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이 되어 있을수 있고, 편의상 말을 짧게 합니다.
또 대사는 일부 틀릴 수 있으나 느낌을 전하기에 충분하리라 판단합니다.
마지막으로 오타가 많을 수 있으니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놓은 것이니만큼 의견을 주시면 감사히 수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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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교육은 어떠한 의미일까.
각자 보는 사람들마다, 그 이론을 논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로, 끝없이 화두가 되는 부분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성, 인간성 등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방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교육이라함은 학교나 학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개인적인 의견을 좀 추가하자면, 필자는 학교를 다닐때 많은 부분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요즘같이 교권이 바닥에 추락하고, 무엇이든 학교 폭력으로 함께 치부되어 선생님들이 고소당하는 시기이기에.
이전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여지던 아이가 선생님께 혼날 때 극성인 부모가 와서 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모습들.
그 모습들이 요즘은 활발하게 확인이 가능한 인터넷의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다가 학교는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가 선생님들은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돌아가신 초등학교 선생님인 필자는 안타깝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사교육의 열풍으로, 과거보다 더 극성인 부모의 등장으로, 인간의 욕심이 커지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이 하나가 딱 그 해답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위의 것들이 하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학교에서만 인격이 형성되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났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지금의 필자를 만들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 교육이란 어느 단체, 어느 위치, 한정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문으로 敎育. 여기서 교는 본받고(效), 가르침(訓), 알림(告), 훈계(訓戒), 학문(學), 도덕(道德), 종교(宗敎)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이다.
또 육은 기름(養), 낳음(生), 자람(成) 등 이며, 육성한다 올바르게 자라남 등을 의미한다.
교육이란 천성과 성품을 보호 육성하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다. 또 나아가 성장하는 힘, 발육하는 힘을 전제로 자발성과 창조성을 충분히 조장시켜 자립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까지 네이버 참조)
또한 이 교육의 영어이 education의 어원은 라틴어 educare에서 유래한 것으로 e의 밖으로와 ducare의 끌어낸다가 합쳐진 합성어 이다.
한문과 같은 느낌으로 가지고 있는 첨품과 개성 등을 밖으로 끄집어 낸다는, 또 가능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의미가 있다.(또 네이버 참조)
즉, 위에서 언급했던 이 세상 어디에서도 교육은 행해지고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뿐 아니라 나이가 먹고, 세상 어디에서도 가능한 것 그것이 교육이다.
물론 인격의 형성, 가치관의 정립 등이 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 성장하기 전이고, 이 때의 성립된 것을 기준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뭐 나이가 들고 그 가치관이 변경되고, 다른 모습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즉 본인의 인격형성에 제일 영향을 끼친 인물은 지금은 안계신 초등학교 은사님이시다.
사실 그분께서 나에게 딱히 해주신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구나 한명쯤은 그러한 은사님이 계시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제 이 교육의 효과를 말하는 영화를 말하고자 한다.
영화 시베리안 에듀케이션은 그러한 성장 영화이다.
구 소련(소비에트 연합)이 무너지고 격동하는 시기의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현장.
시대적인 배경과 그 나라의 특색, 그들의 기본적인 마인드, 문화적 차이 등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는 필자, 그리고 우리들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완벽하게 그들에 대해서 파악하기는 어려운 현장.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를 몇가지 찾아보자면, 존 말코비치라는 명 배우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최근에는 레드라는 영화에서 약물에 살짝 이상한 모습으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지만, 그의 연기폭은 무척이나 넓기에 기대가 되었다.
그의 약간은 어눌한 말투는, 시베리아인들의 대부로써 근엄함과 카리스마를 내뿜었고, 그는 그 모습으로 콜리마를 성장시켰다.
'콜리마'라고 부르며 시작되는 교육은 끝까지 뇌리에 남아있었고, 그의 가르침도 함께 남아 여운으로 맴돌았다.
그렇다고 단연 그 혼자만 성장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도 함께 성장했고, 그렇게 성장영화는 이어졌다.
자연적인 흐름을 논했기에 루즈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영화적 흐름을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으로 완화시켰고, 두가지 큰 흐름으로 영화는 전개가 되었다.
또 역설적인 장면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교육이라는 것에대한, 그들에 대한, 면모들의 새로운 이면을 함께 보여주었다.
다만, 그 이면들을 보여주는데 있어 어거지로 이어 맞춘 영화의 골자들 사이에서 틈이 발견되었고, 그 틈이 생각보다 넓고 많았던 것 같다.
사실 이러한 흐름을 임의적으로 엮었다고 해서 영화가 흐뜨러지고 틈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크게 이러한 틈이 발견된 원인을 생각해보자면, 억지로 자극적이지 않은 연출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당연하게 피가 튀어야하고 잔혹하게 보여야할 장면들임에도 끊어진 필름처럼, 그 흐름처럼 끊겨서 이어져 있었다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은 성장영화야! 교육영화야! 라고 말을 하고자 하는듯 말이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성장하는 시베리아인들의 이야기.
시베리아인들의 시선에서 전개가 되는 이야기이고 이곳에서 성장하는 몇 몇 인물들이 보여진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 대부(존 말코비치)의 가름침이나 정상적 방향의 길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들 중 미처 성장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단짝 중 하나는 넘쳐흐르는 강물에서 떠내려오는 나무를 피하지 못했고, 그 밑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책임은 무조건 가가린 때문이었을까. 가가린이 돈이 된다며 피아노를 건지자고 했을때,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죽음이 목전에 이르자 그때가 되어서야 소리질렀고 그를 탓했다.
그러면서 그 피아노를 치는 세냐(제니아?)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콜리마는 그 누가 보아도 모순되는 모습이다.
또한 그러면서 나타나는 나무의 아래에서 조용하게 모습을 보이는 그들의 친구.
모순에 모순이 이어지는.
모순되는 것은 이뿐 아니다.
콜리마의 인격이 형성되어가던 과정 중 그들을 위해 희생했던 가가린이 돌아와 처음 행하게 된 범죄.
단순하게 거래를 할 때, 정당한 대가를 바랬던 콜리마, 그런 모습을 보며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갈취하려던 가가린.
그런 가가린을 보며, 우리는 정당한 거래만을 한다며 눈을 흘기던 그의 모습.
하지만 그들은 어릴적 군인의 트럭에서 군화를 훔쳤고, 그것을 정당한 행위라고 간주한다면 범죄가 아닐 수 있겠지만, 그런 콜리마를 잡으러온 군인들에게 행해진 폭력은 어떠한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그들의 입장과 함께 어울리며 행한 도둑질은 정당한 행위였을까.
자본가에게 대항하고, 경찰과 군인들을 신뢰하지 못한 그들이었지만, 그들이 행했던 일종의 심판에 피해를 입은 일반인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배제하고 행해진 그들의 규칙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어떠한 교육이 정당하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범죄를, 그리고 그 방법들을 알려주는 것도 다른 차원에서는 교육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옳은' 행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옹호할 수 없고, 그들의 교육이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말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은 이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자극적인 상황이, 시대적 배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자극적인 실정, 배경들 사이에서 타투는 무슨 의미였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다고 하는 타투이며, 그가 타투 장인으로 성장하게 되기까지, 그 모든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단편적인 부분들로 보여지는 이야기, 충분히 터프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복수극.
하지만 그 사이에서의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부족함과 동시에, 거대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욕심이 아쉬운 점들을 보여주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
시베리안 에듀케이션. 그건 그렇고 남자주인공 잘생겼다.
★ 5개 만점
★★★(스토리 6 연출 6 비쥬얼 7 연기 8 오락 7 총점 6.8)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분명하겠지만. 단순하게 지식의 축적만을 본다면, 행해지는 곳은 학원, 과외 등일 것이고, 인성이 포함된다면, 이 사회 전체일 것이다. 어쨌든 교육의 효과를 말할때, '교육은 필요해'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 교육 전체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그 교육을 단순하게만 보여주면서, 효과를 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EBS에서 하는 교육방송 그정도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의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도구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은 선택자의 몫일 것이다. 단지 이번 선택은 교육방송보다 조금 재미있고, 일반적인 영화보다 조금은 떨어진게 아니었을까.
교육, 그 힘에 대하여 역설로 가득한 곳에서의 가치관을 논하는 '나는 교육영화야, 착한 영화야'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영화. 그래서 부담으로 다가오는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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