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이 아니었다면... ★★☆
미리 얘기해두자면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대략 두 달 전에 본 영화인지라 세부적 묘사보다는 관람 직후에 적어놨던 단상을 토대로 한 간략 평이 될 것 같다. 아무튼 이야기는 너무 널리 알려져 있어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흥행에 대해선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심은경은 내 생각에 대중적이라기보다 좀 컬트적이고 B급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배우다. 그런데 이 배우에게 흥행운이 따라 다니는 건지, <써니> <수상한 그녀> 등 사실상 원톱인 영화에서 대박을 연속으로 치니 참 묘하다.
<수상한 그녀>는 실로 심은경에 의한, 심은경을 위한, 심은경의 영화다. 오래 전 헐리웃 영화를 살짝 카피한 듯한 이 판타지 영화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스크린에 잡아두는 건 거의 100% 심은경의 몫이다. 갓 20세인 처녀의 외모를 가진 80 노인의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심은경을 보고 있자면 그저 넋이 나갈 지경이다. 어쩜 저리 능청스런 연기를 저렇게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정말 신기하기 그지 없다. 과연 저 나이 또래의 여배우들 중에 이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배우가 심은경 말고 또 있을까? 심은경이 아니고선 만들어지기 힘든 영화일 것이다.
코미디의 성공률도 괜찮았다고 평가해줄만하다. 물론 그 대부분은 심은경에게 기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겁한 영화라는 느낌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으로 흐르는 ‘이 땅의 어머니’ 운운하는 헌사야 말로 <수상한 그녀>에 대한 조그마한 호감마저도 앗아가 버린 결정적 악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모성에 대한 위대함을 말해주는 영화든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도 좋을 영화의 흐름을 억지로 모성과 연결시키려 했기 때문에 삐거덕댔던 건 아니었을까? 결코 좋은 시어머니, 아니 결코 호감을 주기 힘든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 놓고는, 그 사람을 비호감의 인간으로 만든 원인을 막연히 모성의 발로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인가? 도대체 성장은 어디로 갔는가? 다른 걸 떠나 모성으로 범한 모든 건 용서해줘야 하고 이해해 줘야 하는 블랙홀인가?
다시 할머니로 돌아와 그 중간의 과정을 생략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며느리와 조금(!)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나에겐 혐오라는 감정을 불러왔다. 왜 사과하지 않는가? 아니 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사과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른이 이 정도 행동했으면 그건 사과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과 행동이다. 사과는 잘못한 쪽에서 정확하게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받아줄지 안 받아 줄지는 피해자가 결정할 문제다. 사과(또는 그와 비슷한)라는 과정이 있었으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저렇게 사이가 좋아진 것 아니냐고 대충 퉁 쳐놓고 지나가도 좋은 것인가? 며느리와의 관계는 그렇다고 치고, 특히 주인공이 과거에 한 용서받기 힘든 행동에 대해선 왜 아무런 해명도 사과도 없는 것인가? 이게 그냥 지나갈 일인가? 이것도 모성 때문에 한 일이니 그냥 이해하고 용서하면 되는 것인가? 더군다나 굳이 서사에 상관없는 얘기를 왜 집어넣은 것인가? 반성 없는, 즉 성장 없는 판타지 영화라는 게 나로선 가장 판타지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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