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초기에도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제작 중반에는 범인을 맡은 배우도 철저히 감추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영화. 티져 예고편은 또 어떤가.. 폐차장같은 장소에 묶여있는 ‘도베르만(개의 일종)’이 사납게 짖고 있고, 그 옆에는 살기가 가득한 아이가 서 있다.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데, 엔딩에서는 아이가 무언가 흡족하듯이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 황당하고 어설픈 초콜렛 광고같은 성우의 음성이 들려온다. ‘살인을 부르는 이름 H(에이치)’ 라고...
거의 2년이 가까워오도록 코미디류의 영화가 극장을 잠식하는 요즈음, 정통 스릴러라는 기치를 내걸고 오랜만에 관객과 두뇌싸움을 벌일 영화가 찾아온다. 사실, 이 영화가 나오기 이전에도 스릴러를 표방하며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친 영화는 있었다. <텔미 썸딩>이 ‘한석규’와 ‘심은하’라는 배우의 명성을 등에 업고, 관객몰이를 한지 어언 3년이 지났고.. 이때쯤 한번 나오겠지 생각할 때, 이 영화는 슬그머니 다가왔다.
제목부터도 스릴러답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나라 영화사상 이렇게 짧은 제목은 없었다. ‘H(에이치)’.. 영화 속 범인의 이니셜(범인의 이름은 ‘신 현’이다)이기도 하고, 영화의 꼬인 매듭을 풀어주는 반전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겨우 이 영화를 풀어줄만한 단서이지만, 더 이상 밝히면 영화가 재미없어지므로 일단 접기로 하겠다.
1년 전.. 6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살자는 모두 여성이었으며, 사체의 일부를 절단 혹은 절개한 무자비한 연쇄살인 사건이었다. 놀랍게도 이 잔혹한 연쇄 살인범은 자신의 마지막 희생양이었던 여인의 사체를 들고 시경에 나타나 자수한다. 6명을 죽인 연쇄 살인범 ‘신 현(조승우 분)’. 그는 현재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다. 1년 후.. ‘신 현’의 수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여고생, 임산부의 시체가 발견된다. 두 사건이 모방 범죄라 추정하는 시경 강력반의 담당형사 ‘김미연(염정아 분)’과 ‘강태현(지진희 분)’. 그들의 직감대로 ‘신 현’의 수법과 유사한 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 미연과 ‘태현’는 연쇄살인의 단서를 찾기 위해 감옥에 있는 ‘신 현’을 찾아가지만, 해맑은 미소를 띠며 ‘살인만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만을 전하는 ‘신 현’에게 사건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을 한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갇혀 있고, 단서 하나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미연과 태현은 혼란에 빠진다.
사건은 생기는 데 범인도 없고, 증거도 없다 이렇게 막연한 구석에서 미연과 태현은 사건을 해결해야한다.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미궁에 빠질 것만 같은 사건... 제자리만 맴도는 수사가 계속된다. 차가운 표정과 냉철한 이성을 소유하고,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강력반 형사 팀장을 맡고 있는 ‘미연’과 의욕만 앞선 불도저식 수사방식으로 ‘미연’ 번번히 충돌하는 강력반 신참내기 형사 ‘태현’은 겉으로 봐도 전혀 어울릴 꺼 같지 않은 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형사 버디무비를 지금껏 수차례 봐왔다. 그 장르가 스릴러가 아니었을 뿐이지 그들은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베테랑같이 사건을 척척 해결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내심 그걸 기대한다. ‘저렇게 지지부진하다가 결국은 해결하겠지’ 라고.. 그리고 그 예상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 그걸 쫓다가 이 스릴러라는 영화의 중요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스릴러라 함은 그야말로 관객을 고단수로 속여야하는 장르이다. 그것이 우리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게하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줘야 하는 스릴 본연의 임무이다. <텔미 썸딩>이 그러했고, 외국 영화로는 아직도 국내 영화팬들의 화자에 오르내리는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 센스>가 자릴 차지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빈틈없는 각본이다. 그 물샐틈없이 잘 짜여진 각본이야 말로, 스릴러라는 영화적 장르의 절반 이상을 먹고 들어가는 우군인 것이다. 하지만, <H(에이치)>는 아쉽게도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로 일관한다. 그래서 결말을 보기도 전에 영화에 흥미가 줄어들어 버린다. 아무리 결말이 충격을 주더라도, 그렇게 된다면... 충격에 휩싸이기는커녕 무덤덤해 질뿐이다.
영화적 컨셉은 좋았다.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이종혁’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각본까지 1인 2역을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 영화는 두고두고 필자의 가슴에 공허함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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