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를 살아나가야 했던, 아니 그 시대를 견뎌야했던 우리들의 아버지가 있다. 남들이 모두 멸시하다시피 하는 연극배우라는 배고픈 직업을 선택한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조차 당당할 수 없었다. 엄마 없이 키워야하는 아들이기에 더욱 애틋했지만 언제나 고개만 숙여야 했던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만은 거짓말쟁이가 아닌 진짜 배우가 되어 세상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었다.
김일성의 대역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허구를 영화로 옮긴, 이번 ‘나의 독재자’는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이라는 두 대표배우의 환상호흡만으로 이렇다 할 여배우의 출연이나 러브라인 없이도 한편의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여배우가 없다니 어찌 보면 볼거리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나의 독재자를 지켜보면서 배우 설경구의 눈물이 저렇게 뜨거웠나 싶을정도로 감동으로 와 닿는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강렬한 오열이 아닌 정신나간 듯 무표정한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들이 더 큰 여운으로 남는다. 박해일의 열연도 만만치 않았다. 김일성이 되어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박해일의 눈자위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습은 내가 뽑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이번 나의 독재자를 보는 깨알재미로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면장면들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전시장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못난이삼형제 인형, 드르륵 문이 열리는 흑백텔레비전, 딱지 같은 소품들과 70년대 거리풍경이 주는 향수도 정말 남달랐다. 당시를 추억하는 나에게 이런 영화는 선물과도 같다. 엄마를 졸라 로봇태권브이를 보기위해 찾았던 어릴 적 동네극장과 너무나 똑같은 극장의자에 당시 내 또래의 바가지머리 아이가 앉아있는 장면 또한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재미이기도 하다. 하얀 기름종이에 싼 통닭을 가슴속에 끌어안고 아들과 함께 서로에게 닭다리를 건네는 장면도, ‘그땐 그랬지.. 맞아 전기통닭 최고였지’하는 추억 속에 잠기기도 했다.
나의 독재자는 김일성 배역에 빠져 사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백수아들의 이야기라는 간단한 문장만으로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추억과 여운을 남긴다.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우리들의 아버지에게는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런 아버지와 함께 자라난 우리들에게는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게 하는 뭉클함이 전달되는 힐링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나서, 아버지와 함께 잘 구워진 전기구이 통닭을 함께 먹고 싶어지는 것도 영화가 주는 여운이다. 생일 때나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던 전기구이 통닭. 꼬치에 끼워져 돌아가던 통닭집 앞에서 침을 삼키며 구경만 하곤 했던 어릴 적 내가 영화 속 바가지머리 아이와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무뚝뚝하지만 뜨끈한 군고구마를 품에 안고 퇴근하셨던 우리의 아버지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는다면 고구마보다 더 뜨거운 감동으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게 될 그런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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