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c106507)에 작성한 글을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순수, 야망, 타락, 복수 모두 신파적 치정멜로로 귀결되고 만 팩션사극 / 청소년 관람불가 / 113분
안상훈 감독 / 신하균, 장혁, 강한나, 강하늘.. / 개인적인 평점 : 4점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목요일(5일) 메가박스 북대구에서 관람하고 온 <순수의 시대> 이야기를 해볼려구요.
<아랑>, <블라인드>를 연출하신 안상훈 감독님의 세 번째 장편연출작인 <순수의 시대>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조선 초기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인 '왕자의 난'을 소재로 한 팩션사극(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이야기를 더한 장르)인데요. 개인적으로 장혁씨를 워낙에 좋아하는 데다가 얼마 전에 종방된 <미생>을 통해 한창 주가가 치솟고 있는 강하늘씨의 사극 연기가 궁금했던터라, 적은 제작비(54억)로 인해 액션이나 스케일면에 있어서 약점을 보일 것이라는 점이 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기대감을 품고 있었던 작품이었죠.
■ 안상훈 감독님의 연출작
※ 위 표에 사용된 데이터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참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자, 그럼 과연 저의 은근한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준 <순수의 시대>였는지, 언제나 그렇듯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그대로 지금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려보도록 할께요. ^^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네 남녀의 이야기
줄거리 조선 건국 7년(1398년), 계비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어린 아들 방석(현석준)을 세자로 책봉한 태조(손병호)는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는 다섯 번째 아들 정안군 이방원(장혁)을 견제할 요량으로 삼봉 정도전(이재용)의 사위이자 부마(임금의 사위) 진(강하늘)의 아비이며 또 오랑캐 정벌의 일등공신이기도 한 김민재(신하균)를 조선군 총사령관인 판의홍 삼군부사에 임명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정안군과 김민재는 둘도 없는 친우(親友)에서 숙명의 적으로 맞서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취향루에서 승전 연회에서 김민재는 어린 시절 자신의 눈앞에서 자진한 어머니의 모습을 쏙 빼닮은 동기(수련 기녀) 가희(강한나)에게서 발견하고는 크게 마음이 동요하게 되는데요. 과연, 이들에게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요?
리뷰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사극치고는 제작 규모가 작은 <순수의 시대>라는 점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전 '스케일'과 '액션'보다는 1차 왕자의 난을 얼마나 긴박하고 흥미진진하게 각색해냈을지에 주안점을 두고 관람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했었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극장에서 확인한 <순수의 시대>는 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왕자의 난보다는 19금 로맨스와 치정극에 치중한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저의 의표를 찌르고 있더라구요. ^^;;
견고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4색(色)의 순수(純粹)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왜 제목에 순수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하고 궁금했었던 <순수의 시대>라는 제목은 작품을 감상하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그 의도가 와 닿았었는데요. 그 의도는 다름 아닌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과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이라는 '순수'의 이 두 가지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 것이었죠.
<순수의 시대>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이란 의미로써의 순수를 보여주는 김민재와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란 의미로써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이방원과 진, 그리고 이 두 가지에 모두에 해당되는 순수를 보여주는 가희를 통해 4가지 서로 다른 색깔의 순수를 펼쳐보이고 있었는데요. 어미를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삼봉의 사냥개가 되어 평생 동안 손에 피를 묻히며 살아왔지만 가희에게 만큼은 조건 없는 사랑을 쏟는 민재의 '순수한 사랑'과 왕좌를 언제든지 덮치기 위해 언제든지 뛰어오를 수 있도록 잔뜩 몸을 웅크린 채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방원의 '순수한 야망', 그리고 욕정에 눈이 멀어 닥치는 대로 부녀자를 탐하고 다니는 진의 '순수한 욕정'과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가희의 '순수한 복수심'과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민재를 향한 '순수한 사랑' 등이 바로 그것이었죠.
이렇게 <순수의 시대>가 담아내고 있었던 4색(色)의 순수는 신하균, 장혁, 강하늘, 강한나 이 네 명의 배우가 펼쳐보이는 호연을 통해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며 영화 초반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까지는 성공하고 있었는데요. 다만 중반 이후부터 작품의 기조가 급변하는 바람에 영화 초반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긴장감 또한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마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노출하는 바람에 저로 하여금 안타까움의 탄성을 내지르게끔 만들어주고 말았지만 말이에요. ^^;;
신파적 클리셰로 점철된 뻔한 치정멜로에 그치고 만 <순수의 시대>
네 가지 서로 다른 색깔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네 명의 인물들의 사연을 긴밀하게 맞물려 놓음으로써(비록, 다소 작위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우리 이 정도는 충분히 용인해줄 수 있잖아요?? ㅎㅎ) 앞으로 펼쳐질 왕자의 난에 대한 기대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차곡차곡 키워나가던 <순수의 시대>는, 영화 중반부터 영화 초반의 묵직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몸의 대화(^^;;)와 신파적 클리셰(관용적 표현)로 점철된 민재와 가희의 19금 로맨스, 네 남녀가 얽히고 설킨 퇴폐적인 치정극 위주로 급작스럽게 작품의 기조가 변하게 되면서 영화 초반에 쌓아 올린 기대감과 긴장감 외에도 영화적 재미까지 한꺼번에 산산조각 내고 있었는데요. ^^;;
우리 영화들이 주로 '노출만을 위한 노출'을 일삼는 것과는 달리(일례로 등급에 상관 없이 올해 개봉한 몇몇 한국영화들만 봐도 그랬죠. 제가 따로 꼬집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만한 분들은 다들 아실꺼예요. ㅎㅎ), <순수의 시대>에서 민재와 가희가 나누는 몸의 대화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 교류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있어 나름 꼭 필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딱히 불만이 없었지만, 문제는 <순수의 시대>가 그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감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있어 오글거리는 신파적인 클리셰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신하균씨의 연기가 워낙에 좋았던 덕분에 민재의 애절한 감정이 꽤 잘 묻어나오고 있기는 했지만, 이미 오글거림에 지쳐 넉다운 되어버린 저로써는 민재의 애틋한 순애보 또한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질 뿐이었죠. 이렇듯 <순수의 시대>를 관람하러 가기 전부터 이미 액션에 대한 기대감은 깨끗이 지우고 관람한 저도 뻔하디 뻔한 신파적 치정멜로에 실망감을 느꼈을 정도이니, 하물며 <순수의 시대>에게 짜릿한 19금 액션을 기대하며 관람하신 분들이 느끼셨을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와 2013년 <관상>이 기록한 대박 흥행으로 인해 지난해에는 <역린>, <군도: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바다로 간 산적> 등 팩션사극의 제작 편수가 크게 증가했는데요. 올해만 하더라도 <순수의 시대> 외에도 조선 고종 시절 판소리의 대가였던 신재효와 그가 키워낸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를 그려낸 <도리화가>를 비롯해,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민규동 감독님의 <간신:왕 위의 왕>, 고려 말 상주 민란을 다루고 있는 박흥식 감독님의 <협녀:칼의 기억>,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준익 감독님의 <사도> 등의 팩션사극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구요. 덕분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볼만한 작품이 늘어나서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팩션사극의 제작 편수가 늘어난 만큼 자연스럽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도 생기게 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팩션사극에 점점 무뎌져 가게 된다는 문제점 또한 발생하게 된다는 점인데요. 부디 앞으로 개봉하는 팩션사극들은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창작에 대한 고민 없이 클리셰로만 가득 채워놓은 영화는 만들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엉뚱한 쪽으로만 너~무 열심히 몸을 쓴 민재와 생각보다 너~무 몸을 안 쓴 방원 때문에 김새버린 <순수의 시대> 리뷰는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고, 조만간 <헬머니> 리뷰로 다시 찾아뵙도록 할께요. 모두들 편안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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