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같은 어둠 속에서 소리를 통해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바람은 영상으로 볼 수 없지만 소리로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어둠이 세계를 덮거나 화면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갑자기 어떤 소리가 들려오면 관객은 거기서 진정한 어둠의 세계를 느끼게 됩니다” - 감독 인터뷰 중에서
어두컴컴한 밤길을 걷다가 혹은 잠자려고 누운 불 꺼진 방에서 조용한 침묵을 뚫고 문득 어떤 소리가 날 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공포’.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두렵게 엄습해오는 ‘공포’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덮쳐올 때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다가온다. 그것이 바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공포의 세계다.
평범하게 살아오다 뜻하지 않게 한 소녀의 유괴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부부의이야기를 다룬 영화 <강령>은 공포영화에 대한 기요시 감독의 독특한 연출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이 영화가 주는 진정한 공포는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잔상이 현실에서도 계속 떠올려지게 하는. 한낮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남자 옆에 물끄러미 앉아있는 귀신, 바람소리를 녹음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던 영혼의 소리, 커튼이 닫혀진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갑자기 삐걱대며 움직이는 문, 영화 <강령>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포에 대한 기억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끄집어낸다.
범죄를 저지른 중년 부부의 심리를 다룬 1960년대의 일본 소설「비내리는 오후의 강령술」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2000년 까를로비바리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고, 국내에서는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에서 소개된 바 있다.
악몽의 시작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서 시작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 의해 행복을 위협 받거나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줄 꿈 같은 기회가 찾아왔 을 때 우린 자신의 선한 의지를 얼마나 변함없이 지속할 수 있을까. 감독의 대표작 <큐어>에서 살인자의 희생물이 되는 시골 부부가 단 한번의 싸움을 하지 않은 잉꼬 부부였듯이 <강령>의 부부도 한없이 착한 사람들로 나온다. 그러나 사토 부부는 그들의 행복이 위협 당하자 마치 성악설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자신들의 욕망에 사로잡혀 악의 세계로 점점 더 빠져든다. 영화 <강령>의 공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경찰의 부탁으로 맡게 된 소녀의 유괴사건은,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 때문에 세상 속에서 떳떳이 살아오지 못한 준코에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긍정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다가온다.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는 사토는 내키지 않지만 그녀의 뜻에 동참한다. 소녀를 발견했을 때 바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병원구급차를 부를 수 있었지만 사토 부부는 소녀를 내버려두거나 심지어 숨기기까지 한다. 자신들이 기대하는 행복을 얻을 때까지. 결국 그들의 그릇된 욕망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게 되고 소녀의 망령은 그들을 롤러코스터 같은 악몽 속으로 인도한다.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착하기 때문에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악한 면이 그들을 고통 받게 이끈 것이다’. 귀신보다 더 공포스러운 건 어쩌면 인간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 불안과 욕망이라는 걸 감독은 넌지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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