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는 치정극
사전적으로 치정(癡情)은 '이성을 잃은 사랑', 또는 '남녀 간의 애정에 얽힌 온갖 어지러운 정'으로 풀이된다. [해피엔드]가 치정극을 표방하는 이유는, 도덕과 사랑의 갈등을 다루는 불륜 소재 멜러영화와 달리 욕망과 현실의 부조화로 혼란에 빠진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불륜에 빠진 여자, 그녀를 사랑하는 옛 애인, 그리고 그녀의 실직한 남편을 주인고으로 그들 마음 속의 애정, 집착, 살의라는 적나라한 감정을 각자의 입장에서 섬세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서로 다른 해피 엔드를 꿈꾸는 그들의 욕망을 통해 이 시대의 '가족관 및 성의식'의 단면을 비추어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점 역시 치정극으로서의 [해피엔드]가 갖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장르적 실험 - 스릴러풍 멜러
장르의 출몰은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1999년 한국영화에서 멜러는, 세기말적 불안과 혼돈의 영향으로 급부상한 '스릴러' 장르와 조우한다. 이렇게 '장르 구분 없이 융합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인 퓨전(fusion)은 20세기 말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문화적 특징이다. 우리시대의 정서에 밀착한 영화 [해피엔드]도 퓨전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애정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멜러이면서, 인물의 불안하고 혼란스런 심리를 따라 긴장 속에서 전개되는 형식면에서는 스릴러. 즉 두 장르의 특징이 융합된 스릴러풍 멜러 영화이다.
이러한 [해피엔드]의 퓨전 스타일은 '삼각관계 치정'이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 낭만적이거나 센티멘탈하게 포장하는 일반 멜러 영화의 방법을 거부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물의 내면과 그들 관계에 잠복한 불안과 집착, 절망, 분노 등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세기말적 정서를 공감 가게 그리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도입한 것이 스릴러적 구성이다. 따라서 [해피엔드]의 스릴러적 특징은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좇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일상적이기에 더욱 큰 파장을 형성하는 긴장과 전율로 표현된다. 멜러와 스릴러의 특징을 모두 품으면서도 그 어느 장르의 법칙에도 종속되지 않은 영화 [해피엔드]는 장르간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힘을 형성해내는 퓨전적 시도의 한 사례가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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