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히어로물이다.
톱 클래스의 인지도를 지닌 배우가 거대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영화에서 지구를 지킨다. 재미는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개의 패턴이 생기고 나중에는 이 히어로나 저 히어로나 다 비슷해 보인다. 초조해진 영화제작자들은 히어로들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돌연변이와 인간의 공존이냐 전쟁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주인공들이 그랬고,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큰 능력에 뒤따르는 큰 책임'의 무게에 짓눌린 피터 파커가 그랬고,
리부트된 <배트맨> 시리즈의 브루스 웨인은 영웅, 악당 잡는 악당, 평범한 시민의 삶을 놓고 고민한다.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이 진화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한다.
"응.. 그래.. 새로움을 가하기 위해서 주인공을 사색하게 만든단 말이지.. 그것도 좋지.. 근데 말야.. 이건 어떨까? 그렇게 진지하게 말고.. 한 영화에 여러 히어로가 등장하는거야.. 아니아니, 여러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말고, 각기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한 영화에 떼로 나오는거야. 어때? 죽이지??"
이 생각에 꽤 많은 사람들이 혹한다. 조심스레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엄청난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시간이 투자되는 거대한 기획. 수 년에 걸쳐 영화가 개봉한다.
<아이언맨> 시리즈를 통해 과학기술로 무장한 특수 수트를 입은 천재 재벌, 아이언맨이 소개된다.
<인크레더블 헐크>를 통해 화나면 괴물되는 천재 과학자, 헐크가 소개된다.
<토르>를 통해 천둥의 신, 토르가 소개된다.
<퍼스트 어벤져>를 통해 과학기술로 진화한 인간, 캡틴 아메리카가 소개된다.
놀랍게도, 위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헐크를 제외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 그대로, 한 영화에 출연한다. 독립적인 히어로 영화에서 혼자 두 시간 가까이 조명을 받던 배우들이 기꺼이 단독 조명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렇게 <어벤져스>가 관객들에게 선보여진다.
그 자체만으로도 놀랍다. 이런 정신나간 기획력이라니.. 수 년에 걸쳐 떡밥용 영화를 던지고 본편을 내놓다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자본과 기술과 기획력이라니..
그런데..
재미있기까지 하다니..
그렇다. <어벤져스>는 단순히 대단한 기획력의 결과물을 넘어선다.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다행히, <어벤져스>는 재미있다. 대단히 재미있다.
사색을 내려놓고 승부한다! 근데 끝내준다!
<어벤져스>의 감독은 원작 만화들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팬심이 발동한 것일까?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만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쾌감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최근의 히어로물에서 각광받은 '고뇌하는 영웅' 부분을 걷어내고, 히어로물 본연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내용으로 무장한 <어벤져스>는, 놀랍게도 단 한순간도 관객의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멋진 대사로, 끝내주는 몸매로, 잘생기고 예쁜 얼굴로, 화려한 CG로,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으로, 허를 찌르는 깨알 개그로, <어벤져스>는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각 장치들은 세심하게 균형을 이루며 영화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서로를 돕는다. 히어로물에서조차 사유할 거리를 찾는것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순수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승부수를 띄우고,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벤져스>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어쩜 이렇게 균형이 잘 잡혔니?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영화는 언제나 '누가 메인인가?' "누가 분량의 희생자가 되었나?'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영화에는 주인공이 있을 수밖에 없고, 스토리는 주인공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어벤져스>는 영화에 등장하는 단 한 명의 주인공도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초능력이 있다면 초능력으로, 초능력이 없다면 힘으로, 힘도 없다면 말로라도, 모든 히어로들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출연 비중의 균형을 맞추느라 영화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많은 히어로들이 충분히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데 영화는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100% 즐기려면 봐야하는 영화가 몇 개야..
세상에 완벽한 작품은 없기에, <어벤져스>에도 짜잘하게 시비걸 거리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요 시비거리들은 너무 짜잘해서 위에 서술한 장점들과 대등하게 맞설 짬이 안된다. 딱 한가지 이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이 영화에 앞서 개봉한, 각 캐릭터들의 독립 영화들의 갯수가 다섯 편이나 된다는 점이다. 물론 <어벤져스>는 독립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개봉한 '떡밥용' 영화를 보지 않는 관객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의 캐릭터들의 이야기, 그들의 내뱉는 특정 대사, 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의 이유, 중간중간 깨알같이 지나가는 한 두 장면을 100% 이해하며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앞서 개봉한 떡밥 영화들을 보는것이 좋다. 99% 알아들어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마지막 1%까지 알아듣는다면 그 재미의 차이는 극명할테니 말이다. 이 부분이 약간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다행히 떡밥용 영화들은 모두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 제작사가 <어벤져스>의 성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제작한 떡밥들이기 때문이다.
<어벤져스> 너희들! 사랑한다!!
<어벤져스>는 분명 재미있고 훌륭하기까지한 히어로물이다.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터무니없는 기획이 낳은 끝내주는 결과물이며, 만화를 통해 얻은 쾌감을 영화로 되살리기 위해 죽어라 아이디어를 짜냈을 감독과 스탭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블록버스터물이다. 딱히 흥행하지 못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진지하게 사색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가 아니면 영화로 취급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영화를 보고 "쓰레기야!"라고 외칠 관객은 거의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그 정도로 <어벤져스>는 재미있다. 꽤나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모으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큰일이다.. 한 번 더 보고 싶다.. 돈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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