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전세계를 열광케 한 이야기의 시작
<스위니 토드>의 원형은 19세기경 런던에서 있었던 160명 살인사건의 실제 인물을 모델로 토마스 패켓 프레스트가 1846년 11월 잡지에 실은 소설 <진주 목걸이: 로맨스> 이다. 이 이야기는 잡지에 실린 다음 해 연극으로 각색되어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갖게 된다. 이후 연극, 영화, TV 드라마로 변형되어 만들어지다가 크리스토퍼 본드의 1973년 연극에서 처음으로 지금의 형태인 복수에 관한 스토리가 덧붙여진다. 그 후 본드의 연극을 바탕으로 손드하임 음악, 휴 월러 연출로 1979년 3월 1일 브로드웨이에 올려진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혁명이었다. 전설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버나드 허먼(<싸이코> <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배경음악과 놀랍도록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장면들은 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내 명작임을 인정 받고 런던으로 건너가 공연되었다가 1989년부터 2005년까지 브로드웨이에서 재공연되었다. 런던에서 공부하던 시절 <스위니 토드>의 초기작을 본 팀 버튼은 장면은 마치 옛날 공포영화 같은데 음악은 아주 아름다운 이 작품에 매료되었고 계속 영화화를 꿈꾸다 마침내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복수에 대한, 복수가 어떻게 또 복수를 낳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척 잔혹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동안 반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뮤지컬로 손꼽히는 것은 슬픈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누명을 쓴 남자가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을 찾으며 복수를 열망하는 격정적인 이야기이면서 그를 사모하지만 그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얽히고 설킨 감정들이 이야기 속에서 충돌하고 여기에 음악과 노래가 더해져서 어둡지만 로맨틱해진다. <스위니 토드>는 인간의 강력한 폭력충동과 사랑이라는 한없는 부드러움, 이 상반된 두 성질이 충돌해서 압도적인 힘이 발생되는 것이다.
1막: 뮤지컬에서, 스크린 속 피의 향연으로
“여러분, 이 영화에는 피가 엄청 많이 나올 거에요” -감독 팀 버튼
영화 <스위니 토드>의 각본을 담당한 존 로간은 대본을 쓰기 전 손드하임의 음악을 6개월간 공부했다. 또한 오리지날 크리스토퍼 본드의 멜로 드라마와 휴 윌러의 뮤지컬 책을 비교해가며 뮤지컬을 속속들이 공부했다. 그리고는 뉴욕으로 건너가 스티븐과 공동 작업을 했다. 무대용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영화적 구조와 스토리 전개상 가사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어떤 노래들은 완전히 삭제되고, 어떤 것들은 다듬어졌다. 스토리 또한 상당 부분 달라졌다. 뮤지컬과 달리 스위니 토드의 여정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 냈다. <스위니 토드>는 장기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려졌지만 한편으로는 무대라는 공간의 특성상 스위니 토드라는 인물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다룰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작업은 이 작품을 재조명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조니 뎁이 형상화한 ‘스위니 토드’는 그가 살인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영화 속의 ‘스위니 토드’는 어두운 사람이지만 동시에 감성적이고 또한 반 발짝 정도 느린 독특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완벽한 삶과 완벽한 세계의 덮개가 파괴되는 순간, 스크린에는 온통 피가 낭자하다.
주인공이 열망으로 가득 차서 사람들을 죽이고, 손에, 얼굴에, 몸 전체에 피 칠갑을 하기 때문에 고전적인 드라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스위니 토드>는 피의 비극이다. 그러나 이 속에 등장하는 피는 사디스트적이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며 또한 사람들 속에 내재된 감정의 단면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공포영화이지만 팀 버튼의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개구쟁이 같은 면이 있고 폭력 안에도 웃음이 있다. 뒤틀리고 유쾌한 가운데 무서운, 모든 부조화를 담은 영화인 것이다.
2막: 오디션을 통한 영화에 맞는 배우 찾기
무대에서는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을 50대 혹은 60대의 배우, 소년을 30대의 배우가 연기하지만 영화에서는 영화다운 면을 고려해 전 배역을 실제 나이와 비슷하게 캐스팅했다. 먼저 영화의 중심이 될 ‘스위니 토드’. 팀 버튼에게 주인공으로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스위니 토드>는 조니 뎁과 팀 버튼이 함께한 6번째 작품이다.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좀더 멀리 뻗어나가기를 원하는 그들에게 이번 작품은 좋은 창구가 되어주었다. 2001년 말, 우연찮게도 영화와는 전혀 별개로 팀 버튼이 조니 뎁에게 <스위니 토드>의 공연CD를 건넨 적이 있었고 5년 후 출연제의에 조니 뎁은 옛날 밴드의 멤버와 시험녹음 후 승낙했다. 1980대 ‘더 키즈’에서 활동한 적은 있지만 영화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부터 나오는 소리”, “섹시하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영혼이 담긴 소리” 라 호평 받는 등 팀 버튼은 물론, 제작진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원작자 스티븐 손드하임 역시 “주인공의 복수에 대한 열망, 터질 것 같은 분노, 아픔 등을 놀랍도록 다양하게 연기하는 그의 감정은 맹렬히 끓어오르는 진정한 분노다”라며 놀라움과 만족감을 표했다.
스위니를 현실과 연결해주는 러빗 부인 역을 위해서 런던과 뉴욕에서 오디션을 진행했고 유명한 배우들이 찾아와 노래를 부르고 녹음 테이프를 보냈다. 십대 때부터 손드하임의 뮤지컬에 빠져있었고 13살부터 러빗 부인이 되길 원했던 헬레나 본햄 카터 역시 3달간 매일 노래를 배우며 오디션에 응모했다. 어느 면에서나 적역이었지만 비중이 워낙 큰 배역이기 때문에 팀 버튼뿐 아니라 손드하임 역시 인정해야 했다. 모든 지원자들의 오디션 테입을 들어본 후 손드하임은 숙련된 가수들도 많았지만 목소리, 성격, 외모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며 헬레나 본햄 카터를 꼽았다.
스위니의 막을 수 없는 복수의 대상이자 영화의 중추적 역할인 터핀 판사 역에는 말이 없으면서 비열해 보이는, 그러나 곧 상처받기 쉬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알란 릭맨이 캐스팅되었다. 또한 나서기 좋아하는 경쟁 이발사 피델리 역할에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의 주인공 사차 바론 코헨이 팀 버튼 영화에 처음으로 캐스팅되어 다시 한 번 특별한 모습을 보여 준다. 터핀 판사의 심복 비들 뱀포드 역은 영국의 존경 받는 배우 티모시 스펄이 연기하며 그 외에도 이번 영화로 처음 관객과 만나지만 놀랄 만큼 매력적인 배우들이 등장해 연기와 노래를 선사한다.
3막: 열연, 그리고 500번의 열창
영화의 음악은 4일 동안 30개의 바이올린과 관악기, 튜바 등을 더한 장대한 스케일로 런던에서 녹음되었다. 음악을 녹음한 후의 일은 노래를 녹음하는 것. 어떤 노래도 녹음되기 전에 뮤지컬 역사상 가장 까다롭게 곡을 쓰는 스티븐 손드하임 앞에서 리허설을 해야 했다. 영화에서 이야기가 노래로 전달되기 때문에 모든 연기자들이 본인의 음성으로 노래하기로 결정하고 6주간 녹음했다. 조니 뎁은 LA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곡을 녹음했지만 영국으로 건너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추어 재 녹음을 하기도 했다. 촬영장에서도 배우들은 노래에 맞춰 립싱크를 하며 촬영을 거듭해도 항상 처음인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노래하고 또 가장 어려운 촬영을 거듭한 주인공은 헬레나 본햄 카터였다. 러빗 부인의 ‘런던에서 가장 맛없는 파이’라는 곡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파이를 만들기도 해야 했기 때문에 노래의 가사와 파이 만드는 움직임이 맞을 때까지 거의 500번을 불러야 했다. 팀 버튼은 영화 속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보여지려고 하는 것, 배우들의 과도한 연기 등 뮤지컬 공연적인 요소들을 배제했다. 뮤지컬 공연에서는 노래가 끝나면 관객들이 박수를 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대한 이야기, 격한 감정들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기 위해 팀 버튼이 내세운 주장은 ‘영화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4막: 오직 핏빛만이 가득한 흑백세상 만들기
팀 버튼의 영화는 항상 멋진 영상과 세트 디자인으로 극찬을 받아왔다. <스위니 토드>에서도 역시 새로운 모습을 창조한 그는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19세기의 런던을 표현하기보다는 할리우드의 흑백영화 같은 모습이길 바랬다. 처음 최소한의 세트만을 쓰고 나머지는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하려고 했지만 배우들이 초록색 화면에서 노래를 부른다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게 되어 세트가 필요했다. 이에 집 전체는 물론 가로수가 뻗은 도로까지도 만들어야 했고 결국 12개의 세트를 만들었다. 의상 역시 영화 전체의 색조를 살리는데 그 무엇보다 중요해 근래 영화들과는 달리 한정된 색상만이 사용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처럼 옛날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강한 형상을 차용했다. 전 스탭들은 마치 옛날 런던을 찍은 흑백사진처럼 몇 군데 흐린 색과 피를 제외하고는 거의 흑백영화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모든 색이 결여된듯한 어둡게 강한 명암, 밝은 채도의 황량하면서도 단색적인 세트와 조명 등을 썼다. 심지어 촬영된 필름의 편집과정에서 남아있던 색들마저도 모두 걸러냈다. 다만 스위니의 살인 방법이 목을 베는 것이라는 점에서 <스위니 토드>는 핏빛만은 생생히 살려냈다.
에필로그: 뮤지컬 혹은 영화
“이 영화는 무대 위 쇼와 다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순수한 사람들은 없지만 나는 가능한 한 순수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는 성인용 뮤지컬이며 피로 범벅 된 영화다.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이런 피비린내 나는 영화를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브로드웨이 공연을 즐겨 보러 다닐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도박 같다.” -감독 팀 버튼
“나는 사람들이 뮤지컬에 관한 기억은 문밖에 두고 오길 바란다. 왜냐하면 뮤지컬에서 영화화된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이것은 영화로 완전히 변형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위니 토드>의 다른 점은 이것이 무대 위에 올려졌던 쇼의 영화화가 아니라 무대에 올려졌던 쇼를 바탕에 둔 영화라는 것이다.” -원작자 스티븐 손드하임
스티븐 손드하임과 팀 버튼의 결합은 그 자체로 굉장한 사건이었다. 비슷한 감성과 블랙유머, 그리고 음악의 낭만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위니 토드>는 스티븐 손드하임과 팀 버튼의 비슷한 천재성과 스위니 토드의 세계가 합쳐진 독특하고 재미있는, 공포가 가득한 뮤지컬이면서 음악이 뒷받침되는 영화이다. 또한 매력적인 인물의 드라마이면서 또한 블랙코미디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순수하게 재미있다. 장중한 명작을 보고 여느 영화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듣고 몰랐던 특별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스위니 토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정열적으로 그것을 좋아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실존이자 가공된 전설 속 사나이
소문에 의하면, 스위니 토드는 1748년 런던, 가난한 알코올중독 견직물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4세 때 사소한 도둑질로 뉴게이트 감옥으로 보내진 토드는 교도소 이발관이자 같은 죄수인 엘머 플러머의 견습생이 된다. 이발사들이 일정한 수술도 하던 때라(이발관 기둥의 붉은 줄은 피를 상징한다) 토드는 이발기술과 해부학의 요소, 그리고 의자에 몸을 기대는 손님들의 주머니를 터는 방법 등을 배운다. 출소 후 토드는 186번지 플릿 가, 성 던스턴 교회 옆에 이발관을 개업한다. 그 교회에는 지하묘지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다. 토드는 이빨이나 머리카락, 피 등이 담긴 병을 창가에 두고 이발관 중앙에 불길해 보이지만 독창적인 이발의자를 들여놓는다. 또한 범죄를 은폐할 수 있는 360도로 회전하는 비밀 문을 바닥에 만든다. 이발의자의 가장자리를 비밀 문에 묶어서 레버를 당기면 머리부터 지하로 떨어지는 것. 지하로 달려가 값나가는 것은 가지고 시체를 지하 묘지의 송장들 사이에 숨긴다. 이 계획은 얼마간 잘 진행됐지만 죽이는 수가 늘면서 시체를 숨길 장소가 바닥이 난다. 그 사이 토드는 돈에 굶주린 과부 마저리 러빗을 만난다. 둘은 사랑을 하게 되고 토드가 벨 야드에 자신의 이발관과 지하통로로 연결된 파이 가게를 열어 주면서 러빗 부인은 동조자가 된다. 토드는 그의 수술 기술을 이용해 시체들의 살을 떠내 러빗 부인의 파이에 쓰게 하고 가죽과 뼈는 지하묘지에 숨긴다. 토드의 광기가 끓어오르면서 러빗 부인의 파이 사업은 번창하지만 던스턴 교회의 지하에서 악취가 풍겨오면서 당국에서 조사를 하게 된다. 곧 피가 묻은 발자국이 토드의 이발관에서 러빗 부인의 가게로 연결됨을 알게 된다.
언론과 사람들에 의해, 당국에서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파이를 먹고 있던 사람들은 그때야 비로서 토드에 관한 이야기와 그들이 피해자들의 일부를 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뉴 게이트 감옥에 수감된 그녀는 토드와의 거래를 고백한 뒤 자살하고 토드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스위니 토드가 살해한 사람은 160명쯤으로 추정된다. 군중들은 집요하게 이 과장된 사건을 쫓고 싶어했고 그 틈을 타서 신문 발행인들은 판매부수를 증가하려고 했다. 기자들은 루머와 사실을 섞어서 센세이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고 스위니 토드는 주요 타블로이드 신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면서 토드의 실제 외모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 박진감 있는 범죄 이야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 이야기가 시리즈로 실린 잡지가 발행되게 되었다. ‘페니 블라드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던 이 잡지는 후에 ‘페니 드레드풀스’로 바뀌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이 토마스 패켓 프레스트가 1846년에 쓴 <진주 목걸이: 로맨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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