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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것이다... 고지전
ldk209 2011-07-22 오후 3:04:54 885   [1]

 

전쟁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것이다... ★★★★

 

내가 군 생활을 했던 지역에 ‘아이스크림 고지’라는 곳이 있었다. 넓은 평야의 한 가운데에 불쑥 솟아오른 듯한 야트막한 조그만 언덕. 낮고 별 볼일 없는 언덕 같은 곳이지만 평야 가운데 있다 보니 조망권이 좋고 그래서 전략적 요충지로 꼽혔나보다. 아이스크림 고지란 이름의 유래는 정전협정을 앞두고 이곳을 차지하려는 남북한 군대가 얼마나 많은 양의 폭탄을 쏴댔는지, 마치 산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산 높이가 달라질 정도로 포탄을 쏴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인명이 당시에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희생되었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리라.

 

아마 휴전선 일대에 걸쳐 아이스크림 고지와 같은 유래를 안고 있는 고지가 많으리라 짐작된다. 왜냐면 휴전협정은 2년에 걸쳐 지속되었고, 그 2년 동안 남북은 휴전선 전역에 걸쳐 아이스크림 고지 또는 영화 <고지전>의 애록고지에서처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의 대부분은 전쟁 초반에 국한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됨으로서 약 3년에 걸친 전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의 주요 기록을 보면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 1950년 10월 1일 유엔군 및 국군의 38선 돌파, 1950년 10월 19일 평양 입성, 1950년 10월 26일 국군 압록강 도착, 1951년 1월 4일 1ㆍ4 후퇴, 1951년 7월 10일 휴전협정 돌입 등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한 기록은 전쟁 발발 1년 이내이고, 나머지 2년은 시종일관 현재의 휴전선을 사이에 둔 유혈이 낭자한 고지 쟁탈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 역시 전쟁 개시 1년 이내의 사건을 주요하게 다뤄왔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전협정을 눈앞에 1953년 2월부터 7월까지를 주된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는 아마도 <고지전>이 처음일 것이다. 영화의 지리적 배경은 동부전선의 애록고지. 고지의 주인만 수십 번 바뀐 애록고지의 중대장이 아군 권총에 의해 죽은 사건이 발생하고 일부 국군이 인민군과 내통한 흔적이 발견되자 방첩대 소속의 강은표(신하균) 중위는 조사를 위해 악어중대에 합류한다. 애록고지로 향한 강 중위는 그곳에서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친구 김수혁(고수) 중위를 만나게 된다. 강 중위를 경계하는 듯한 수혁과 악어중대원들에겐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은표는 이곳에서 감춰진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고지전>는 전쟁영웅이라든가 위대한 작전과 이를 수행한 군인의 무공을 다룬 이야기하고는 거리가 멀다. <고지전>이 내세우는 화두는 인간이고 생명이다. 영화의 처음 장면을 보면서 떠오르는 건 <미션>이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아무렇게나 그어버린 경계선 때문에 죽어야 했던 원주민들과 조금 더 유리한 휴전선을 긋기 위해 2년 동안 결별을 거듭한 정전협상 때문에 죽어야 했던 수십, 수백만 군인들의 처지는 결코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이곳 군인들의 신세는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더 절망적이고,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더 암울하다. 자신들이 죽여야 하는 대상과 자신들과 교류하고 있는 대상이 일치하는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조차 모르는 신세는, 이를 지켜보는 관객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떠오르는 문장 하나.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웃기는 소리. 이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은 권력자들,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 대신 죽어줄 사람들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뱀의 소리에 불과하다. <고지전>에선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군을 죽여야 하며, 자신이 살기 위해 전우를 미끼로 던져야 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바로 전쟁이며, 전쟁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쟁과 싸우는 것이라는 게 <고지전>의 주장이다. 수혁은 말한다. “니가 정말 지옥을 본 적이 있어?”

 

화두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막내였던 신일영(이제훈)이 대위로 중대원들을 통솔할 수 있게 된 유일한 이유도 중대원들을 살아남게 했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 이오지마 섬을 지키는 일본군 사령관의 마지막 명령은 “끝까지 살아남아라!” 그러나 국가는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져 섬을 사수하라고 명령한다. 살아남는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의 간극. 강은표는 영화의 마지막에 인민군 지휘관 현정윤(류승룡)에게 묻는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뭐야?” “예전엔 분명히 알았는데 너무 오래돼서 다 잊어버렸어”

 

우리가 기억하는 전쟁의 대부분은 통계수치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통계수치로 기억되는 전쟁엔 항상 인간이 빠져있다. 가끔 어떤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120명. 얼마 안 되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도 끔찍한 대화들. 그 전쟁에 120명이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우리와 똑같은 어떤 생명이 죽은 전쟁이 120번 일어난 것이라는 누군가의 지적이 떠오르는 순간들을 영화는 제공한다. 그러므로 ‘애록고지를 둘러싼 고지 탈환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막내 성식이가 죽은 전쟁이 50만 번 일어난 전쟁이라는 얘기다.

 

당연하게도 100억이나 투입된 전쟁 블록버스터가 의미만 강조된다고 해서, 좋은 의미를 품었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전쟁영화의 재미는 전쟁장면의 재현에 있음을 <고지전>은 보여준다. 고지를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오르는 군인들의 생명을 건 질주와 터지는 포탄은 마치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고지 가운데로 관객을 인도하는 듯하고, 어느 순간 카메라가 돌며 고지 위에서 조망할 때 느껴지는 그 허무한 감정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하게 느껴지는 장면은 폭탄이 터져 팔이 끊어지고 다리가 끊어지는 전투 장면이 아니라, 정전으로 전쟁이 끝났다며 좋아하던 군인들 앞에 정전협정의 효력은 12시간 후라며 최후의 전투를 지시하는 장면에서다. 그저 부속품처럼 버려지는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정서들.

 

물론 이러한 정서들을 느끼도록 안내하는 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의해 뒷받침된다. 극을 끌고 나가는 신하균, 김수혁의 연기도 좋고, 적은 분량이지만 이제훈과 김옥빈, 이다윗의 비중도 상당하다. 거기에 류승수와 고창석은 극이 너무 무겁게 진행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부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이 모든 캐릭터들이 허투루 소비되지 않는 것에서 장훈 감독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 영화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말들의 성찬이 전시된다. 의미의 과한 강조로 인해 후반부가 늘어지는 건 아쉬운 지점. 그리고 누군가 말했듯이 마치 한국영화라는 걸 증명이나 하듯이 주요 캐릭터가 죽기 전에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죽는다.

 

※ 한국 전쟁영화가 조금만 드라이해질 수는 없을 것일까?

 

※ <고지전>은 <파수꾼>에서 알게 된 이제훈이란 배우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든 영화다.

 

※ 정말 작은 분량이고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김옥빈은 너무 이쁘게 나오며, 눈에 콕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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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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