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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사랑(1959, Hiroshima, My Love / Hiroshima mon amour)
제작사 : Argos Films, Como, Daiei Studios, Pathe Entertainment /
수입사 : (주)동숭아트센터 /

그들이 갖고 있는 상처들... ★★★☆  enemy0319 11.10.23
정신의 근간을 흔들고간 상처 치유되지도 화해하지 못하고 유폐된 채 흐른다 ★★★★  jjks511 07.12.03
묵직하다. ★★★★  osungyong 07.02.26



'몸과 영혼에 새겨진 상처와 흔적...그것을 지우는 침묵의 대화...'

마치 원자 잿더미로 덮인 듯한 누드의 흉상... 몸과 영혼의 상처를 쓰라리게 훑는 듯한 이 영화의 도입부는 작가 감독, 알랭 레네의 강력한 정치적 발언이기도 하며, 시간과 기억에 관한 병적인 집착이기도 하다. 여배우인 '그녀'와 일본인 '그' 사이를 좁히지 못하게 하는 그녀와 그녀의 첫사랑, 독일군 병사의 기억에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관계는 아무것도 없다. 단, 두가지 다른 시점(현재와 과거의 기억)과 공간(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이 하나의 일직선이 되어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갈 뿐. 그것은 곧, 시간의 공간화가 이루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 영화의 '시간'의 개념이 전면 재정의 되었다는 것은 기존의 장면이나 내러티브가 영화의 중심이던 진부한 시대는 가고, 화면을 하나의 기호체계와 미장센으로 읽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시간에 대한, 그리고 공간과 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탈바굼시킨 시도는 영화속에서의 주인공들 뿐만이 아니라 관객들까지 길을 잃게 만듬으로써 누벨바그 경향의 작품들 중 가장 혼란스럽고 독특한 영화스타일을 보여주게 된다.


영화역사의 혁명, 누벨바그(Nouvelle Vague). 그 안의 이단자, 알랭 레네(Alain Resnais)

세계영화역사의 혁명과도 같은 이름, 누벨바그...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e Truffault)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논문이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에 발표되며 이른바 '아버지의 영화'를 전면 부정하고 나온 프랑스 영화계의 반항아들... 그들은 '까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을 통해새로운 영화미학의 이론적 전파에 앞장섰고, 그것을 현장에서 연출 스타일로 실험하였으며, '앙리 랑글로와(Henri Langlois)'의 '씨네마테끄(Cinematheque)'와도 동떨어질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장 뤽 고다르와 프랑소와 트뤼포 등 누벨바그 작가들이 주창한 것은 일련의 전세대 프랑스 영화전통을 거부하는 이른바 '새로운 영화'이다. 즉, 이전의 프랑스 영화의 전통은 "잘 다듬어진 '문학'에 세련된 덧칠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영화작가'는 독창적인 연출스타일과 영화미학으로 그것을 자신의 전(全)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표현하는 작가를 뜻한다. 즉, 줄거리보다 표현에 중점을 두고 현실과 카메라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하여, 예컨대 즉흥연출, 장면의 비약적 전개, 완결되지 않은 스토리, 영상의 감각적 표현 등에 의하여 종래의 영화개념을 바꾸어 놓은 점이다. 상황의 개연성, 내러티브 위주에서 표현과 미장센 쪽으로 중심이 이동된 이러한 시도는 이른바 영화의 '캐주얼화'를 유도해내기도 한다. 그만큼 이들에게 독창적인 시나리오와 기존의 형식을 거부하는 영화미학은 중요한 영화연출의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주의'적 관점에 동조하며 '까이에 뒤 시네마'에 입장을 피력하고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세운 감독들로 위의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e Truffault),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끌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자끄 리베트(Jacques Rivette), 에릭 로메르(Eric Rohmer) 등이 있으며 페미니즘 시각의 여성감독으로는 아네스 바르다(Agnes Varda)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새로운 사고, 새로운 형식, 새로운 문학... 新小說, 누보로망...

누벨바그와 누보로망은 각기 영화와 소설의 영역에서 새로움을 주창하며 등장한 동시대의 문화적 조류이다.

누보로망은 프랑스에서 195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소설들로, 공통된 슬로건을 내세운 문학 운동이나 세계관 또는 문학관 같은 가치관에서 어떤 공통적인 견해를 갖는 유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전통적인 형식을 답습하는 소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소설'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문학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안의 개념은 앙티로망(反소설 Anti Roman)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현대에 와서 영화와 같은 혁명적인 예술 장르의 출현과 사회 생활 및 사고체계의 복잡성, 또 그에 따른 인간 정신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작가와 작품 속 인물들의 관계, 또 독자와 작품 내용의 관계와 같은, 그 전까지 작품을 통해 맺어진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를 깨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브 그리예, 샬로트, 마르그리뜨 뒤라스 등 누보로망 작가들이 추구하는 소설은 작가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된 점은, 기존의 소설에 나타난 전능한 입장에 있는 작가와 일반적 성향에 따라 통일된 작품 속 인물들, 또 일정한 시간 순으로 전개된 방법과 같은 전형적인 틀을 거부하는 것이다. 단지 사물과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만이 있고, 따라서 당연히 의미나 해석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작가는 작품 속 인물을 좌지우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도 통일되지 않으며, 시간은 일상적인 틀에서 벗어나 내면의 시간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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