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윤리학의 가장 상위개념이다.
평범한 얼굴 뒤에 숨겨진 악의 본색은 4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로 각기 다른 캐릭터를 선사한다. 그건 이 사회의 악으로 지칭된 사악한 범죄를 폭로하면서 극화 되었다. 도청의 변명은 “남에게 피해 안줘” 나쁜 놈 이재훈의 낮에는 경찰 경장, 밤에는 옆집 여대생의 사생활을 도청하고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 “사랑해서 죽인 거야”찌질한 놈 김태훈 여대생의 주위를 맴도는 옛애인 강한 집착으로 스토커적인 기질을 보인다. “돈만 벌면 돼” 여대생의 마음씨 좋은 삼촌으로 자신을 소개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녀의 목을 죄는 사채업자 잔인한 놈 조진웅, “부인만 모르면 돼” 비겁한 놈 곽도원의 간음의 변은 여대생과 부적절한 사이를 비겁의 변주곡으로 넘기다 쇠고랑을 차는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교수로 그녀를 사랑이라 말하지만 부인에게 그 관계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대변한다.
미모의 여대생이 살해되어 그녀의 죽음에 얽혀 있는 4명의 나쁜 남자들은 면모는 세상비리를 완벽하게 포장했다. 그녀를 도청한 남자, 그녀를 이용한 남자, 그녀를 소토킹한 남자, 그녀를 간음한 남자. “누가 제일 악인인가?” 거기가 거기인 단어는 살인, 사채, 간음 정도라 할지.... 결벽을 키워드로 펼쳐지는 악인들의 승부 분노로 뒤엉킨 악인들의 먹이사슬, 최고 포식자는 누구인가?
영화 분노의 윤릭학은 치정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방화가의 또다른 유희물로 등장 시켰다. 미모의 모델이 힘의 논리에 의해 부평초처럼 떠돌다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여기에 연루된 4명의 남자들, 범인이 누군지 밝혀놓은 채 분노의 윤리학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제목이 이 영화를 한 차원 높였지만 범죄와 윤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이율배반인가를 잘 보여 줬다. 이점은 조진웅의 차 속 신에서 자기 나름의 분노에 대한 철학적인 정의의 대사는 이 영화가 전하는 주제를 간접적으로 효과를 극화 시켰다. 분노의 상위개념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낳았다.
곽도원, 조진웅, 김태훈의 연기력에 주늑든듯한 이제훈의 연기는 차라리 이 영화에서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관음주의적 인간(패쇄적 인물)을 잘 표현하였다. 뒤에서 등장하는 포스 작렬의 문소리의 연기에 한번 더 감탄하며 시니컬하고 이기적인 인간상들의 극치를 극명하게 연기하면서 물티슈의 용도가 그런데도 적격이구나하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 있을 수 있는 사건을 통해 뒤틀린 인간의 욕망과 이타적인 무관심을 전하는데 성공했다 본다.
무거운 제목과 달리 피가 낭자한 신에서도 할 말을 다하는 조진웅의 연기에 웃음이 나오는 블랙코미디 장르가 일품이었고 유혈이 낭자한 스테이지는 어느 화백이 4명의 최후모습의 리얼하게 화폭에 담은 듯 장관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범인 색출에 힘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 이미 죽은 여자의 원혼을 달래주려는 시도도 없다는 점. 그런 이유로 공권력의 개입은 배제되었다는 점. 한 여자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해 자신의 책임을 무마하려고 애를 쓰는 4마리의 불쌍한 숫컷들의 면면을 그리고 있을 뿐이라는 점.
그렇다면 이 영화는 숫컷들의 승전보인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물질적 소모품으로 간주되었을 뿐, 문소리가 최대의 승자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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