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왕(이병헌)’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하선(이병헌)’이라는 자를 찾아 대신 왕좌에 앉힌다. 왕의 암행을 위해 가끔 사용하던 자였으나 왕이 갑자기 앓아눕자 도승지 허균(류승룡)은 하선을 전면에 내세우며 왕을 연기하라고 사주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돈을 노리고 대역을 하던 하선이었지만 점차 진정한 왕의 모습에 눈이 뜨기 시작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마파도>(2005)와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를 연출해 스타 없이도 깜짝 흥행을 만들어냈던 추창민 감독의 신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왕이었던 광해군의 이야기에 살을 덧대어 만들어낸 픽션 사극이다.
광해군은 조선왕조 27명 중에서 ‘군’의 칭호를 받은 2명 중 하나다. 나머지 한 명은 <왕이 남자>(2005)에서 폭군으로 나왔던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익히 알려진 폐륜 행위로 굳어진 캐릭터였다. 드라마 등에서 나오듯 기구한 가족사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동정 정도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반면에 광해군은 재해석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승자의 논리로 기록되는 역사 속에 희생된 왕이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다. 영화는 이 지점을 파고들어 [왕자와 거지]의 틀을 빌려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유사한 작품으로 <카게무샤>(1980)와 <데이브>(1993)의 분위기를 따르고 있다.
갑자기 왕좌에 앉으며 일어나는 폭식과 뒷간 에피소드와 후반에 탐관 무리들을 꾸짖는 내용 등 지난달에 개봉했던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 진중한 분위기를 깔면서 설득력 있게 진행되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이다. 단순히 약자를 보호한다는 두루뭉술한 사고가 아니라, ‘대동법’ 등을 입에 올리며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조세 문제와 외교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점으로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월드스타로 거듭난 이병헌은 첫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1인 2역을 훌륭히 소화하면서 영화를 활력 있게 이끌어나간다. 여기에 물이 오른 류승룡, 장광(내관), 김인권(도부장)의 감초 연기가 더해지면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적은데, 한효주(중전)는 비중이 매우 적으며 키스신조차 없는 것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심은경(사월이)은 발음이 부정확하고 톤이 매우 높아 아쉽다.
통쾌한 꾸짖음과 반전 뒤에 인간적인 모습을 노출하는 결말까지, 훌륭한 만듦새와 함께 대선을 앞두고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의 상을 공감할 수 있게 제시하기에 첫 주에 100만 관객이 넘는 폭발적인 흥행이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이후에 특별히 인상적인 라인업이 없어 추석 시즌까지 한국영화 붐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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