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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바람소리가 만들어내는 지독한 사랑... 폭풍의 언덕
ldk209 2012-07-04 오후 12:39:31 537   [0]

 

풍경과 바람소리가 만들어내는 지독한 사랑... ★★★★

 

언제나 바람소리가 그치지 않는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는 광야에서 헤매던 흑인 소년 히스클리프(솔로몬 그레이브)를 집으로 데려와 보살핀다. 처음 볼 때부터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던 아들 힌들리와 달리, 딸 캐서린(섀넌 비어)은 히스클리프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언쇼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이 된 힌들리는 히스클리프에게 모진 학대를 가하고, 캐서린이 새로 이웃이 된 대저택의 아들 에드가의 청혼을 받아들이자, 히스클리프는 폭풍 속에 가출을 하고, 몇 년 뒤 복수를 위해 워더링 하이츠에 돌아온다.

 

소위 영문학 3대 비극 중 하나인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한 <폭풍의 언덕>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원작의 첫 영화화는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까지 8차례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아는 유일한 영화는 1939년작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폭풍의 언덕>. 아주 예전에 본 영화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히스클리프를 로렌스 올리비에가 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원작의 가장 안전한 각색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왜냐면 로렌스 올리비에가 보기만 해도 편견의 대상인 외모의 소유자라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스클리프를 흑인으로 내세운 첫 영화인 2011년작 <폭풍의 언덕>은 원작에서 모호하게 처리된 히스클리프의 인종, 외모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고, 시각적으로 가장 강력한 각색의 결과물일 것이다.

 

아무튼,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일단 4:3이라는 화면비율부터 매우 고전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건 어쩌면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오래 전 봤던 고전 영화들을 대게 TV를 통해서 봤고, 당시 TV 화면 비율이 4:3이었다. 그런데 풍경을 주로 담는 영화에 4:3이라니? 촬영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4:3이라는 스크린 비율은 “관객이 특정한 인물을 보도록 초점을 맞춰주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시점을 표현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시점이란 누구의 시점을 말하는 것일까? 물론 히스클리프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히스클리프 1인칭 시점에 의해 진행된다. 그가 보지 않은 장면이나 듣지 않는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는 히스클리프가 보는 장면,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거의 절반 정도를 아역이 연기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관객에게 전달되는 흥분과 흥미로움의 크기도 아역시절의 비중이 크다. 대체 어떻게 이런 장소를 찾아냈는지 신기할 정도로 영화 속 워더링 하이츠는 황량하고 스산하며 기괴하다. 항상 진흙으로 질퍽거리는 거리, 거센 바람이 부는 언덕, 곳곳에 널부러진 동물들의 시체들. 이 속에서 히스클리프와 케서린은 마치 풍경에 담긴 두 마리의 동물과 같다.

 

둘은 대화로서 감정을 전달하지 않고 물어뜯고 잡아당기고, 머리를 뜯어내고, 상처를 핥아주는 동물적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전달한다. 언덕에서 둘이 나란히 엎드려 워더링 하이츠를 바라볼 때, 그리고 진흙 속에서 힘으로 상대를 짓누르려 할 때, 오히려 둘의 감정은 온전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어른이 된 뒤에도 둘은 구둣발로 머리를 밟는 등의 기괴하고 파괴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파괴적 사랑, 집착이 워더링 하이츠에서라면 가능해 보인다. 워더링 하이츠의 거친 풍경과 바람소리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떤 파괴적 사랑도 평범해 보일 지경이니깐. 이런 차원에서 <폭풍의 언덕>의 진정한 주인공은 풍경과 바람소리,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에게는 대사도 없고 화면 밖 음악도 없는 이 영화가 너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선 오히려 대사를 더 줄였어도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은 충분히 풍경이 말해준 사실을 굳이 말로써 되풀이할까란 의문이 드는 장면이 있었다.

 

※ 아역 시절에 비해 어른이 된 이후 영화적 흥분은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실 이미 보여줄 것, 그리고 얘기할 모든 것은 아역 때 끝났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는 청혼 받은 캐서린의 고백을 엿듣고 히스클리프가 폭풍 속으로 뛰쳐나간 순간 끝났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실제 극장에서 히스클리프가 폭풍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영화가 끝나는 것인가(아직 어른 배우들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잠깐 착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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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2011, Wuthering Heights)
제작사 : Ecosse Films, Film4 / 배급사 : 찬란
수입사 : 찬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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