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c106507)에 작성한 글을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뻔한 신파적 클리셰를 애달픈 현대사와 절묘하게 결합시킨 가족드라마
12세 관람가 / 126분 / 윤제균 감독 /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 / 개인적인 평점 : 8점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목요일(27일) CGV대구에서 시사회로 관람하고 온 <국제시장> 이야기를 해볼려구요. ^^
다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국제시장>은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해운대> 등을 연출하신 윤제균 감독님께서 18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블록버스터 가족드라마인데요. 180억의 제작비는 분명 헐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가족드라마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제작비 대부분을 국내 관객으로 충당해야만 하는 우리 영화로써는 가족드라마 장르에 180억을 쏟아부었다는 자체가 커다란 모험인 것이 사실이죠. 실제로 국내 여러 영화 전문 기자분들께서도 <국제시장>의 높은 리스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계시기도 하구요.
■ 윤제균 감독님의 연출작들
※ 위 표에 사용된 데이터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참고하였습니다.
※ (S)는 서울관객이며, 관객수는 11월28일까지 집계된 수치입니다.
순수하게 국내 극장 수입으로만 제작비를 회수한다고 가정했을 때(물론, 해외배급, VOD수익 등을 포함하면 더 낮춰질 수 있겠지만요. ㅎ), 무려 손익분기점 600만짜리인 가족드라마 <국제시장>은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언제나 그렇듯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그대로 지금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려보도록 할께요. ^^
소년 가장 덕수의 파란만장한 60여년 동안의 인생사
줄거리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치던 1950년 12월 23일의 함경남도 흥남시. 흥남비료공장 노무부 주임인 아버지 윤진규(정진영)와 어머니(장영남) 그리고 막순이, 승규(이현), 끝순이(김슬기) 이렇게 세 동생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소년 덕수(황정민)는 중공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벽을 타고 오르던 중, 자신이 업고 있던 막순이를 놓치고 마는데요. 아버지 진규가 막순이를 찾기 위해 배 밑으로 내려간 사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무정하게 출항해버리고 졸지에 덕수의 가족은 이산가족이 되고 말죠. 덕수는 점점 멀어지는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면서도 "시방부터는 니가 가장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 깊이 되새기는데요. 그렇게 덕수의 힘들고 모진 세월의 막이 오르게 된답니다. ㅠ.ㅠ
★ <국제시장> 예고편 ★
윤제균 감독님의 JK필름이 <해운대>, <시크릿>, <하모니>, <퀵>, <7광구>, <댄싱퀸>, <스파이>에 이어 다시 한 번 CJ와 손잡고 제작한 <국제시장>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윤제균 감독님께서 십수년 동안 영화판에서 쌓아오신 노하우가 집약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2000년 개봉한 <신혼여행>의 각본을 맡으신 것을 시작으로 코미디, 멜로, 스릴러, 액션, 재난, 로맨틱코미디, SF 등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에서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연출자로 활약해온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흥행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의 형태로 <국제시장>을 완성시키신 것이죠.
■ JK필름과 CJ의 합작품들
※ 위 표에 사용된 데이터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참고하였습니다.
솔직히 일부 국내 영화 매니아분들 사이에서 JK필름은 'CJ와 짝짜꿍해서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들의 상업적 내러티브를 교묘히 카피한 돈벌이용 영화만 만드는 얍삽한 제작사'로 악명이 높은 것이 사실인데요. 하지만 이번 <국제시장> 만큼은 JK필름을 향한 그분들의 냉소도 다소 수그러들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 (한국판 <트루 라이즈>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스파이>처럼, <국제시장> 또한 스토리나 몇몇 설정 등에 있어서 한국적 색채로 각색한 <포레스트 검프>라는 비난에 시달릴만한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였던게 사실이긴 하지만요. ^^;;)
<국제시장>을 관통하고 있는 그 이름, 아버지
<국제시장>은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작품 중에서 국제시장의 비중은 극히 미미한데요. <국제시장>이란 제목은 광복 이후 6.25전쟁을 거치며 힘들고 모질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치열하게 버텨내신 우리네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단어일 뿐이죠.
제목인 '국제시장'을 대신해 작품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화두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는데요. 지난 10월에 개봉했던 이해준 감독님의 <나의 독재자>가 김일성의 대역 연기에 잠식당해버린 성근(설경구)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기 힘든 언어로 아버지의 부성애를 말하고자 애쓰고 있었던데 반에, <국제시장>은 신파적 클리셰(관용적 표현)들을 대한민국의 애달픈 현대사와 절묘하게 결합시킨 덕수의 인생사를 통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깊은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로 아버지의 부성애를 전하고 있더라구요.
힘들게 세 아이를 부양하시는 홀어머니에게 보탬이 되고자 코흘리개 시절부터 학업도 포기한 채 구두닦이일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 승규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검정고시를 포기한 채 파독 광부에 지원하고, 고모가 운영하던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오랜 꿈인 해양대 입학을 포기한 채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는 등 자신의 인생 전부를 오롯이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가장' 덕수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의 그것이었기에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화 속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데요. 비록, 영화 속 덕수의 인생사가 전형적인 신파적 클리셰로 점철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를 통해 전해지는 시대의 아픔과 진한 감동 만큼은 진짜였기에, 감히 그 누구도 <국제시장>을 두고 뻔하디 뻔한 신파라고 섣불리 비아냥거릴 수는 없겠더라구요.
문득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도..
덕수는 영화 내내 '가장'이라는 두 글자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무게를 오롯이 홀로 버텨내고 있었는데요. 커다란 상선의 선장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은 가슴 깊이 묻은 채, 가족들에게는 항상 '괜찮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에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사지를 넘나들며 죽을 것 같은 괴로움과 외로움을 꾸역꾸역 홀로 삼켜나가는 덕수의 모습은, 자연스레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이 터질듯한 먹먹함에 눈시울을 붉히게끔 만들어주고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덕수가 짊어져온 '가장의 무게' 따위는 까맣게 모른 채, TV앞에 편하게 드러누워 군것질을 하고 있는 승규와 끝순이의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결혼 비용을 적게 해준다며 울고 불며 난리를 치는 끝순이의 모습 등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내 자신의 철 없던 지난 날, 혹은 바로 지금 현재의 철 없는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게 되기도 했구요.
그 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에 담겨진 자식, 손주 모두에게 뒷방 늙은이 취급을 당하며 홀로 눈물을 흘리는 노년의 덕수의 모습은, 이 시대의 슬픈 단상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었던 탓에 저로 하여금 입 안 가득 씁쓸한 맛이 돌게끔 만들어 주기도 했었답니다.
깨알처럼 쏙쏙 박혀 있는 유머도 일품!!
이처럼 <국제시장>은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의 사랑을 가슴 먹먹하게 그려내고 있었지만, 러닝 타임 내내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요. 6.25 전쟁 중에 부산국민학교에서 만나 평생의 우정을 나누게 되는 덕수와 대영극장 아들내미 달구(오달수) 콤비가 선사해주는 천연덕스러운 웃음에서부터, 의외의 순간에 故정주영 회장, 故앙드레김, 남진, 이만기 등과 같은 실존 인물들의 등장을 통한 웃음, 여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활용한 웃음이나 각종 패러디 등등 영화 곳곳에 깨알처럼 쏙쏙 박혀 있었던 <국제시장>의 유머는, 덕수의 가슴 아픈 사연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저를 언제 그랬냐는듯이 박장대소하게끔 만들어주기도 했답니다. ^^
무엇보다도 배우 황정민의 힘이 돋보였던 <국제시장>
이처럼 벅찬 감동과 깨알 같은 웃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었던 <국제시장>의 중심에는 주인공 덕수를 완벽한 연기로 소화해내신 황정민씨가 계셨는데요.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가 철저하게 덕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더분한 평범함과 악바리 같은 강인함을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계셨던 황정민씨의 눈부신 연기가 있었기에, <국제시장>의 내러티브에도 한껏 힘이 실릴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
리뷰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보시는 분에 따라서는 치열하고 애달팠던 우리네 현대사를 신파적 클리셰로 치장해 관객들을 현혹시키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는 <국제시장>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덕수의 인생사를 통해 우리네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가 버텨내신 힘든 세월, 힘든 풍파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며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굉장히 의미 있는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될 <국제시장>이었답니다. 어디까지나 저 혼자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손익분기점 돌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다른건 몰라도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를 만드시는 재주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힌 윤제균 감독님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국제시장> 리뷰는 이쯤에서 마치기로 할께요. 모두들 편안한 주말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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