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된 가족, 상업주의에 물든 산업사회에 가하는 일상의 공포!
'왕따'라는 소재와 '가족해체'라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병리현상이, 산업화와 경제대국을 이룩하면서 피폐해진 감정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탈이, 일본 사회 전체를 뒤흔들만한문제들로 뉴스면을 장식하고 있다. 비단 남의 나라의 문제로 치부하기 전에 벌써 이러한 문제들이 속속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안심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공간은 가족과 집이다. 사회라는 말이 생겨났을 때부터 존재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인간에게 어떤 공포와 문제들 속에서도 피신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로 인식되어 왔다. 그 믿음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직설적인 공포의 실체가 될 수 밖에 없다. 정통 호러의 산실이라 여겨지는 일본공포영화가 가장 잘 매만지는 공포의 주제가 바로 그 '가족애'이다. 가족구성원들간의반목과관심은어찌보면그강도에따라인간을공포로몰아넣는근원적인것이될수 있기에 이를 포착한 일본 공포 영화들이 폭발적인 반응들을 얻어왔고, 일본은 그 정통 호러의 명맥을 튼실히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주온2]에서도 이 '가족붕괴'의 공포 코드는 그대로 살아있다. 아니 오히려 더 확대된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해 아내를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했다는, 사회면 단신 어디쯤엔가본 듯한 전편의 사건을 시작으로 [주온2]는 다시 연결된다. 그 집에 얽힌 무성한 루머들을 두고 한 방송국 PD는 여름이면 관례처럼 만들어 내는 납량 특집극의 무대로 이 집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공포는 이제 무한대로 증식되기 시작한다. 전편에선, 그 집에 다녀간 사람들에게전염병처럼 옮겨지던 저주가 이제 무심히 내보내지는 무책임한 방송의 폭력에 은유되어, TV에서, 팩스와 복사기에서, 녹음기에서 시시때때로 형태를 달리하며 그 공포의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소리 없이 공포를 말하지 마라.
[주온]에서 남편에게 살해당한 부인, 가야코가 남편에게 난자하게 죽임을 당하고 난 후 자신의 원한을 전하려 입을 벌릴 때면목소리 대신 나오던 기괴한 목울림 소리를 기억하는가? 일상에서 소음처럼 지나쳤던 익숙한 잡음들이 공포영화의 가장 훌륭한 효과음으로 둔갑했을 때 관객들은 여태껏 인지하지도 못했던 일상적인 소리들을 떠올리며 전율을 금치 못했다. [주온2]에 이르러 관객들은 더 격해진 초조함과 공포로 인해 일본의 천재 감독, 시미즈 다카시의 음향에 대한 탁월한 취사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될것이다! 당신의 일상을, 엄습하는 공포로 죄여올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소리의 공포가 시작된다!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음악들은 사건 발생을 암시하는 긴박함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래키기에만 주력한 빠른 비트 효과로, 찢어질 듯 커다란 음악들로 공포를 조장하며 포장해 왔다. [주온2]에서는 관객들이 무심히 지나쳐왔을 모든 일상의 소리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영화 속 주제의식은 영화가 끝나고 난 후 현실에까지 이어져 현실도 공포에 있어 예외가 아니라는 확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접하는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 새로운 공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일상까지 잠식한 공포는 어느새 하나하나의 작은 소리들에 극도로 예민해지는 자신을발견하게 한다. 한 밤 중, 아파트에서 들리는 이웃집의 느닷없는 쿵쿵거림과 고함소리, 수신 불가 지역에서 뚝뚝 끊기던 핸드폰 목소리, 음악이 재생 중에 갑자기 끊기거나, 녹음할 때는 없었던 다른 어떤 것이 우연히 녹음된 테이프 등 모든 심리적인 방어기재들이 해제된 순간에 닥쳐오는 공포는 그 어떤 것보다도 섬뜩하다. 공포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시간과 인물의 뒤틀린 구성
관객들이 호러 영화를 즐기면서 그 내심에 마지막까지 쥐고 있는 보루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여러 차례 죽을만큼 강한 위협을 겪고, 공포의 한 가운데에서 존재하지만 어느덧 그는 모든 원인을 해결하고 공포는 마법처럼 사라진다. 그들을 뒤흔들어 놓았던 공포는 먹구름처럼 걷히고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끝나는 것이 전형적인 공포영화들의 공식과 같은 전개과정이었다.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극장판 [주온] 이전에 연출했던 비디오판 [주온] 시리즈를 평하면서 완성도에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어떤 것 보다 공포묘사만은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다카시 감독은 관객들이 주인공에 대해 가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거라는 믿음을 각각의 인물을 통한 시간의 얽힘, 인물의 시점에서 다시 진행되는 뒤엉킨 구성으로 일거에 해체시킨다. [주온]의 시나리오를 감수한 [링]의 시나리오 작가 다카하시 히로시는 처음 이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펄프픽션]을 보는 듯 했다고 한다. 옴니버스로 진행되며 각 캐릭터의 눈으로 본 각기 다른 드라마가 종국에 하나로 모아지는 구성만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주인공을 불분명하게 흩어버림으로써 관객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식시키는 이야기와 구성의 절묘한 조합 때문이었다.다른 공포 영화들과는 반대로 원혼과 저주의 실체는 분명한 데,무차별적으로 닥치는 공포에선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온2]는 보여줌으로 해서 극 중에선 감정을 동일시 할 만한 그 어떤 인물도 찾을 수 없다! 그러면서 시간과 사건의 전개가 얽히고 설켜 퍼즐을 끼워 맞추듯 이 사건을 유추하는 추리의 재미까지도 선사하는 이 독특한 구성은 왜 [이블데드]와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 감독이 [주온]에 열광하며 리메이크까지 결정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전형적인 이야기의 틀을 버림으로써 공포와 추리의 재미라는 두 가지 호러 영화의 절대 미덕을 얻게 되었다.
원혼의 저주는 또 누구에게로...
신문 사회면 어디에선가 본 듯한 사건. 다시 이야기는 6년 전 그 집에서 벌어진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처의 부정을 의심해 부인을 살해한 가장. 그 사건과 동시에 사라진 유일한 혈육, 토시오. 그 집에 다녀간 사람들에게 원혼의 저주가 전염병처럼 이어지던 전편과는 달리, [주온2]의 저주는 훨씬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다. 이 집이 납량 특집극의 소재로 채택되면서 1년 만에 다시 이 집의 문은 열린다. 특별 게스트로 초청된 쿄코는 인기절정의 여배우로 언론엔 공개되지 않은 채 비밀리에 약혼을 한 애인이 있고, 임신 3개월 상태라 매우 예민한 상태. 촬영 후 의문의 교통사고로 그녀는 유산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토시오의 정체는 어디로 옮아질 지 모르는 공포를 상징하며 관객들을 떨게 한다. 그 집에 다녀간 촬영 스탭은 물론이려니와 방송이라는 설정이 상징하듯 집에서 사람으로가 아니라 차, 전파, 핸드폰 등을 통해 전이되는 공포는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을 저주에 전염시킨다. 멀리 공포영화의 고전 [오멘]에서부터 올해 개봉하는 [아카시아]와 [주온]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유약한 어린 아이에게 새겨진 공포는 [주온2]에 이르러 유산이라는 상황으로 변주되면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모를 저주와 모성애라는 전혀 묶여질 수 없는 감정을 완벽하게 한군데로 모아낸다. 어떻게 전개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절망과 사랑, 집착과 공포는 관객들에게 눈을 감고 싶지만 집중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영화의 마력에 빠져들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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