023년에 걸맞는 자아와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바비>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끼치는 해악을 노골적일 정도로 명징한 대사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바비랜드’, ‘켄덤’을 통해 여성, 남성 중심의 이분법적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제시한다. 아울러 몸에 맞지 않는 남성성에 갇힌 ‘켄’들을 해방시키고, ‘바비랜드’의 사회적 약자였던 이들을 포용하며 더 나은 미래로 다가간다. 최근 내한한 마고 로비의 “페미니즘의 DNA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인류애를 다룬 휴머니즘 영화”라는 설명처럼 <바비>는 여성우월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도리어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과 마찬가지로 성별과 관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대면하고 성장하도록 고취시키는 작품이다.
메시지가 중요한 작품이지만, 메시지에만 치중하느라 재미까지 놓치진 않았다. 상업영화로서도 매력이 차고 넘친다. 화사한 색감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바비랜드’를 구현했고, 케이트 맥키넌의 ‘이상한 바비’부터 찌질미 넘치는 라이언 고슬링의 ‘켄’, 존 시나의 ‘인어 켄’까지 B급 감성이 한 스푼 더해진 캐릭터들로 웃음을 자아낸다. 메시지는 메시지 대로, 즐길거리는 즐길거리 대로 모자람이 없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신작 <바비>를 지금 극장에서 만나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