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바로 ‘집’이 아닐까 싶은데요.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맘껏 풀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사적인 공간이 누군가에게 침범당한다면?
견고할수록 균열이 크게 느껴지듯 보금자리인 집이 위협당하면 이내 삶 전체가 흔들리고 맙니다.
상상 이상의 공포와 함께 말이지요.
최근 영화 ‘숨바꼭질’의 모티브로 알려진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는데요.
2009년 뉴욕, 다른 사람의 아파트에 숨어살던 여자의 모습이 CCTV를 통해 포착된 동영상입니다.
귀신도 아니요, 직접적인 상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소름이 돋습니다.
이것이 실제상황이라니요! 이처럼 정체 모를 존재와의 동거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요.
귀신부터 외계인까지 ‘우리집’을 탐하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낯선 존재들을 영화로 모아봤습니다.
여름엔 역시 납량특집이니까요.
그들은 누구일까? ‘디 아더스’ (2001)
외딴 대저택이야 말로 누군가가 숨어들기 딱 좋은 곳이지요.
첫 번째 영화는 2차 대전이 막 끝난 1945년, 영국 해안의 외딴 저택을 배경으로 하는 ‘디 아더스’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지요.
넓은 집이 선사하는 공포를 제대로 보여준 ‘디 아더스’ 포스터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햇빛에 노출되면 안 되는 희귀병을 가진 두 아이,
그리고 세 명의 하인이 함께 사는 이곳에 기괴한 일이 잇달아 벌어집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의 발자국 소리, 공포 분위기 조성에 빠지지 않는 피아노 저절로 연주되기,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정체모를 존재의 잔영… 신경쇠약에 걸리기 딱 좋은 조건들의 연속인데요.
워낙 유명한 영화인지라 보신 분들도 많을 테지만 안 보신 분이라면 강추입니다.
낯선 집은 그 자체로 공포의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란 떨지 않고 조용하게 놀라게 하는 연출력, 대저택의 낡은 냄새까지 전해질 듯한
공감각적 음습한 분위기, 그 안의 놀라운 반전까지! 익숙한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새롭게 적응해야 할 공간으로서의 집, 그것이 갖는 미스터리를 훌륭한 스토리로 풀어낸 영화인데요.
땡볕과 폭우과 교차하는 이 여름, 축축한 방 안에서 소름 한번 돋아보시겠어요?
CCTV의 속 충격 진실 ‘파라노말 액티비티’ (2007)
CCTV의 거친 화면은 묘한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더욱이 그곳이 누군가의 방이라면?
관음증을 자극하는 긴장과 멀찍이 제3자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느긋함이 교차하지요.
그 호기심과 방심 사이를 가로지르며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영화가 ‘파라노말 액티비티’입니다.
CCTV 화면 하나로 색다른 연출을 해낸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포스터.
CCTV가 내려다보고 있는 방은 갓 동거를 시작한 남녀의 침실입니다.
그럼에도 므흣한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이 여자 친구가 어릴 때부터 정체불명의 정체를 느껴왔고,
최근 그 강도가 심해져 이를 관찰하기 위해 남자친구가 CCTV를 설치한 것이기 때문이죠.
화면 속에는 문이 스스로 열리고, 액자가 저절로 깨지며,
여자가 사라지는 기묘한 일들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사건들, 특히 CCTV라는 필터는 아이러니하게도
비현실적 현상에 현실감을 살려주는 역할을 하지요.
그리고 내내 빠져들어 지켜보던 CCTV 속 화면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 때
관객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몰래 엿보는 듯한 화면은 여러 모로 긴장감을 상승시켜줍니다.
집 안에 초현실적 존재가 함께한다는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소재를 전혀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악몽’을 선사하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부작용으로 ‘밤잠 설침’이 있을 수 있으니 되도록 금요일 밤 시청을 권합니다.
소시민과 외계인의 만남 ‘다크 스카이’ (2013)
집을 위협하는 존재로 외계인까지 가세합니다.
보통 영화 속 외계인은 인류를 상대로 거대한 시비를 걸고, 꼭 미국 출신의 영웅을 만들어내지요.
그런데 ‘다크 스카이’는 평범한 중산층의 집 안을 공격합니다.
숱한 징후가 나타나지만 그 누구도 선뜻 외계인의 존재를 알아채진 못하지요.
어느 날 집안에 누군가의 침입 흔적이 발견되었을 때 평범한 우리들은
보안장치 강화를 최선의 조치로 생각 뿐, 그 누가 외계인이라고 상상하겠어요.
그림자의 형태가 사뭇 의미심장한 ‘다크 스카이’ 포스터.
외계인이 등장함에도 ‘다크 스카이’는 오히려 현실적입니다.
가족들에게 돌아가며 이상 징후가 나타남에도 ‘외계인’의 정체를 인정하기 전까지
가족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갈등만 증폭시키기 때문이지요.
보이지 않는 존재가가 주는 공포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불신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공포의 실체일지도 모르지요.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존재에 대항하는 가족들의 사투, 그것은 과연 어떤 결말로 맺어질까요.
평범한 한 가정이 외계인에 맞설 때의 공포, 참 현실적입니다.
우리 집에 왜 숨었니? ‘숨바꼭질’ (2013)
8월 14일 개봉을 앞둔 ‘숨바꼭질’ 역시 집을 침범하는 자와 이에 맞서는
가장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침범 당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맞서는 것뿐이지요.
‘숨바꼭질’의 주인공 성수는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단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인연을 끊다시피 한 ‘형’의 존재이지요.
어느날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찾은 형의 아파트에서 그는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를 발견합니다. 바로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표시한 암호였지요.
그리고 그날, 그 부호가 자신의 집에도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그 뒤부터
정체 모를 기운이 집안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성수에게는 결벽증마저 있지요).
‘숨바꼭질’의 긴장은 이 보이지 않는 정체와의 기 싸움에서 시작됩니다.
사라진 ‘형’으로 짐작하게 하는 존재는 완벽한 보안장치로 둘러싸인 성수의 집을 끈질기게 탐하려 합니다.
이로 인해 집안 곳곳, 누군가가 숨어들기 적당한 장소는 모두 공포의 공간으로 변하며 집의 안락함을
여지없이 파괴하고 말지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옷장 열기가 두려워질 것만 같은 느낌인데요.
일상의 안락한 공간이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바뀌는 미묘한 지점을 잘 잡아냈다면
충분히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가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집에 몰래 산다면? 숨바꼭질 놀이의 잔혹 스릴러 버전이 될 것 같습니다.
주연 배우 손현주의 에너지는?
특히 ‘숨바꼭질’은 작년 드라마 ‘추적자’로 생애 첫 연기 대상을 거머쥔 손현주가 생애 첫 단독 샷으로
영화 포스터에 등장한 영화이기도 하지요.
사실 그의 연기력은 드라마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 셈입니다.
허나 드라마에서 쌓은 탄탄한 내공과 달리 그가 그동안 출연한 영화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는데요.
라이어’(2004), ‘이대로 죽을 수 없다’(2005) ‘더 게임’(2007) ‘펀치 레이디’(2007) 등 적지 않은 영화에
주,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대부분 소리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지요.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존재감이 약했던 손현주. 캐릭터가 다들 비슷해 보이지요
그리하여 영화 ‘숨바꼭질’은 주연으로서의 그가 어디까지 캐릭터의 폭을 넓힐 수 있는지,
자신에게 맞는 작품과 캐릭터를 얼마나 잘 골라내는지를 확인하는 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적자’에서 쉬지 않고 지독하게 추격하던 남자가,
‘숨바꼭질’에서는 도망과 추격을 번갈아하며 더 큰 숨을 몰아쉽니다.
그 긴장을 배우 하나가 모두 책임질 순 없지만, ‘손현주’라는 이름이 관객에게
‘믿음’으로 새겨질 수 있을지 판가름하는 잣대는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추적자’로 불붙은 탄력으로 ‘숨바꼭질’이 주연 필모그래피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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