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시대에 이 영화를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
1987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의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정치는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한 대학생이 경찰의 조사를 받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국민을 분노케 하는 등 그 해 6월은 유독 뜨거웠다. 그 뜨거웠던 6월, 민주적인 헌법을 요구하며 시민, 학생, 노동자가 참여하여 민주 항쟁이 일어났고, 학생과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리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 민주화 선언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많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화려한 휴가], 그리고 [스카우트]. 80년대의 복고를 추억하는 [써니]. 최근에 제작되고 있는 [29년].
이렇게 다양한 영화들이 어두웠던 1980년대를 추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정서의 환기 혹은 그 시대의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위로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각성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미운 오리 새끼]는 1987년을 배경으로 6개월 방위 근무를 하는 ‘육방’ 전낙만(김준구)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전낙만은 전직 사진기자 출신에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 줄을 놓아버린 아버지(오달수)와 미국으로 떠나 버린 어머니를 두고 있다. 이런 어려운 가정 사정으로 6시에 칼 퇴근하는 6개월 방위를 하게 된다. 낙만은 전역을 하면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어 6시 이후에는 영어를 배우지만, 6시 이전은 너무 고달프다. 본업이 이발병임에도 부대의 잡스러운 일은 도맡아하고, 인사계(양중경)에 명령으로 대대장과 바둑을 두는 ‘바둑병’ , 부대행사때마다 사진을 찍는 ‘사진병’으로서 제 2,3의 보직을 행한다. 그러나 중대장(조지환) 머리카락을 이발해주다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후 낙만은 영창 보초병까지 서게 되고 다양한 감방 수감자들을 만나면서, 육방 인생에 혼란스러움을 경험한다.
[미운 오리 새끼]안에 흐르는 정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1980년대의 모습.
다른 하나는 아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아버지의 부성애.
영화는 두 정서를 조화롭게 담아낸다.
가장 군대스러운 헌병대 부대원들에게 6개월 방위는 눈엣 가시다. 당시가 민주화를 원했던 군부독재 시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그 사회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헌병대 부대원들이 그 시대의 권력이라면, 6개월 방위는 뜨거웠던 1987년 6월에 민주적인 헌법을 요구하며 자유를 원했던 시민, 학생, 노동자. 바로 국민이다. 주인공 낙만이 ‘6개월 방위’라는 것과 당시의 민주 항쟁이 ‘6월’에 일어났다는 이 숫자 6의 섬뜩한 비틀즈 코드도 주목해 볼만한 부분이다. 또한 故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민주화 항쟁을 위해 연설했던 육성도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테일로 작용한다. 곽경택 감독의 노련미가 곳곳에 보인다.
전낙만의 가족 (할아버지, 아버지, 전낙만 포함)과 혜림, 행자는 암울한 시대가 만들어 낸 피해자다. 특히 행자(송율규)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스님이 되고 싶었던 ‘행자’는 불의에 맞서 대항했던 정의로운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 정의로움은 사회가 만든 뒤틀린 프레임 안에서 불의로 변하고, 행자는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로 변질되어 무참히 폭력을 당한다.
극 후반부 전낙만은 사회에 대한 울분을 행자에 대한 폭력으로 풀어낸다. 그가 강간을 했다고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전낙만 또한 동기에게 받은 불온 서적 한권으로인해 ‘빨갱이’로 오해받는 일을 당한다. 단 하나의 오해도 사실로 만들었던 무서운 세상에 대한 풍자다.
[미운 오리 새끼]의 명장면은 낙만의 아버지가 영창에 갇힌 낙만을 만나기 위해 5년이 넘도록 한 걸음도 안 나온 집을 뛰쳐나오는 부분이다. 사회에 억압에서 끊임없이 고통 받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그 고통스런 사회에 다시 뛰어들지만, 정신상태는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어라’ 아버지의 한마디가 진한 부성애를 담고 마음을 관통하는 것은 배우 오달수의 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미운 오리 새끼]는 전반적으로 캐릭터에 기대서 영화가 진행된다. 그래서 큰 줄기 역할을 하는 이야기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캐릭터와 자잘한 에피소드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히 시대상을 반영하며 대중적 재미도 놓치지 않고 진행된다. 다소 애매한 느낌의 결말은 아쉽다.
신인 배우들의 연기는 투박하고 서툰 지점들이 있지만,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조화되어 보인다.
오달수는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아버지 연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한 번쯤 날고 싶었던 그 시대의 오리들,
그리고 지금의 힘든 시절을 버텨내는 오리들을 위한 위로의 영화.
[미운 오리 새끼]
JK Soul's FILM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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