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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삶에는 그 사회의 역사가 등재된다.... 페르세폴리스
ldk209 2008-05-09 오후 5:20:48 3066   [18]
한 개인의 삶에는 그 사회의 역사가 등재된다....

 

우연찮게 이 영화를 보게 됐다. 개봉은 5월 8일이라고 하는데 지난 토요일 그러니깐 3일, 스폰지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이미 그 때부터 하루에 한 번 정도 상영시간이 잡혀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별 할일도 없던 차라, 바로 예매를 하고 명동 스폰지로 갔다. 극장에 가서 팜플렛을 집어 들고서야 이 영화가 이란 출신의 한 소녀에 관한 얘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정도로 사전 지식도 전무했더랬다.

 

아무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화면을 가득 메운 투박한 셀애니메이션은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기술은 한 때 '동물의 섬세한 털을 표현했다'거나 '빛에 반짝이는 내려앉은 먼지 입자를 표현했다' 는 등의 광고를 하며 경쟁하더니, <베오울프>에 와선 아예 디지털 배우들이 실제 배우를 대체하는 정도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최근 개봉한 <스피드레이서>는 실제 배우들이 만화 속에 들어간 것 같은 이종교배의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다지 성공적 교배인지는 확신하긴 힘들다. 어쨌거나 이런 애니메이션 기술 발전 가운데, 마치 검정색 색연필로 대강 그린 듯한 투박한 애니메이션이라니. 표현도 참 순박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런 투박하고 순박하고 단순한 그림이 담고 있는 얘기는 너무나 풍성하고 그득하며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끝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란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슬람, 축구,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영화, 또는 테러 등일 것이다. 영화 제목인 <페르세폴리스>는 고대 이란(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를 말한다고 한다. 굳이 고대 이란의 수도를 제목으로 사용(원작도 마찬가지)한 건 이란 출신의 저자가 외국에선 주로 부정적 이미지로만 묘사되는 이란일지라도 자신과 이란에 살고 있는 많은 민중들에겐 오랜 역사를 지닌 조국이며,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살아가야 할 터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영화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6년의 시간을 담고 있으며, 그 시간에 이란과 오스트리아, 다시 이란, 그리고 프랑스를 넘나들며 격동의 한 시절을 헤쳐 나온 이란 소녀 마르잔의 성장하는 과정을 쫓아간다. 1926년 수립된 팔레비 왕조는 서구화를 주장하며 이란 선진화를 주도하지만 팔레비 2세에 들어오면서 반대 세력을 말살하는 등의 독재 정치가 펼쳐지고, 이에 국민들 사이에선 왕조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져만 간다. <페르세폴리스>의 초반 장면은 이런 분위기를 역력하게 보여준다. 마르잔의 집안은 부유하지만 매우 진보적인 집안으로 공산주의자인 삼촌은 투옥 중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란 내에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 세력의 오랜 전통이 있었으며,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 마르잔 사트라피 역시 집안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랐음을 알 수 있다.

 

드디어 이란 혁명은 성공하지만 이란 민주파와 사회주의 세력은 혁명 주도 세력이 되지 못한다. 영화에서도 일부 그려지긴 했는데, 당시 좌파 등은 사태를 너무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혁명의 과실은 온전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돌아가고, 세속 정권이 이끌던 이란은 정반대의 종교 정권이 장악하는 사회로 진입해 들어간다. 중동 대부분의 국가가 접하고 있는 현실, 친미 독재국가이거나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어느 사회에서도 정치적 자유는 주어지지 않고, 사상의 자유는 탄압 받으며, 민중들은 억압의 대상이 된다. 비지스, 마이클 잭슨, 펑크 롹에 열광하며 헤드뱅잉을 해대던 소녀 마르잔은 강압적으로 히잡을 써야 하는 이란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해 나갈 수가 없다.

 

혁명의 와중에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해 더욱 피폐해진 조국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건너간 마르잔은 그곳에서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혼란을 경험한다. 인종차별, 고국에 대한 향수, 그리고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며 노숙으로 전전하던 마르잔은 다시 이란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란의 현실은 시꺼먼 천을 둘러쓴 여인을 그려야 하는 미술시간처럼 도저히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영화는 다시 이란을 떠나 프랑스에 도착한 마르잔의 회상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삶에는 그가 살아온 사회의 역사, 정치가 등재되어 있다는 얘기를 쉽게는 하지만 그걸 실재화시켜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고 어려운 이란 현대사를 강압적이거나 교조적인 계몽을 통한 방식이 아닌 한 소녀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구체화시켜, 그것도 매우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특히 사랑을 할 때는 잘생기게 묘사했던 애인의 얼굴을 헤어진 이후엔 매우 못생긴 얼굴로 묘사한 것 등은 저자의 상상력과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 묘사가 결부된 아주 재밌는 장면이었다.

 

실제 저자인 마르잔은 프랑스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란에 대한 편견과 부딪치며 지내다 우연히 유대인의 얘기를 다룬 만화를 접하고, 자신의 얘기를 만화로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0년 첫 권이 발매된 <페르세폴리스>는 현재까지 총 네 권이 발매(국내엔 두 권으로 묶어서 발매)되었고, 이 네 권은 영화 <페르세폴리스>에 온전히 표현되어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원작으로 인해 제니퍼 로페즈, 브래드 피트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로의 제작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잔은 자신의 연인인 뱅상 파로노와 함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혁명 전통에 대한 비사실적 묘사'라는 등의 주장을 펼친 이란의 상영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7년 칸영화제에 선을 보였고,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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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2007, Perse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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