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복수 보다 치유를 통한 일상으로의 복귀.. ★★★★
영화 <소원>은 결코 편히 앉아서 볼 수 없는 영화다. 당연하다. 9살 어린 아이가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영화를 어떻게 편히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어린 아이의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가 <소원>이 처음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그 동안 아동 성폭행을 다룬 영화가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 처벌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던 데 반해 <소원>은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육체적 정신적 치유 및 이를 통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영화다.
단적으로 <소원>은 최근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라는 건 분명하다. 영화 곳곳에 눈물 폭탄이 내장되어 있으며, <소원>이 상영되는 영화관 여기저기에선 시종일관 눈물을 훔치는 소리와 한숨 소리가 가슴을 콕콕 찌르며 들려온다. 그나마 밝고 따뜻한 유머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지켜보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깊이보다는 표피만 건드린다는 지적이 충분히 일리 있지만, 간만에 복귀하는 이준익 감독으로서 대중적 정서를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충분히 수긍이 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다. 설경구와 엄지원,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착한 사람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선한 연기가 이 영화의 선함을 입증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는 소원 역의 이레의 연기는 이런 역할에 대한 아역 배우의 스테레오 타입을 극복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관객의 누선을 한층 더 강하게 자극한다.(그러나 서울이 고향인 나로선 이들의 사투리 연기가 어떠한지는 평가할 수 없다)
아무튼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아동 성폭행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얘기 또는 영화가 내세우는 주제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동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사회는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강한 처벌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뒤덮인다. 평소 꾸준히 올라가던 사형제 폐지에 대한 긍정 여론이 순식간에 돌변하며 인권단체엔 항의성(!) 전화가 빗발치기도 한다. 평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던 사람에게 “이런 새끼도 살려줘야 하냐?” 또는 “니 딸이어도 사형제 폐지에 반대할래?” 따위의 극단적인 말들이 쏟아진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기는 하다.
이런 사건의 발생과 함께 항상 제기되는 논란 중 하나가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이다. 가해자의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사형 선고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왜 가해자의 인권은 보장하면서 피해자의 인권은 핍박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물론 인권은 결코 이런 식으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가해자의 인권을 보장한다고 피해자의 인권이 핍박받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피해자의 인권이 가해자를 응징, 처벌한다고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가끔 난 사회의 이런 반응에 참 비열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무슨 얘기냐면, 과연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피해자를 위해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다시 얘기하자면, 과연 피해자를 위하는 게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강력한 처벌 밖에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인 것이다. 그걸 피해자가 원하지 않냐고? 당연히 원한다. 누군들 원하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그것만이 진정으로 피해자와 그 주변, 가족을 위하는 길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면 피해자와 가족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괜찮아지는 것일까? 관련 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성폭력 피해자 및 가족이 결국 가장 힘들어 하는 건 무엇보다 사건 후 일상으로의 복귀, 그 중에서도 경제적 곤란이라는 것이다.
내가 <소원>을 보면서 가장 흥분했던 게 바로 이 지점이고, 이준익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라고 느꼈다. 언론은 병원에 카메라는 들이밀면서까지 열띤 취재 경쟁에 나서고, 사람들은 가해자를 죽일 놈이라고 흥분하며 떠들어 대는 데, 막상 피해자와 그 가족의 가장 큰 고통인 육체적 정신적 치유 및 경제적 고통에 대해 과연 이 사회는 무엇을 해주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예전에 한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소위 선진국들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처벌에 들어가는 예산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육체적 정신적 치료를 받고 경제적 곤란을 극복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규모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피해자와 그 가족이 육체적 정신적 치료를 받고 그 과정에 발생하는 경제적 곤란으로부터 극복하는 건 온전히 개인적인 부담과 고통으로 남게 된다. 도와주는 것도 개인적인 선함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 국가기관, 공공기관의 역할은 거의 전무하다.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피해자의 인권은 가해자에 대한 응징, 보복,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치유와 경제적 곤란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영화 <소원>은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피폐해지는 삶 대신 우리가 외면해 왔던 피해자의 육체적 정신적 치유를 통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영화이며, 가해자에 대한 징벌에만 과도하게 매달려 있는 우리의 국가 사회 시스템도 이제 피해자와 그 가족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화되기를 희망하는 영화인 것이다.
※ 좀 엉뚱할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윤창중 사건을 떠올렸다. 미국 경찰이 사건이 접수되자마자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바로 피해자의 치료와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언론, 가해자 측의 접근 방지, 보호라는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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