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제작자가 성사시킨 거장들의 한판 영화 대결 “DUEL PROJECT”
2004 최고의 기대작 중 한편이었던 설경구 주연의 <역도산>과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레터>등을 제작한 일본 최고의 제작자 가와이 신야는 어느 날 당시 촉망 받던 프로듀서 중 하나였던 이시다 유지에게 재기 넘치는 영화 제작 기획서 하나를 건네 받는다. 그것은 바로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명의 감독이 각자의 색깔대로 영화를 만들어 낸다는 한번도 시도된 적 없던 참신한 기획이었던 것.
지금까지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감독이 각자 15-30분 내외 분량 옴니버스 형태로 한 작품 안에서 작업했던 영화는 존재했지만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감독들이 독립된 영화를 만든 경우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그 선례를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작품 선택의 귀재인 가와이 신야는 그 자리에서 이시다 유지와 의기 투합, 이 초유의 프로젝트를 실행시키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죽음을 각오한 대결'을 주제로 한 ‘Duel Project’ 였던 것이다.
제작팀은 ‘대결’이라는 컨셉에 맞게 감독 선정 또한 ‘중견 감독 VS 신세대 감독’의 구도를 가지고 적임자를 물색, 시나리오 작업을 포함한 캐스팅 등 영화 제작의 전권 또한 각 작품의 감독에게 일임을 하는 획기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감독 선정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 결과 범상치 않은 활동을 벌이던 두 감독, <트릭><케이조쿠><연애사진>으로 ‘드라마 구축의 대가’로 불리며 전세계에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린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과 <버수스><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을 통해 ‘일본이 낳은 천재 악동’으로 거듭난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을 섭외하는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실제로 두 감독은 ‘작품 대결’에 진 사람이 대중 앞에서 삭발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이렇게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업 ‘Duel Project’ 의 Vol.1인 <아라가미>의 연출을 맡게 된 기타무라 류헤이는 촬영이 종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전작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의 연출 감각을 최대한 살리는 선에서 1차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되었고 또한 그 안에 자신의 장기인 비장미 넘치는 액션과 재기 넘치는 상황설정 및 대사를 가미하여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두 남자배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오오사와 타카오와 <바람의 파이터><크라잉 프리맨>의 가토 마사야를 캐스팅, 그의 작품세계에 또 하나의 매력 넘치는 이력 하나를 추가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어둠 속에 빛나는 두 자루 검의 냉혹한 선율 평범함을 거부한 새로운 형식의 판타지 액션
우리가 흔히 봐왔던 기타노 다케시의<자토이치>나 구로자와 아키라의<7인의 사무라이>등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끔찍하리만큼 사실감 넘치는 붉은 빛의 피와 혼자서 모든 적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는 단연 뛰어난 검술을 지닌 영웅적인 검객들의 모습으로 대표된다. 그런 불문율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 건 국내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모은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의 <사무라이 픽션>이 공개 되면서부터였는데 기존에 사무라이 영화의 주인공들에서 보아왔던 사명감과 충성심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었던 실수투성이에 자신밖에 모르는 사무라이나 닌자의 모습이 관객에게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게 어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무라이 픽션>이후 침체의 국면을 겪던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색다른 영화가 다시 한번 관객에게 크게 어필했던 영화가 바로 작년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던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이란 작품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특이하게 10대 소녀 검객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탄탄한 플롯과 현란하면서도 스케일 있는 검술 장면이 잘 조화되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판타지 액션 영화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성공의 가장 일등공신이 바로 연출을 맡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이다.
이런 그가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에 이어 전혀 다른 ‘신(新)고전주의 판타지 액션’을 영화 <아라가미>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먼저 판타지 장르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영화 속 시대 배경부터 ‘이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법한’ 과거 어느 날로 설정하며, 관객이 가진 상식의 섣부른 개입을 차단하는 재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의상이나 세트 디자인 또한 시대고증의 경계를 허물며 인도와 티베트 풍의 의상을 주인공들에게 입히고, 영화에 쓰인 검을 포함한 소품 또한 다양한 종류를 배치시켜 시각적 흥미를 유발시키면서 영화 전반적으론 비주얼과 기술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통제, 조심스런 프레이밍과 어두운 조명, 많은 그림자와 밝은 색상의 얼룩 등을 활용하여 형식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로 영화의 색깔을 완성하고 있으며 영화의 종반부, 마침내 사무라이와 아라가미가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순간부터 감독은 화려한 조명효과를 사용하며 화면이 좀더 현대적으로 보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 액션 씬 또한 단순한 동작의 반복에서 벗어나 액션 장면마다 다른 연출 컨셉을 활용, 능수능란하게 하룻밤 사이에 밀실에서 벌어지는 두 사나이의 검으로 완성 되는 절대 액션의 백미를 보여주고 있다. 최정상의 두 배우 오오사와 타카오 VS 가토 마사야 결투를 방불케 하는 그들의 연기 대결
40대와 30대, 세대를 대표하는 두 일본 남자 배우 가토 마사야와 오오사와 타카오가 한 작품에서 공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라가미>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중 ‘사무라이’역에 주로 멜로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오오사와 타카오를, ‘아라가미’역엔 각종 무술로 다져진 이미 액션 연기에서만큼은 일본 최고라 할 수 있는 가토 마사야를 캐스팅하여 한 명의 배우에겐 파격적인 변신을, 또 다른 한 명에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변하지 않는 카리스마를 이끌어 내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이들 베테랑 배우들이 선사하는 한치의 양보 없는 연기 대결은 감독의 전작에서 가끔씩 보이던 출연진들의 투박한 연기를 깨끗이 만회하며 이 영화를 ‘웰 메이드 액션 판타지’로 거듭나게 하는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특히 오오사와 타카오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시대극과 액션물에 공연, 주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엉뚱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싸움의 신 ‘아라가미’와 필사의 싸움을 벌이는 ‘사무라이’역을 유머러스 하면서도 비장미 넘치게 소화하며 가토 마사야의 기운에 전혀 눌리지 않는 열연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크라잉 프리맨>이나 <브라더>등을 통해 헐리웃 액션 연기를 몸소 배우고 온 가토 마사야는 작년 <바람의 파이터> 홍보 차 국내 방문 시 자신의 작품 중 국내 관객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이 영화를 꼽을 정도로 영화 속 ‘아라가미’와 분간이 안될 만큼 극중 인물과 동화되어 있는 강렬한 모습을 선보인다. 특히 자신을 영원히 죽지 않는 결투의 신이라 주장하는 장면에선 실제로 ‘아라가미’가 존재 했다면 바로 그와 똑같이 닮았을 거라는 착각마저 들게 만들 정도이고, 마치 검과 하나가 된듯한 신들린 액션 연기는 액션거장들이 그토록 그를 선호하는지를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렇듯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열연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백 퍼센트 이상 충만감을 가져다 주는 영화 <아라가미>는 이 밖에도 ‘기타무라 류헤이 사단’이라 할 수 있는 두 배우 <버수스><지옥 갑자원>의 주인공인 사카구치 다쿠와 <잼 필름><스카이 하이>의 우오타니 카나에가 극 중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을 연기하며 기존 기타무라 류헤이 영화 팬들에게도 특별한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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