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천국>의 ‘라스트 씬’을 되새기는 감동 휴먼 드라마!
제 53회 베를린영화제와 제 8회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되어 상영관을 눈물과 감동으로 채웠던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라스트 씬>. <여우령> <링> <검은 물 밑에서> 등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공포영화에 익숙했던 관객들은 이 예상치 못한 드라마에 그리고 생각치 못했던 눈물에 당황했다. 하지만 <라스트 씬>은 그런 선입견 같은 건 곧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
영화에 대한, 영화인들에 대한, 그리고 영화 현장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따스한 시선이 영화 전편에 묻어난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마치 일본판 <시네마천국>을 보는 듯한 진한 감동의 드라마를 <라스트 씬> 안에 담아낸 것이다.
영화 속 전성기 시절의 일본 영화계,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화와 함께 잊혀져간 스타들의 모습, 해고당한 후 촬영장 수위로라도 남고자 했던 왕년의 스태프들을 본 나이든 일본의 영화인들은 시사회에서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특히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연예계와 TV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영화는 퇴물 취급을 받는 일본의 현실에서 한 잊혀진 스타가 혼신을 다해 연기를 완성해가는 마지막 장면은 <시네마천국>의 감동을 되새기는 가슴 찡한 울림을 전해준다.
공포영화에서 휴먼 드라마로, 나카다 히데오의 새로운 도전
우리에겐 <여우령> <링> <링 2> <검은 물 밑에서> 등의 공포영화로 익숙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 어느덧 호러영화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울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그가 영화 <라스트 씬>으로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나카다 히데오의 대표작들이 공포영화이기는 하지만, 여타 다른 장르의 영화 예를 들어 스릴러인 <카오스>의 경우에도 몇몇 장면에서는 그 어떤 공포영화 이상의 섬뜩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라스트 씬>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 또한 공포영화로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그에게 호러란 타고난 것과도 같은 재능이 발휘되는 최적의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라스트 씬>으로 드라마 그것도 눈물이 함께 하는 휴먼 드라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프로젝트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인 <라스트 씬>은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인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작품으로 완성됐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영화는 순간적인 충격이나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스타일의 공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스멀스멀 공기를 통해 조금씩, 천천히 스며들어 어느새 우리의 목을 조이는 치명적인 공포의 기운, 그리고 절대 서두르거나 장황하지는 않지만 아주 천천히 사건과 공포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그만의 방식.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인 <라스트 씬>에서도 나카다 히데오 특유의 스타일은 발휘된다.
파트너의 은퇴와 알코올 중독 그리고 아내의 죽음, 전성기 스타의 자리는 부서지기 직전의 버팀목 위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던 켄의 약점을 드러내며 서서히 무너져간다. 그리고 37년 후의 영화계.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 연어의 회귀처럼 돌아온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진 그곳에서 켄은 죽음을 담보한 마지막 연기를 완성해 나간다. 한 노배우의 추억과 인생이 담긴 드라마를 만들며 나카다 히데오는 내러티브 상의 기교를 부리지는 않는다. 차곡차곡 쌓여져 있던 스토리를 하나 둘 차례로 꺼내놓으며 어느덧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동의 순간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의 연출력과 재능이 단순히 공포영화에 국한된 것이 아닌 탄탄한 영화적 기반과 다양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영화’에 바치는 영화감독의 감동적인 헌사!
영화감독이 바라보는 영화, 그것은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꿈일 수도 있고, 팀 버튼이 <에드 우드>로 투영해낸 할리우드 싸구려 감독의 영화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이기도 하며, 톰 디칠로가 <망각의 삶>에서 꿈꾸던 지독한 악몽과 강박 속에도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감독들은 그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영화를 만들며 때때로 자신들의 모습 혹은 자신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낸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백은, 펠리니가 <8과 1/2>에서 꿈과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되돌아보던 자기자신의 모습 그리고 이 영화를 텍스트 삼아 만들어진 영화 <스타더스트 메모리>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영화감독에 관한 영화 속 영화를 보던 우디 앨런의 뒷모습과도 겹쳐진다.
영화감독들에게 영화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영원한 그들의 동반자이자 희망인 것이다. 그들의 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고백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사랑의 묵시록>에서 절정에 이른다. 직접 영화감독인 페랑으로 출연하는 트뤼포는 <파멜라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촬영중이다. 그는 어두운 밤 몰래 극장에서 <시민 케인>의 포스터를 훔치던 소년의 꿈을 꾸며 매일 전쟁터에 나서는 기분으로 현장에 나간다고 고백한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은 악몽과 같은 혼란과 시련의 연속이지만 결국 페랑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낸다.
나카다 히데오가 바라보는 영화 역시 이들의 애증에 찬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게도 영화는, 죽어가는 옛 스타가 돌아와 눈을 감는 장소이며, 그 마지막 연기를 완성해내는 스태프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며, 그 모든 절망과 회의 속에서도 떠나지 못하는 영원한 안식처이다. 나카다 히데오 역시 <라스트 씬>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절절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로 되살아난 잊혀진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
지나간 젊은 시절에의 아련한 추억 그리고 열정과 자부심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영화 <라스트 씬>에서 되돌아보는 사라져간 시절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는 시대 속에서 이제는 잊혀진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영화 <라스트 씬>의 이 절절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영상으로 재현해낸 매체는, 24P HD카메라 바로 첨단 디지털 카메라이다.
24P HD카메라(정확한 명칭은 SONY HDW-F900, 1920×1080픽셀의 고해상도로 필름과 같이 초당 24콤마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는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Ⅰ>을 찍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촬영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Ⅱ>의 경우 영화 전편을 이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미 국내에서도 <아 유 레디> <욕망> <시실리 2km> 같은 작품이 HD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올해 개봉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 또한 HD카메라로 환상적인 장면을 선보인바 있다. 그렇다면 이 카메라를 개발한 일본에서는 바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라스트 씬>이 그 첫 작품이다.
일본 최초로 24P HD카메라를 이용하여 영화를 촬영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필름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높은 해상력 이외에도, 시간과 비용 절감의 경제성, 현장에서 촬영 직후 색보정을 거쳐 재촬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편리성 등에 만족감을 표했다고 한다.
35mm 필름으로 블로우업한 <라스트 씬>의 화면 안에는 분명 디지털의 선명하고 차가운 질감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느끼는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기쁨, 슬픔, 아픔의 감정까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영화 <라스트 씬>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보는 이들의 추억과 사랑의 기억까지도 고스란히 감싸 안을 만큼 인간에 대한 애정, 세상에 대한 이해로 가득하다. 영화 자체 그리고 감독의 목소리가 지닌 진실이란 테크놀러지의 발전에 따라 좌우되는 그런 종류의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날이 발전해가는 형식과 기법 그리고 기술이 있을지언정 고전이 영원한 것처럼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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