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류승완 감독에 대한 기대는 포기할 수 없나 보다. 정말 잘도 만든다. 이 영화 역시 류 감독이란 이름을 다시 각인시킨 좋은 영화다. 연기자들의 호연이 덩달아 좋으니 영화 보는 재미로 무려 2시간의 분량임에도 피곤할 기미를 느끼지 못했다. 좀 더 왜 길지 않았는지 투정을 부리고 싶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재미만 던져 주는 그런 몰지각한 감독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국의 현 사회에 그리워진 비극적인 구성과 내용들이 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종의 정의의 수호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식의 액션영화지만 이 영화는 B급으로 분류할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찼다. 그래서 이번 영화 ‘베테랑’은 마냥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지 못하고 그 이상을 보여준다. 영화, 정말 신난다. 계속 업그래이드되는 류승완 감독 작품의 액션들은 언제나 보기 좋다. 기발한 구성과 산뜻한 몸놀림, 거기에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동작들과 활력으로 정말 액션영화가 뭔지를 보여주는 고전들이 매 편 류승완 감독에 의해 나오고 있다. 정두홍 무술감독과의 케미가 참 쏠쏠하다. 도대체 이 둘의 조합의 끝은 어디일까 무척 궁금하기도 하다. 정말 두 사람은 갈 때까지 가볼 속셈인가 보다. 신나고 통쾌한 액션, 그리고 정의감으로 뭉친 어떤 베테랑 경찰인 ‘서도철’(황정민)은 사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생존하기 참 힘든 경찰이란 것을 모두가 잘 안다. 좀 정의롭게 뭔가 하려고 하면 권력자들의 야합으로 인해 상부 지시가 내려오고 헌법보다 상위인 외압으로 인해 대충 정리되는 그런 캐릭터다. 사실 저런 캐릭터가 영화에서 주인공이 되긴 하지만 배트맨이 지금 정의를 위해 소시민을 보호해준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처럼 서도철도 그런 인물쯤으로 보인다. 그냥 한국에선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설사 있더라도 힘 없는 그런 인물. 그래서 도리어 능력이 없다고 조직에서 박살이 날 것이다. 이와 반대로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집단인 재벌의 돈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 먹은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은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조태오 대신 유명 재벌들 자제분들의 이름을 써도 무방한 인물들이 사실 무척 많다. 각종 혜택은 받으면서 그게 마치 자기들 능력인 줄 착각하고 있고, 사회의 고마움을 전혀 모른 채 생활하면서 바닥 인생들을 무참히 짓밟고 있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사실 한국엔 천지다. 이런 인간과 정의로운 하층 계급인 일개 형사와의 대결은 안 봐도 뻔하다. 그냥 박살이 났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주의 영화로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무력감을 확인하려고 극장을 찾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리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지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선택은 매우 현명하고 고맙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볼 수 있었던 현실을 보고 그냥 외면하고 싶을 뿐 그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는 슬픈 현실에 자괴감을 들고, 그냥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만다. 과연 그게 좋은지 의문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의 이번 선택은 도피보다 적극적인 도전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게 허황된 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 속의 도전과 기쁨이 너무 반갑다. 한국 재벌들의 겁 없는 탐욕이 도를 넘어 한국의 구성원들의 삶이 더욱 처절해지는 이때 이 영화는 그래서 반갑다. 소규모 점포로 인생을 좀 더 길게 살아보려는 이들에게 덮친 각종 거대 마트들의 침공과 열정페이라면서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재벌들의 노동정책을 보면서 뭔가 개선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다들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대 간의 전쟁이 더욱 가열되면서 보수 편에 서서 지금의 삶이라도 계속 누려보려는 세대와 이제 막 시작하려 하지만 형편없는 상황에 좌절하고 마는 미래세대들 간의 전쟁의 심화로 인해 사실 뭔가 바뀌는 것도 요원한 실정이다. 사실 한국의 향후 몇 년 안에 그리스 사태가 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냥 시간의 문제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한국의 위기 속에서 대형 사건을 쳐서 감옥에 간 재벌들을 풀어줘서 경제 살리기에 힘 좀 보태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은 더욱 아프다. 사건을 친 이들이 과연 감옥에서 개과천선이라도 할건가? 그냥 현 집권세력과의 따뜻한 관계로 인해 풀려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니면 뭔가 국민들이 알 수 없는 방식을 통한 거래가 있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대다수의 서민들의 이익이 반영될 리 없는 재벌들에 대한 경제 사면의 이야기를 보면 조만간 서민들을 박살내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길 늑대들이 대량으로 풀리겠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과연 조태오 같은 인간이 경제사면을 받는다고 한국에 이익일까? 도리어 손해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국민들의 이익이 고려대상이 아닌 지금, 조태오 같은 인간이 감옥에서 1년도 못 채운 채 풀려날 것이라는 사실을 한국의 역사는 보여줬다. 심지어 재벌 2세가 조직원들을 동원해서 문제를 크게 일으켰는데도 처벌 받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그게 한국 사회가 한국의 미래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다. 이 영화처럼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바람, 너무 순진한 것이겠지만. 아무튼 영화 정말 재미있고 즐겁게 봤다.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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