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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부러진 화살
ldk209 2012-01-26 오후 5:14:40 8840   [6]

 

기본적인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

 

많이 알려졌다시피, <부러진 화살>은 2007년 발생한 ‘석궁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대학입시 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뒤 스스로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생각한 김경호 교수(안성기)는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게 되자, 담당 박봉주 판사(김응수)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을 가한다. 이 와중에 발사된 석궁에 판사가 상처를 입고, 김 교수는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김 교수는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박준 변호사(박원상)와 함께 엄벌을 내세우는 재판부에 맞서 법정 투쟁을 벌인다.

 

일단 영화와 관련해서만 얘기를 한다면, <부러진 화살>은 어처구니없는 사법부의 행태에 울화통은 치밀고 화는 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의외로 코믹하고 밝고 경쾌한 편이다. 이런 분위기는 대부분 인물, 캐릭터 때문에 빚어지는데, 이런 성과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적절히 연기해 낸 안성기, 박원상이라는 두 배우의 힘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문성근을 빼놓을 수 없다) 법 전문가인 판사, 검사를 상대로 법전을 들이밀며 따지는 김 교수나 언뜻 양아치 같은 느낌의 변호사가 주는 묘한 불협화음, 그리고 그것이 빚어내는 리듬감이 괜찮은 편이고, 따라서 의외로 대중적 재미가 많이 느껴진다.

 

한편 <부러진 화살>은 어딘가 거칠고 뻔하며, 일부 관습적 캐릭터들이 눈에 거슬린다. 특히 김지호(장은서 기자)의 캐릭터는 인권에 반하는 전형적인 중년남성의 판타지에 등장할 그런 캐릭터다. 언제나 원할 때면, 소주 한 잔 마셔주고, 바래다주며, 심지어 (성관계가 없었다고 해도) 침대에서 재워주기도 하는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여성이라니. 이 영화만이 아니라, 왜 많은 남성 위주로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에서 특히 기자역에 관습적으로 툭툭 여성을 데려다 별다른 역할도 주지 않은 채 소모시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또한 (일단 현실의 ‘석궁테러사건’과 연관을 배제한 채 영화만으로) <부러진 화살>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가 왜 잘 만들어진 법정영화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반면교사와도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건 부정적 의미에서다. 간단히 말하자면, 영화는 시종일관 김 교수는 ‘억울한 피해자’, 재판부는 ‘악의적 가해자’라는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역시 억울하게 오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피의자의 시선에서 영화가 진행되지만,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실이나 판단근거를 굳이 배제하지 않고서도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부러진 화살>이 취한 방식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건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영화가 아니라, ‘닥치고 나빠’라고 선동하는 영화에 가깝다.

 

가급적 진실과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면 ‘선동’ 영화가 그저 나쁜 건 아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그 어떤 수단보다 선동적이지만,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했다는 비판에서 빗겨나가 있다. 여기에서 과연 영화는 현실을 100% 반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당연히 홍보를 위해서겠지만, 정지영 감독을 포함해, 이 영화의 실제 인물들, 그리고 일부 기자들은 <부러진 화살>이 현실을 100% 반영해 만들었으며, 현실과 똑같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98%, 100% 말장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러한 발언은 최소한 ‘과장 광고’이며, 나쁘게 말하면 ‘거짓 선동’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엄밀히 말해 영화는 영화일 뿐이며, 아무리 현실을 반영하려 해도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감독의 연출방향에 따라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순간, 팩트가 아니라 팩션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조차 연출을 통해 현실을 왜곡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워낭소리>에서 할아버지는 소를 팔기 위해 우시장으로 향하고 다음 화면에서 소는 눈물을 흘린다. 많은 관객은 소가 자신이 팔려나가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믿지만, 그것이 화면의 짜깁기를 통한 편집의 묘인지 정말로 그러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부러진 화살>이 제기하는 문제는 명확하다. 권위의식과 엘리트주의가 사법부의 심각한 문제이고,그로 인해 이런 폐해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알아서 판결할 테니, 나중에 판결문만 보면 된다’는 식으로 실제 재판을 이끄는 경우도 많고,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사법피해자들도 많다. 그리고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정당한 재판,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의문을 가진 건 과연 ‘석궁테러사건’이 이러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에 적합한 사례인가 하는 것이다.

 

민사인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한 후 석궁으로 피해를 입혀 형사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점은 영화나 현실이나 동일하다. 실제 기록을 위주로 얘기를 해보면, 민사소송에서 학교 측은 여러 사례를 들어 김 교수에 대한 재임용 거부의 정당함을 입증하려 했고, 김 교수는 학교가 제기한 사례에 반론을 별로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학생들이 김 교수가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서명을 받아 제출하자, 김 교수는 ‘교수가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됐지 인격이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반론을 편다. 이것만으로도 김 교수는 지식전달자가 아닌 스승으로서 자격이 부족함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가급적 김 교수의 손을 들어주려 했음이 최근 당시 주심판사였던 이정렬 판사의 글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실제 판결문을 봐도 재판부는 ‘학교 측이 김 교수의 문제제기에 대한 일종의 보복으로 재임용거부를 했다는 의심은 들지만, 재임용 거부 자체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법대로 하자는 교수가 재판에 졌다고 석궁을 들고 가 판사를 위협한다? 그리고 의도했건 오발이건 상해를 입힌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아무리 독재시대 공안사건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나와도 판사에 대한 직접적 위해는 없었다. 그런데 살상무기를 가지고 판사를 위협 또는 위해를 가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대법원이 이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발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김 교수와 변호사는 대법원의 입장 발표 자체를 마치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오도한다.

 

영화의 핵심과 관련한 실제 공판기록을 보면, 첫째, 왜 재판부는 오발사고라는 피의자의 주장을 거부하였는가. 재판부는 김 교수가 1주일에 한차례 60~70발의 석궁발사연습을 했고, 7차례나 판사 거주지 주변을 사전 답사했으며, 일부러 풀지 않는 한 잠겨있어야 할 안전장치가 풀려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 발사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말 위협만 할 생각이었다면 석궁발사연습을 그렇게 열심히 할 이유가 있었을까? 또한 사건 당일 회칼까지 준비했으며, 검거 직후 경찰에게 ‘응징하려고 쐈다’라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노량진 수산시장 근처로 이사할 계획이라 회칼을 미리 구입해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 하는데, 수산시장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회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되나보다.

 

둘째,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는가? 이건 재판부의 잘못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잘못이며 판결문에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사용된 무기가 무엇인지 확정된 상태에서 ‘그 무기’가 없다는 것이 피의자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셋째, 와이셔츠의 혈흔은 어떻게 된 것인가? 혈흔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국과수 감정 결과 혈흔이 발견되었고, 이는 다른 옷에 묻은 혈흔과 동일한 혈흔임이 입증되었다. 재판부는 사건현장에 피해자는 한 명밖에 없었고, 사건 직후 피해자의 복부에서 피를 보았다는 증인들이 있으므로 이 혈흔을 피해자의 피로 해석했다. 1심만 하더라도 이런 해석에 피의자는 아무런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2심에 와서 김 교수와 변호인의 반론이 제기되는데, 박홍우 판사가 스스로 위해를 한 것이란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혈흔과 옷에 묻은 혈흔에 대한 감정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위해를 했다면 당연히 피해자의 피일 텐데, 만약 다른 사람 피라면 피해자가 자신을 위해하면서 다른 사람의 피를 묻혔다? 피가 너무 적게 나와서? 검사가 ‘피해자가 자해를 했다면 와이셔츠에 묻은 피는 당연히 피해자의 피가 아니냐?’고 묻자 변호사는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란다. 대체 어쩌라고? 지금에 와서 당시 재판부는 혈흔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걸 아마 최대의 실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나 자신도 여러 매체로 인해 석궁사건은 피의자에게 대단히 억울한 사건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논란이 된 김에 대충이라도 훑어보고 싶어 읽어본 공판기록은 내가 알고 있던 사건과 상당히 다른 사건이었다. 물론, 판결문이나 공판기록 자체만으로 그 재판정의 분위기를 100% 감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영화보다는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공판기록을 보면 언론의 이슈로 삼기 위해 재판을 개판으로 만들려 노력한 책임은 피의자 측에 더 많이 보인다. 심지어 저 석궁이 내가 소지한 석궁이라는 증거가 있느냐며 윽박지르고, 통신사에서 모든 통화를 저장한다며 피해자의 통화내용을 증거로 요청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재판부가 차라리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라고 하자,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깐, 사법부가 전체적으로 권위적이다, 아무리 악독한 범죄자라도 공정한 재판의 기회는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위해 사례로 제시한 ‘석궁테러사건’은 논거로 삼기엔 지극히 위험하며, 심지어 그것마저도 피의자에게 불리한 상황은 배제한 채 유리한 논거들만 모아 놨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아쉬운 점이다.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사법문제와 관련해 우리사회가 보호해야 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차적 대상은 사회적 지위나 지식으로 스스로를 변호하고 보호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보다는 돈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 자신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해 부지불식간에 당하는 사법피해자들일 것이다. 차라리 이들의 사례를 모아 영화로 제작했다면, 화제성에서 떨어졌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진정성에선 의심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영화에서처럼 김 교수는 살인미수죄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 여러 자료에서 보이는 김 교수의 행태는 실로 놀랄 정도다. 법과 원칙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람이 94년도 자신의 과목이 폐강위기에 처하자 수강신청만 해도 B학점은 보장한다며 학생들을 모았고, 시위학생들에게 ‘저런 놈들은 총으로 쏴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막말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을 돕겠다는 사법피해자 모임 소속의 사람들과도 조금만 의견이 다르면 욕설을 퍼부어 쫓아냈으며, 재판 과정을 책으로 펴낸 <부러진 화살>의 작가에게도 모욕과 욕설을 퍼부어댔다고도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인터뷰를 봐도 딱히 변한 것 같지는 않다.

 

※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판사가 왜 피해자가 자해를 했겠냐고 물어보니, 변호사 한다는 말이 ‘뜨고 싶어, 크게 되고 싶다는 영웅심의 발로로 자해’했단다. 최근엔 영화 속에서 변호사로 출연한 박원상 씨가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봐 촬영현장을 방문해 열심히 하라며 식사 도중 숟가락으로 머리를 내리쳤다는 얘기를 너무나 자랑스럽다는 듯 인터뷰에서 얘기하는 걸 보고는 좀 당황스러웠고, 민망했다. 이건 대체 무슨 정신상태일까?

 

※ 소위 개념판사로 불렸던 이정렬 판사가 이 영화로 인해 순식간에 악질판사, 꼴통판사로 불리며 대중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렇듯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책임한 선동은 애먼 피해자를 양산한다.

 

※ 애당초 감독이나 영화 관계자 등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며, 우리나라 사법부가 지니고 있는 문제의 일단을 드러내고 싶었다’ 정도로 정리했다면 아마도 별 문제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흥행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과도한 현실성 부여는 과도한 논란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논란이 영화의 흥행에는 도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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