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봉인된 120시간의 극비 시나리오... 전대미문의 암살 음모론을 파헤쳐라!
제작기간 2년, 제작비 60억원의 초대형 액션 스릴러!
초대형 블록버스터 [케이티] 제작은 한일 양국에 큰 충격을 던질 하나의 역사적 이벤트다. 28년간 봉인됐던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말이 영화 속에서 생생히 묘사되고 있기 때문. 일본의 거장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기획기간 1년, 제작기간 1년 동안 한편의 역사적 숙제를 풀어낸다는 과업을 완수했다. 한국의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에 자극받은 그는, 일본에서도 정치적 소재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특히 일본 굴지의 제작사인 씨네콰논과 한국의 디지털사이트 코리아가 총 제작비 60억원을 들여 장쾌한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는 것과 한일 양국 합작 영화의 발전적 지향점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전세계의 격찬을 받은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본선진출작!
올해 베를린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화제를 낳았다. 수상 직전까지 본선 진출작 23편의 치열한 접전으로 그 누구도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특히 [케이티]는 [나쁜남자]와 나란히 본선에 진출, 각축을 벌였다. [케이티]는 이때부터 한국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비밀스럽게 제작된 작품이라 베를린 영화제는 [케이티]가 베일을 벗는 첫 무대였다. [케이티]는 평론가와 관객의 격찬을 받으며 작품성을 검증 받았다.
희대의 납치미수사건, 30년만에 그 진실이 공개되다!
이 작품은 김대중 납치미수사건을 소재로 한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소설 [납치]를 영화화 한 것이다. 그러나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음모자들의 관점에서 사건을 진행시키며 드라마틱한 스릴과 함정, 비장미로 관객을 압도한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 이상의 독특한 액션 스릴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이 바로 [케이티]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최고의 감독 사카모토 준지, [공동경비구역 JSA]가 부럽지 않다!
거대한 역사적 미스테리를 냉철하고 비장하게 연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뛰어난 능력은 완벽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치밀한 연기를 통해 더욱 빛난다. [케이티]는 한국 관객에게 그동안 보아왔던 영화와 전혀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과시할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과 마찬가지로 [케이티]는 높은 작품성에 뛰어난 재미를 갖춘 작품이다. 또한, 우리의 정치 비화를 일본 감독이 만들었다는 점이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일본, 한국 최고 연기파 배우의 치열한 연기경쟁!
[케이티]는 한일 양국 연기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진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한국의 김갑수와 일본의 사토 고이치의 힘있는 연기는 영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음모자들의 비애와 우정, 음모의 실행 과정을 긴박감 있게 펼쳐내는 두 배우의 연기가 화면을 지배한다. 또한 [간장선생]과 [우나기]에 출현한 일본의 국민배우 츠카모토 아끼라, [용마암살], [복수의 노래가 들린다] 등에 출연한 일본영화의 전설 하라다 요시오, [으랏차차 스모부]의 카가와 테루유키, [고], [화이트 아웃]의 미츠이시 켄 등 일본 최고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동경, 부산을 종횡하는 대규모 라이브 로케이션!
제작자 이봉우와 사카모토 준지는 영화 제작 전 사건이 실제 벌어졌던 장소를 철저히 답사했다. 사건이 일어난 그랜드 팔레스 호텔, 자위대 본부, 일본 경찰청, 주일 한국대사관, 게이오 프라자호텔, 동경 민단, 자민당 당사 등, 역사적 장소가 영화속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영화의 절정부인 해상씬은 부산에서 이뤄졌는데 73년 납치사건 당시 이용했던 금룡호가 부산에 남아 있었기 때문. 관객은 제3의 세트가 아닌 납치사건 당시의 실제 장소를 생생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영화사상 최고의 스탭진 출격!
[케이티]에는 감독과 배우 외에도 막강한 제작진이 참여하고 있어 작품의 위용을 더해주고 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서편제], [단적비연수]등을 일본에 성공적으로 배급했고 [달은 어디에 뜨는가?]로 제작자로서 크게 성공한 이봉우가 제작, [W의 비극]으로 유명한 아라이 하루히코가 각본, [의리없는 전쟁], [빌리겐], 의 카사마쯔 노리미치가 촬영, [사무라이 픽션], [의리없는 전쟁]의 호테이 토모야스가 음악... 등등 일본 영화사상 가장 화려한 면모의 제작진이 참여, 일본 영화계에선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
일본 시사회에서의 기립박수! 흥행신화의 전초전이 시작됐다!
2월 5일 오후 7시, 동경의 요미우리 홀에서 [케이티] 첫 시사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예상대로 좌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메워졌고, 400여명이 입석으로 영화를 감상해야했다. 특히 저명한 정치 평론가, 기자, 유명 배우 등 저명 인사들이 좌석을 메웠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공식상영에 황원탁 주독대사 부부와 야기 다케시 일본공사 부부가 나란히 앉아 관람했으며 이들은 저녁 10시에 이어진 리셉션에도 참석, 한일간의 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케이티]는 월드컵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할 5월 3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개봉된다.
70년대 시대상의 치밀하고 철저한 고증!
퍼즐처럼 얽혀있는 영화의 고난도 음모이론에 서서히 빠져들게 될 관객들은 70년대를 고스란히 재현해낸 스크린의 마력에 매료될 것이다. 고증의 철저함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70년대 남성들의 고전적이며 직선적인 패션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또한 70년대 여성들의 헤어스타일, 의상 등의 한치 오차없는 고증을 비롯하여 신문, 뉴스, 극장, 신발, 자잘한 소품조차 생생히 되살린 것을 보노라면 일본제작진들의 세심함에 절로 감탄하게 될 것이다.
30년전, 김대중은 이미 죽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살아있다!
이 영화, 정말 완성할 수 있을까!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케이티] 기획에 착수한 것은 2000년 10월 경. 감독과 10년 지기이면서도 처음으로 같이 일하게 된 시나리오 작가 아라이 하루히코, [빌리겐] 이후 5년만에 의기투합한 제작자 이봉우. 메인 스텝이 거의 다 결정되었지만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 것은 8월 8일. 따라서 적어도 여름엔 크랭크인에 들어가야 했다. 또한 30년 전의 동경을 재현해 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납치 현장이었던 그랜드 팔레스 호텔측과 의견을 맞추기 어려웠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 일행은 동시에 한국으로 건너가 촬영지 선정과 캐스팅을 진행해야 했다. 한국에선 김대중 납치 사건의 영화화에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으며 교과서 문제의 여파를 비롯하여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 이상의 행운이 뒤따랐고, 정확히 8월 10일 크랭크 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길고 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이 영화에는 기대 이상의 뭔가가 있다!
촬영 3일째인 8월 13일, 자위대 장교인 토미타와 석간 도쿄의 기자 카미카와가 재회하여 설전을 벌이는 장면. 황국의 엉덩이에 비유되는 천도연 공원에서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촬영이었다. 그런데 촬영 도중 고이즈미 수상이 우연히 촬영장 앞을 지나가, 촬영현장의 모습들을 호기심있게 지켜봤다. 클라이막스 촬영일인 9월 11일, 스텝들은 9.11 사건 소식을 촬영지에서 들었다. 지금 이 사건이 일어났다면... 하는 가정 아래 동시대 감각을 살리고자, 73년 당시 풍속을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다던 감독이었지만, 역시 여기저기에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극장씬에서는 당시의 영화들이 걸렸고, 대부분 염색을 한 엑스트라들은 검은 머리용 헤어스프레이를 뿌려댔다. 빨간 공중전화와 클래식 카를 동원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언어의 장벽은 문제되지 않았다!
1개월 반에 걸친 동경 촬영을 마친 제작팀은 9월 23일 부산으로 이동했다. 일본 제작팀과 약 40여명의 한국 스텝이 합류하여 이 영화의 절정인 대규모 해상씬을 5일간 촬영됐다. 당초 언어의 장벽으로 힘든 촬영이 될 것 같았지만 같은 영화인이기에 말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김치가 든 도시락을 함께 먹기도 했다. 그러나 촬영은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진행됐다. 촬영기간동안, 일본에서 개발한 조명필터에 한국 스텝들의 관심이 높자, 제작진은 그것을 흔쾌히 선물했고,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한국의 스모그 머신에 감탄하자, 한국 제작진이 그에게 기계를 보내기도 했다. 작은 트러블은 괜찮아 정신에 의해 서서히 해결됐고, 한국 제작진의 에너지 넘치는 제작열기로 인해 영화는 더욱 깊이있는 완성도를 획득됐다.
음모이론 영화의 걸작!
KCIA : 한국 중앙정보부의 약칭. 1961년 설립된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 북한에 관한 국내외 정보수집과 스파이 감시 등이 주요업무이며 정치공작에도 관여했다. 남산이라는 별칭은 그시절, 거대한 공포의 상징이었다. 김대중 납치사건엔 이후락 부장의 지휘하에 주일 대사관 직원을 포함, 46명의 부원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위대 육군본부 제2부 비밀 첩보대 : 국가기밀의 누설 방지, 정보 수집과 분석이 주요업무. 73년 당시 공산권과 정치권 정보수집을 진행했다. 동경, 오사카, 후쿠오카 등지에 위장 흥신소나 법률사무소 등의 간판을 내걸고 거점을 마련, 활동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 :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일본의 유명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70년 동료 넷과 함께 자위대 총감부에 난입, 총감실을 점거하고 자위대의 국군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호응을 얻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단도로 할복했다. 자칼의 날 : 영국의 작가 프레데릭 포사이스가 71년 발표한 장편 소설. 드골 대통령 암살계획을 소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73년에 프레드 진네만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민단 : 1945년 종전 직후 일본에는 230만의 재일동포가 있었으나 대부분 귀국, 남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연맹이 조직된다. 그러나 전후 혼란과 분단의 여파로 남한계의 거류민단과 북한계의 조총련으로 갈려 오늘에 이르렀다. 재일 한국 청년동맹은 1960년 당시 재일동포 2세를 중심으로 설립된 민단계이며 현재도 활동 중이다.
게이오 프라자 호텔 : 1971년 6월, 신주쿠에 개업한 일본 최초의 초고층 호텔. 김대중이 일본 방문시 머물던 곳이었다.
김대중 교통사고 사건 : 71년 5월 25일, 국회의원 선거를 2일 앞두고 선거운동 지원연설활동을 하던 김대중의 차가 광주 비행장 근처에서 사고를 당한다.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의문에 쌓여있으며 이 사고로 김대중은 다리를 절게 됐다. 그는 치료차 72년 10월 일본을 방문하는데, 17일 발동된 계엄령으로 그의 망명생활이 시작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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