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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화 찬스는 누구에게 마이 베스트 프렌드
jimmani 2007-05-07 오전 9:55:35 1310   [3]

연예인들의 어렸을 적 친구들을 찾아보는 TV프로그램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만약 저런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과연 몇명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저 사람들처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가슴에 남는 추억들이 몇개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간 후에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새삼 들게 된다. 이런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머리가 점점 클수록 친구라는 단어의 개념도 다르게 다가오는 듯하다.

어렸을 적 친구라는 존재는 그저 같이 놀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존재였다면,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친구라는 존재는 즐거움이라는 감정 뿐만 아니라 온갖 희노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특유의 훈훈한 여유가 넘치는 영화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친구의 존재에 더욱 목말라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의 삶에서 예고없이 새벽에 전화하더라도 흔쾌히 함께 수다를 떨어줄 만한 친구는 과연 몇명이나 되는가라고.

골동품 딜러로서 나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프랑수아(다니엘 오떼이유)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그 중에서 정작 진국인 인간관계는 거의 없다. 가뜩이나 자기 생일날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그 중에서 정작 친구로 여길 만한 사람들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프랑수아는 즉석에서 내기를 제안한다. 열흘 안에 친구라고 여길 만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 실패한다면 그가 회사돈으로 질러버린 고가의 그리스 로마 화병을 고스란히 남의 손에 넘겨야 한다. 오기로 친구찾기를 시작한 프랑수아,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그는 자신에게 정말 친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극심한 외로움에 휩싸인 프랑수아. 그러던 중 택시기사 브루노(대니 분)를 만난다. 브루노는 낯선 사람과도 곧잘 대화를 할 만큼 붙임성은 참 좋지만 정작 주변 사람들은 쓸데없이 아는 척한다고 지루하다며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인물. 아무에게나 쉽게 다가서는 그의 모습에 프랑수아는 즉석에서 친구 사귀는 법을 가르쳐줄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그들만의 "친구 만들기 수업"이 시작된다.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달리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이 영화는,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얼마나 알차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연기 앙상블은 나무랄 데 없이 달콤하다. 프랑스 영화에 관심없는 사람들이라도 얼굴을 보면 꽤나 낯이 익을 만한 프랑스의 대표 연기파 배우 다니엘 오떼이유는 이 영화에서 나름의 성공을 일궜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가뭄을 면치 못하는 외로운 현대인 프랑수아를 연기한다. <제8요일>, <히든> 등 예전 작품들에서 흔히 보여온 프랑스 중산층 남성의 모습을 또 다시 보여주고 있지만 그 개성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영화의 장르가 뽀송뽀송한 코미디이다 보니, 그가 여기서 보여주는 프랑수아의 캐릭터는 전작들에서 보여준 메마른 인간성이나 잔혹함을 강조하기 보다는 철이 덜 든 어른으로서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면이 아기자기하게 표현된다. 사뭇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을 듯한 겉모습이지만 착하지 않아도 미워할 수 없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능청스럽게 소화해 내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면모를 또 한번 자신 있게 내세운다.

하지만 이렇게 잘 알려진 다니엘 오떼이유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배우가 있으니, 바로 그의 상대역인 브루노 역의 대니 분이다. 얼핏 보기에 축구 선수 웨인 루니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그는, 붙임성은 좋지만 친구는 없고, 퀴즈 맞추기는 좋아하지만 예선에만 나갔다 하면서 신경 과민으로 탈락되는 독특한 캐릭터를 거부감없이, 그렇다고 강렬하게 부각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며 맛깔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얌전하고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 프랑수아와 호흡을 맞추면서 대범한 듯 하지만 극도로 소심한 남자의 모습을 재치있게 그려내며, 환상의 호흡을 일구어냈다. 후반부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에서 초를 다투는 긴장감을 코믹하면서도 나름 스릴 있게 표현해내는 그의 연기는 일품이다.

프랑스 영화하면 특유의 말투 때문인지 지루하다는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고,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프랑스에서도 헐리웃스러운 대규모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프랑스 영화만큼 낭만적인 여유가 가득 들어 찬 영화는 없을 것이다. 청산유수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 특유의 프랑스 말투와 자극적이지 않은 평범한 소재들로 삶의 진리를 이끌어내는 프랑스 코미디는 짜릿한 웃음도, 최루성 감동도 없지만 그만큼 빡센 감정들로 가득한 영화들 속에서 흔치 않은 여유를 안긴다. 이 영화 <마이 베스트 프렌드>도 마찬가지다. 늘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이야기하던 빠뜨리스 르꽁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친구라는 인간 관계를 가지고 또 한번 삶을 이야기하는데, 친구 만들기라는 참 별 거 없을 것 같은 설정에서 출발한 영화는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더욱 기특한 것은, 그 재미가 프랑스 영화 매니아들이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발견할 수 있는 재미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 아무 정보 없이 봐도 부담없이 박장대소할 수 있는 재미라는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프랑스 영화의 나른하고 알 듯 말 듯한 전개를 따라가지 않는다. 친구라는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 직설적으로 설파한다. 프랑수아의 친구들은 눈앞에서 대놓고 "당신한테 친구라는 존재는 없어"하고 살벌하게 쏘아붙이고, 아는 사람은 많지만 친구는 없는 프랑수아와 아는 사람은 없지만 붙임성은 참 좋은 브루노의 캐릭터가 주는 대비된 이미지도 선명하다. 두 주인공이 본의 아니게 우정을 쌓아가면서 갈등을 겪고, 진정한 베스트 프렌드로 발전해가는 과정도 기승전결이 뚜렷해서 보통 헐리웃 코미디와 유사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에서의 갈등 해소 장면은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이렇게 쉬운 재미를 주면서도, 프랑스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푸근한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등급이 "전체 관람가"이니만큼, 영화에는 노골적인 성적 유머도 속이 빤히 보이는 유치한 언어 유희같은 것도 없다. 초중반부에서는 맵게 웃기다가 후반부에 가서 짜게 울리는 극명한 갈등 구조도 갖고 있지 않다. 영화는 시종일관 친구 만드는 기술이 영 없는 프랑수아와 실속 없이 붙임성 좋은 브루노가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주며 자연스런 웃음을 안긴다. 그러면서 만만치 않은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고립되어 있다가 서로 연대감을 갖게 되는 프랑수아와 브루노의 모습에서 어느덧 가슴 뻐근한 공감대를 갖게 된다. 사람들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지면서 인간관계를 쌓았지만 그 중에 실속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 하는 프랑수아의 모습에서 삭막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씁쓸해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친구를 만들고 싶지만 옆에 있던 사람들도 밀어내는 특이한 성격때문에 애로사항을 겪는 브루노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 생활에 영 쑥맥인 한 사람으로서 절실히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이니만큼 다소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철저히 현실에 천착한 두 캐릭터의 만남은 희극적인 웃음 속에서 어느덧 자연스럽게 감동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이와 함께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다운 감칠맛을 여전히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면 현실적인 비유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해 나름의 결핍을 지니고 있는 두 주인공에게는 어떤 상징적인 사물이나 상황이 있다. 프랑수아에겐 그리스 로마 화병이 그것이고, 브루노에게는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분명 사람이 그리울 것임에도 자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프랑수아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화병에 끌린다. 그 화병은 아킬레스와 페트로클루스의 끈끈한 우정을 담은 화병이다. 우연히 충동적으로 끌려 지르게 된 그 화병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그동안 관계에 관한 깜깜했던 눈을 새롭게 뜨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브루노는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을 목숨걸고 좋아하는 퀴즈광이다. 평소 신문을 스크랩하며 쌓은 풍부한 지식들 덕분에 프로그램에 나오는 웬만한 퀴즈는 다 맞추는 실력을 자랑하지만, 예선에 참가할 때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도 못하면서 벌벌 떨기만 한다. 그는 가지고 있는 열정만큼 성격이 따라주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런 그의 면모는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퀴즈를 맞추는 걸 낙으로 삼고 사람들과 만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방청객들로 가득찬 스튜디오에서는 땀에 쩔 만큼 긴장한다. 무엇보다 긴장되는 순간은 전화 찬스. 누군가 믿음직스럽게 의지할 사람이 있어야만 걸 수 있는 전화 찬스지만, 의욕에 비해 친구가 너무 없는 그에게 전화 찬스할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브루노에게 생방송 퀴즈 프로그램이란, 의욕에 비해서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 브루노의 고달픈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는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쉬운 전개 속에서도 독특하면서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는 비유법을 통해 여전히 남아 있는 프랑스 코미디 특유의 낭만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100%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걸 수 있을 전화 찬스를 기꺼이 시도할 사람이 나의 주변엔 과연 몇이나 있을까. 전화 찬스를 통해 진정으로 통하게 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이런 질문을 한다. 온갖 가식과 시기 속에서도 끝까지 믿어줄 수 있는 존재, 전화 찬스를 쓰겠다 싶으면 곧바로 떠올릴 만한 바로 그 사람. 그것이 진정 "베스트 프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격한 감정의 변화로 관객들에게 또 다른 방식의 노골적인 자극을 주려고 하지 않고, 1차원적인 방식으로 순간적인 웃음을 유발하려는 영화도 아니다. 산들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만나고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우스꽝스런 상황에 웃으면서도 가슴 뜨끔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훈훈하게 데워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적극적으로 티를 내고 있진 않지만 감정은 얼마든지 풍부한 그런 영화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서 자칫 전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전개 속에서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비유와 상징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프랑스다운 낭만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 농담 삼아 던진 내기 얘기에서 지는 사람이 받아야 할 벌칙으로 "더 많이 사랑해 주기"라는 장난 어린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까지 영화는 사랑스러운 훈훈함으로 가득차 있다. 달콤한 이야기, 하지만 깊은 메시지. 프랑스 코미디의 매력에 어느덧 한발짝 더 다가서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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