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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를 꼭 내가 찍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 4중주
ldk209 2013-08-14 오후 1:05:54 798   [0]

 

마침표를 꼭 내가 찍어야 할 이유는 없다.. ★★★☆

 

첼로에 피터(크리스토퍼 월켄), 제1 바이올린 다니엘(마크 이바니어), 부부인 제2 바이올린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와 비올라에 줄리엣(캐서린 키너)로 구성된 결성 25주년을 맞이한 현악 4중주단 ‘푸가’. 25주년 공연을 앞둔 연습 도중 피터의 실수가 되풀이되고, 병원에서 피터는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더 이상 연주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된 피터는 새로운 멤버로 푸가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로버트는 새로 재편되는 푸가에서 다니엘과 함께 제1 바이올린을 맡겠다며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다니엘은 물론이거니와 줄리엣의 반대로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심해지는 한편, 로버트 줄리엣 부부의 딸인 알렉산드라(이모겐 푸츠)와 개인 교습을 담당하고 있는 다니엘 사이엔 묘한 감정이 싹튼다.

 

예술 전용 극장을 중심으로 개봉한 <마지막 4중주>의 흥행 성적이 놀랍다. 2만만 넘어도 흥행이라는 이 쪽(?) 기준을 일찌감치 넘어 5만을 돌파했으며, 오히려 흥행 속도는 더 빨라지는 느낌이다. 직접 확인한 객석의 분위기로 보나 기사로 보나 흥행은 연령대로는 40대 이상, 50대를 주축으로, 성별로는 여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듯 하다. 예술영화로 포장된 <마지막 4중주>의 무엇이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현악 4중주를 배경으로 한 불협화음과 앙상블, 인생의 관조, 아픈 와중에도 팀원들을 다독이거나 질책하며 자신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해나가는 피터의 모습이 감동을 안겨준다거나 아무튼 생각보다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지만, 뭔가 고급스러운 분위기 등이 흥행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 했음으로 굳이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뭔가 삐딱하게 바라보고 싶어지는 느낌. 날씨가 미치도록 덥기 때문일까.

 

첫 번째.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도대체 볼 영화가 없다. 아무 극장이나 가도 보이는 거라곤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방학특선 아이들용 애니메이션. 정말 기막힌 틈새시장이다. 관객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있을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라면 갈 곳 없어 헤매는 중년들이 발걸음을 유혹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더군다나 그 배우들이 이름만으로도 보증이 되는 배우들 아니던가 말이다.

 

두 번째. 단순히 볼 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마지막 4중주>를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4중주> 외에도 상영되는 예술영화들이 있으니깐. 그런데 그 대안이 <마스터>라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아마도 <마지막 4중주>가 대안이 된 건, 그 영화에 스며들어 있는 막장 요소(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느낌을 낼 수 있는 대안이 없다. 죄송하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악 4중주단이라고 하는 이 영화를 감싸고도는 뭔가 고급스러움을 제외하고 순전히 이야기에 집중해보자.(현악 4중주단이 아니라 락 그룹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어떤 성격의 팀이건 간에 그 팀 안에서 일어날만한 모든 사건들이 총망라한 느낌인데, 피터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보면, 이건 거의 한국 드라마에서 방영한다 해도 ‘막장’이라고 불릴 요소들의 집합이다.

 

남편은 바람을 피다 아내에게 걸리고, 아내가 위로 받고 싶은 생각에 찾아간 딸이 오래 전 자신을 사랑했던 남성과 사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남편과 딸의 애인은 친구이자 라이벌이고, 사실 남편의 욕심을 자극한 건 바람을 핀 상대 여성이다. 심지어 이들은 같은 현악 4중주단의 멤버 아니던가. 이렇게만 보면 이건 뭐, 거의 욕하면서 보는 한국 드라마다. 요소는 막장이지만, 갈등의 해소는 좀 뜬금없기도 하고 별다른 계기도 없는 상태서 막판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역시 마지막 회에 모든 갈등이 풀어지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한국 드라마처럼 말이다. 혹시 이런 한국 드라마적 막장 요소가 이 영화의 흥행 요소로 작용한 거 아닐까 싶은 것이다. 게다가 막장 드라마와는 달리 <마지막 4중주>는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알리는 데에도 긍정적일 테니깐 말이다.

 

괜히 삐딱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마지막 4중주>를 좋게 보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중요한 건 막장 요소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포장하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특히 내가 미처 상상(예상)하지 못한 피터의 아름다운 퇴장이 담긴 마지막 공연은 감동 그 자체였다. 영화 내내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 장시간의 연주로 어렵다고 소문난 그 음악에 대해 밑밥을 깔아 놓고는 그런 마지막을 보여주다니. ‘인생은 짧고 예술을 길다’

 

※ 로버트와 줄리엣의 딸로 출연하는 이모겐 푸츠. 어디선가 분명히 본 얼굴이란 생각에 프로필을 찾아봤는데, 일단 이름이 낯설다. 게다가 내가 딱히 본 영화도 별로 없다. <제인 에어> <브이 포 벤데타> <크랙>에 나왔다고 하는 데 기억이 없다. 그런 정도라면 내가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28주 후>! 맞다. 그 영화 속 남매 중 누나. 내가 기억하는 그 얼굴이 맞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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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중주(2012, A Late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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