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이야기와 같은 전래 동화들에서 나온 화소들은 모두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왕자는 자신이 보는 것만큼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알았고,
거지는 자신이 바란 만큼 왕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았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원래의 자리를 돌아감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왕자는 민생을 알았고, 거지는 정치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화만큼 현실이 잘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의 초반은 위 <왕자와 거지> 동화로 시작한다.
유생들의 상소와 대신들의 반발을 겪는 광해는 자신에게 소중한(중전에게도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유정호를 국문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렇다고 다른 여러 대신들이 역적 모의를 했다고 주창하는 유정호를 놔두기엔
대신들의 지지를 잃을 것 같은 상황이다.
때문에 야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던 중 독살이 의심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광해는 자신의 대리를 세우고 이를 피하려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의도를 헤아리듯이 혼수상태에 이른다.
살고 싶어서 야행을 나섰다가 죽음의 경계에 이르는 상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저잣거리에서 왕을 풍자하는 시를 짓고 연극을 하는 하선은 왕과 놀랄만치 닮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왕을 풍자하는 것은 오로지 듣도 보도 못한 소문에 의한, 장난이다.
하지만 그런 장난질에 매타작을 당하고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열다섯 기생의 정조를 바친다.
우는 소녀에게 "그것도 인생이네. 그것도 사는 것이네" 하고 위로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임금이 쓰러지자 왕의 대리로 궁에 입궐하게 되고, 이제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제 세상인줄 알다가도 고목처럼 서있던 내관을 보고 놀라고, 변을 보는 방법도 몰라서 앓고 지낸다.
세숫물을 마시는가 하면 식성을 주체못해서 궁녀들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채 수라를 비운다.
자신에게 왕 노릇을 시킨 도승지 허균에게 핀잔을 듣고 구박 받으면서 왕의 언행을 하지만
생각만큼 제대로 말을 듣는 이가 없음에 당황하고 짜증스러워 한다.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줘야 한다는, 흥정의 논리로도 포장 할 수 없는 명예와 의리의 문제 모두에
얽혀 있는 왕이란 위치가 새삼 얼마나 불편한 자리임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하선이 왕으로 살아야 하는 행동을 제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라를 내오던 기미나인 사월, 호위부장 도부장, 그리고 원래 왕의 아내인 중전이 그 인물들이다.
수라에 놓인 팥죽을 올린 사월은 그간의 사정을 듣고 싶어하는 하선에게
다시 고된 일을 상기하며 말하고 하선이 할 왕의 의무를 일깨운다.
호위부장 도부장은 하선의 정체를 밝히려 하다가 자진하려 한다.
하지만 하선은 연극이지만 도부장의 역할에 대한 믿음을 보임으로써 예의를 다하려고 한다.
만나서는 안되는 인물인 중전은 하선의 행동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왕으로서의 하선과 광대로서의 하선을 분리시킨다.
바람과 감성으로 삶을 대했던 광해의 이전 모습을 하선과 교차시킴과 동시에
하선의 앞으로의 일에 걱정과 연민을 보내는 것이다.
(극중 자신과의 혼인날 읊었던 시를 떠올리냐며 과거를 회상하는 중전의 모습은
광해 역시 처음엔 그닥 다르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하선의 정체가 드러나고 광해처럼 될 지도 모르는-그러나 되지 않은-상황을 염려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극 중반에 이르기까지, <왕자와 거지>동화의 요소들이 구석구석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극 후반 광해가 정신을 차린 이후부터는 그 이상의 변형이 가해지는 것 같다.
바로, 전래동화 <옹고집전> 이야기다.
<못된 심보를 가진 양반 옹고집이 한 고승을 능멸한다
고승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진짜 옹고집을 집에서 쫓아낸다.
옹고집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갱생한다.
집으로 돌아온 옹고집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가짜 옹고집을 물리친다.>
는 내용이 그 줄거리인데,
동화상에서 꼭두각시가 자신의 위치를 대체하고 있는 것을 본 옹고집의 심정이
영화상에서 광해가 느낀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이 넘었을 즈음. 광해가 깨어난다.
광해는 천한 백성이 자신의 위치에 있는것을 두고볼 수 없다는 것을 허균에게 내비치고
주저하는 허균에게 "그간 정이라도 들었나"고 말한다.
마지막 왕 노릇을 할 때, 하선은 왕의 진정한 모습을 보인다.
대국을 향한 의리와 명예가 아닌, 실제 자신의 나라의 백성을 위하는.
그리고 자신의 수라에 독을 탈 수 없어 스스로 독을 물고 죽은 기미나인 사월을 위해
마지막 왕 노릇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허균은 이를 봄으로써 깨닫는다. 진정 왕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허균은 그간의 일들이 적힌 실록 일기를 왕에게 전함으로써,
그리고 그 정을 나누어 주었던 자신을 책해 달라는 의미로 칼을 보인다.
그것에 광해는 묵묵부답으로 응대한다.
(그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일이 다 끝나고 떠나는 하선에게 추적대가 붙는다.
(가짜라는 이유로, 왕의 역할을 충실히 다한 하선에게 내려지는 벌이다.)
하선을 처리하지 않은 도부장이 하선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하선을 살린다.
결국 하선은 무사히 도망친다. 자신을 웃음으로 배웅하는 허균과 눈물로 이별한채.
(이후 하선이 담당했던 15일간의 행적 이후에 광해군이 하선과 같이 행동했다는 것은 없다.
그냥 좋게 지나갔다는 일인지, 아니면 다시 폭군이 되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을 능멸했다하여 군사를 몰고 온 박충서와 대신들을 처단하려는 광해라면,
그리고 이미 처리할 도부장을 보낸 후에 또다시 추적대를 보낸 광해라면, 다시 폭군이 되지 않았을까.
15일간의 행적을 마음에 담아 두었지만,
다시 구중궁궐의 현실을 살아갈 광해라면 하선의 일 따윈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 뿐이었을 테니까._
옹고집이 허수아비를 물리치고 자신의 죄악에 대해 참회하였지만,
그 역시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고승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광해의 불안이, 더 이해가 잘 될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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