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새로운 시대극 |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통해 그려진 폭압의 시대
1960년대와 70년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폭압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시기이다. 이승만 정권의 오랜 부패가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절정에 달하자 국민의 분노는 4.19혁명으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지만,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군인들에 의한 군사 쿠데타로 4.19 혁명의 열기는 단숨에 식어버렸다. 그리고, 1963년 12월 17일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한국 현대사에서 '폭압의 시대'로 기억되는 제 3공화국이 출범하게 된다. 군부통치와 유신체제로 이루어진 '폭압의 정치'는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약 20년간 지속되었다.
<효자동 이발사>는 부조리한 정치적 사건들로 가득했던 한국의 1960~70년대를 한 평범하고 소심한 소시민의 눈을 통해 그려낸다. 주인공 성한모가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를 살아가는 동안 그는 사사오입 개헌의 수혜자였다가, 3.15부정선거에 가담했다가, 4.19혁명의 한가운데를 뛰어다니고, 5.16군사쿠데타의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하거나, 각하의 미국 순방길에서 연설중인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서있기도 한다. 즉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 속 비극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대신에 그 안에 위치하고 있던 한 인물을 통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우화적으로 그것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장치를 통해 성한모의 일생은 역사의 아주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역사와 교차된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이와 같이 기존의 시대극의 범주에 포함되는 한국 영화들과는 다른 접근으로 '시대'와 '인간'을 이야기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문제적이며 격동적인 시기였던 1960~70년대의 어이없는 사건들과 무거운 시대의 공기를 한 소시민의 삶을 통해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영화 시대극의 새로운 시도라는 성과와 함께 관객들로 하여금 30여년 전 폭압의 시대를 견뎌낸 평범한 서민들의 자화상을 진솔하게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도 그 의의가 있다.
가장 특별한 감동 | 소박하지만 가장 위대한 아부지의 가슴 뻐근한 이야기!
<효자동 이발사>의 주인공 성한모는 권력이나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대부분의 서민들이 그렇듯,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법 밖에는 배우지 못한 소심하고 무식한 아버지이다. 그런 그가 각하의 이발사가 되고, 갑자기 커다란 권력집단을 마주대하게 되면서 그는 그 틈바구니에서 권력자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뿐인 아들이 간첩누명을 쓰고 붙잡혀가도 말 한마디 못하는 소심한 아버지. 아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자 병을 고치기 위해 아들을 업고 얼음이 언 강을 건너는 그의 모습은 시대의 아픔을 어깨에 지고 묵묵히 갈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모두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비록 배우지 못하고 힘없는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그 누구보다 위대한 한 아버지의 모습이 주는 감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진리로 우리들의 가슴을 뻐근하게 만든다.
가장 신뢰가는 만남 |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와 문소리!
관객과 평단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송강호는 흥행력과 연기력을 갖춘 한국 최고의 배우이다. <반칙왕> <공동경비구역JSA> <살인의 추억> 등 그의 필모그래피가 증명하듯, 송강호의 대표작은 한국영화의 흥행역사를 새로 쓴 작품들일 뿐만 아니라, 영화사적으로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일 정도로 한국영화계에서 배우 송강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문소리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바람난 가족> 단 세 편의 영화로 관객의 뇌리를 사로잡은 배우이다.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 2003년에는 <바람난 가족>으로 2년 연속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관객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온 두 배우가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점에서부터 관심을 모았던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서 송강호와 문소리는 힘겨운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낸 소시민 부부로 결합, 예의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며 작품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증폭시키고 있다.
가장 완벽한 재현 | 1960년대부터 70년말까지의 역사, 사건, 공간 그리고 인간!
<효자동 이발사>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미술, 세트, 의상, 소품의 완성도와 고증에 철저한 노력을 기울여 제작되었다. 특히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효자동거리 오픈세트'(전북 완산군)는 총 제작비 10억원, 제작기간 두달, 제작부지 5천평의 규모로 제작되었다. 단일 건물로는 가장 많은 약 1억여원을 들인 '효자이발관' 건물을 포함해 입체적으로 동네의 구석구석까지 재현해낸 '효자동거리 오픈세트'의 특이점 중 하나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담았다는 점. 2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60년대, 70년대초, 70년대말까지의 효자동거리 변천사가 재현되었으며 '쥐를 잡자' 등의 표어, 파출소의 반공구호, 동네 곳곳의 '근면, 자주, 협동'이라는 새마을 구호 등을 통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표현했다.
영화 속 또다른 주요 공간인 '청와대'의 경우 실제 '청와대'의 촬영이 불가능했기에 제작팀이 주목한 곳은 충북에 위치한 '청남대'. 실제로 역대 대통령들의 별장으로 쓰였던 이곳은 영화 속 청와대 잔디 마당과 정문에 그 모습을 빌려 주었다. 의상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증을 달리 하였고,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변해가는 배우들의 분장도 마찬가지로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배우들의 외모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4.19혁명 장면과 당시 국가 통치자의 장례인 국장 장면을 재현, 최고의 군중씬이었던 4.19혁명 장면은 총 3일에 걸쳐 약 100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어 촬영되었으며, 국장 장면 역시 이틀간 약 600여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촬영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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