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영화, 변방에서 중심으로...!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시대를 반영한다. 돌이켜 보건대 이제껏 세상은 이성애자들의 것이었다. 영화의 중심에는 항상 이성애자들이 있었고,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다 서양에서도 영화가 동성애자들을 포용하기 시작한 건 별로 오래된 일이 아니다. 특히 가부장제도가 굳건한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는 일종의 죄악이었다. 한국에서 동성애가, 그리고 동성애자가 영화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뿐더러, 더우기 충무로 주류 영화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영화는 동성애를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음란비디오의 소재로 흡수하곤 했다. 자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영화들만 동성애를 다뤘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금기를 깨는 영화가 나왔다. 결코 타협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애둘러가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고 강변한 감독의 말처럼, 충무로에서 최초로 시도된 본격 동성애 영화 [로드무비]. [로드무비]는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당당하게 관객에게 질문한다.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이상 세상은 이성애자들의 것만은 아니다.
동성 + 愛 + 이성, 이것은 러브스토리이다.
사람들은 동성애라는 단어를 들을 때, 철저하게 섹스만을 떠올린다. 그곳에는 섹스만 있을 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자에게 변태라는 잔인한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지도 모른다. 동성애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는 영화 속에서도 그들을 철저하게 왜곡시켰다. 그들은 성적인 코드로만 이용되어 일반인들의 편견을 공고히 했고 , 희화화되어 묘사되었다. 현실에서건, 영화에서건 변태인 그들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드무비]의 인물들은 또 한번 금기를 깨고 만다. 그들은 감히 사랑을 한다, 남자를 사랑한 남자, 그 특별한 남자를 사랑한 여자, 그리고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 이 세 사람이 그려가는 사랑의 풍경은 지금껏 우리가 가진 편견을 거스르는 낯선 풍경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동성애 영화 [로드무비]는 '러브스토리'이다.
'로드무비', [로드무비]
[로드무비]는 '로드무비'이다. 장르의 이름을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했을 만큼 영화 [로드무비]는 길의 이미지에 강한 애착을 가진다. 언제든 오분 안에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김인식 감독. 스스로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남다른 공명이 있다. 배우와 상황의 감정을 전경화 시키는 데에 특별한 안목을 가진 그는, 배우들의 감정상태를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들의 시야에 걸리는 길의 풍경 안에 하나하나 녹여낸다. 이른바 '감성의 로드무비'. 우리는 우리에게 슬픔과 기쁨과 절망의 얼굴을 하고 말을 걸어오는 길의 풍경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색채를 가진 공간 - 프레임 편집 기법
[로드무비]에서 공간은 또 한명의 배우이다. 인물들과 함께 감정의 변화를 겪는 제 3의 배우. 앞에서도 언급한, 이른바 '감성의 로드무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 공간은 색채를 바꾼다. 사랑이 밀려올 땐 사랑의 색채로, 자유로 충만할 땐 자유의 색채로,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절망의 색채로, 공간은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를 위해 [로드무비] 제작진은 실험적인 후반작업 과정을 진행했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 편집기법.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색채를 따로 만지면서 한 프레임 안에서도 부분부분 색채를 조정해가는 프레임 편집기법은 수공예품을 만드는 것만큼 손이 많이 가는 쉽지 않은 공정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한 감정의 색채를 가진 [로드무비]의 공간은 배우의 감정과 공간의 감정이 맞닿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다.
감독의 변 : [로드무비]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 중에서
"이 영화는 본질적인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내가 자부하는 것은, 이 영화는 사람이 사람을, 그러나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조금 다른 문제를 상업성이나 센세이셔널을 이용하지 않고 순도높게 그려가는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호모섹슈얼에 대해 다루기는 했으나,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이다. 초점은 타인과 타인이 만나는 것, 그 개인의 감성의 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 왜? 그것이 바로 리얼한 삶의 모습이니까.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픈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이란 알고 보면 상당히 찰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지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절대 완전한 형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러한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매이는 고독한 존재들이다. 기쁨은 아주 짧고 고통은 너무 길다. 가질 수 없고 채워질 수 없기에 끝없이 갈구하는 것이다. 나는 관객이 이 영화를 아주 긴 여행을 한듯이 보고 나면 아주 피곤해졌으면 좋겠다. 해성한 영화가 아닌 아주 빡빡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긴 여행을 끝낸 후에는 한결 가벼워지 머리와 가뿐해진 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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