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국 8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신라의 달밤>은 쟁쟁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경쟁을 물리치고 전국관객 350만을 훌쩍 뛰어 넘으면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새로 개봉된 <엽기적인 그녀>는 <친구>가 세웠던 기록들을 하나하나 갱신하면서 또다시 '메가 히트'라는 타이틀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영화는 그 어느때보다 비상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관객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안정된 퀄리티와 재미를 추구하면서 한국영화시장을 적어도 외형적으로 상당히 크게 부풀려 놓았다.
영화라는 매체가 이윤 추구에도 상당한 목적을 두고 있기에 한국영화의 이러한 흥행몰이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과연 장미빛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홍콩영화시장은 지금 한국영화시장만큼 왕성하고 활발해 보였다. 아무리 대단한 할리우드 영화들이 쏟아져 들어와도 매년 흥행 1위는 자국의 영화였고, 오히려 홍콩영화의 개봉에 맞춰 다른 영화들의 날짜를 조정해야만 했을 정도다.
특기할 점이 있다면, 당시의 홍콩의 사회적 여건에 의해 영화의 내용 속에 '패배한 영웅주의' 혹은 '대륙에 대한 공포와 향수'가 교묘하게 섞여 있었던 것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 영화들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담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네 영화는 왜 이러한 사회적 현실이나 정치 혹은 역사를 다루는 히트작이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 불평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먼저 <친구>와 <신라의 달밤>은 정권이 교체되고 나온 소위 '경상도 영화'였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름을 잊기 위한 것으로 짐작되어지는 과거회귀와 단순 유쾌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의 녹록치 못한 경제 상황을 뒤틀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한 남자로의 회기를 꿈꾸는 듯한 뒷골목 영화 <친구>와 힘 없는 남성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엽기적인 그녀> 또한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홍콩영화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지나친 자기복제와 끊임없이 보여지는 그렇고 그런 영화들에 의해 '메이드 인 홍콩'은 현재 그 옛날의 영화(榮華)를 추억 속에서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몰락 일로를 걷고 있다.
지금 우리는 현재의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풍요로움에 도취되어서는 안된다. <천사몽> <광시곡> <단적비연수> 같은 영화들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방에 널려 있다. 흥하기는 어려워도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홍콩영화계가 보여준 이같은 보고서는 한국영화에 대한 살아있는 경고이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다시 읽어 내야 하는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