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의 작은 도시를 넘어 미국 전체를 감동시킨 실화! 시나리오 작가 그레고리 알렌 하워드는 LA에서 버지니아 주로 이주했다. 이주한 뒤 한 1년쯤 생활했을 무렵, 그는 문득 알렉산드리아 도시에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 매우 보수적인 도시이건만 인종차별의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유독 여기만 특별한가 싶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고등학교 풋볼팀 얘기만 했다. 고등학교 풋볼팀이 한 도시 전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 감동적인 얘기에 매료된 하워드는 그 때부터 몇 개월에 걸쳐 허만분과 빌 요스트, 그리고 당시의 선수들과 그들의 부모, T.C. 윌리암스 고등학교 교직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의 미국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핫 팬츠, 피터 맥스의 예술론, 데이빗 보위 같은 전위적 록커에 관한 논란에서 월남전, 시민운동에 관한 심각한 논쟁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사회 전반을 시끄럽게 했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서 그 어떤 이슈보다 문제가된 것은 바로 흑인과 백인 학교의 통합이었다.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겐 다른어느 지역보다도 심각한 당면 문제였다.
당시 허만 분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몇 시즌에 걸쳐 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하고도 승진에서 탈락, 알렉산드리아로 전근을 오게 된다. 전근온 그가 T.C. 윌리암스 고교의 모든 사람들과 알렉산드리아 전체를 변하게 만들 줄은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단지 그는 '서로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아도 좋다. 단, 상대를 존중하라!', '챔피언처럼 경기하라! 반성은 챔피언이 되는 기쁨보다 소중한 것이다. 항상 반성하라. 분노는 속으로 삭여!' 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1970년대 풋볼 경기 장면을 재현해내다!
풋볼 장면 촬영은 USFL 선수인 마이크 피셔의 지도와 감수를 받았다. 제작진은 피셔를 촬영 2개월 전에 아틀란타로 보내어 각본을 분석하게 했고, 각 장면의 플롯에 적합한 경기 내용을 구상해줄 것을 의뢰했다. 마이크 피셔는 우선 허만, 요스트와 몇 차례의 회의를 거친 뒤 50-60개의 플레이를 구상해낸 다음 각각의 플레이가 그려진 도표를 제작했다. 실존인물 허만과 요스트가 연기자들의 풋볼 캠프에 방문했을 때, 허만은 너무나 흥분했던 나머지 자기가 풋볼 감독을 맡으면 안되겠냐고 농담을 할정도였다. 그는 풋볼 연기 연습기간 중 배우들에게 정성어린 지도와 코치를 아끼지 않았다.
타이탄스 팀이 경쟁 팀과 경기를 할 때마다 다수의 엑스트라를 동원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실제 풋볼 시즌 중에 이 영화를 찍었다." 피셔의 설명이다. "솔직히 상대팀으로 뛸 선수와 엑스트라 동원은 어려운 숙제였다. 우린 여러 차례의 라디오 광고를 통해 지원자를 모집했다. 야킨 감독은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관리하는 작업이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고 회상한다. "날마다 그 많은 엑스트라를 통제해가며 메가폰을 잡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악전고투였다. 난 혼자서 이런 기도까지 할 정도였다.-주여, 작은 방에서단 2명만 데리고 찍어도 되는 그런 장면을 허락해주십시오." 엑스트라들은 1970년대의 시대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에도 활용됐다. 다음은 미술을 담당한 데보라 에반스의 설명이다.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3가지 요소는 머리 모양, 의상 그리고 자동차이다. 우린 이런 요소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한편, 거리의 주차 미터기를 비롯하여 당시의 시대상에 전혀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전부 철거하는 등 70년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도록 최선을 다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마치 관객 자신이 그 시대에 살고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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