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 아래 봄바람 살랑이던 어느 늦은 오후같이, 내 코와 두 눈에 알싸하게 다가와 아리해진다. 그렇게...
일단 이 영화 잔잔한 첫사랑의 아련함 한움큼 담는다. 중간즈음까진 다소 '피식'한 썩소가 나올 정도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전형적 멜로 스토리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지나칠수록 이내 아리해지고 따끔거리는 느낌, 그닥 멀지않을 기억같은, 뭐랄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잠시 잊고 있던 일기장 페이지를 넘기듯 살며시 젖어드는 설레임에 감싸인 찌릿한 순간들이 스치는 느낌, 비단 나만의 감흥만은 아니었으리라.
집을 다시 짓기 위해 그녀는 과거의 남자를 찾았고, 남자는 잊고 있던 짝사랑을 기억해낸다. 더없이 풋풋한 봄바람처럼 만난 두 사람이 만드는 수채화같고 친구를 가장한 가슴앓이 사랑은 예쁘다. 시간이 너무 지나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의 후회를 뒤로 하고 여자와 남자는 한장 한장씩 기억의 습작들을 넘겨본다. 사춘기와 청년기 사이의 청춘들에게 그려졌을 법한 이야기와 주변은 낯설지만은 않으며, 그리 진하지도 옅지도 않다. 그를 배경으로 20대의 그들과 30대의 그들은 하나지만 다른 하나임을 확인하게 되는 거다.
구세대 로맨스의 향수를 들고와 관객을 사로잡는 노래는 많았어도 영화는 그렇지 못한듯 하다. '클래식'이 있었고 '써니'가 그랬고, '번지 점프를 하다'가 전부였을 정도? 뭐, 70,80년대를 배경한 노스텔지어 영화는 일단 몇 개 더 있으리라. 그래도 90년대에 청춘을 앓아온 우리들에겐 너무 예전스럽기만 했다. 간극이 다소 길다보니 그냥 추억스러운 풍미 정도쯤. 올해 그 간극 사이를 매꿔준 작품이 있다면, 그 영화가 '건축학개론'이라면 너무 성급한 건가? 건축이란 소재와 어울림 미묘한 그 시절 음악들만 본다면, 영화가 풀어내려는 이야기 어쩌면 뻔할 거다. 혹자는 90년대 이후 문화적 변화가 멈춰진, 마치 엊그제 재방송스러운 멜로 드라마라 폄하할 수 있겠다. 그렇다 해도 사십대를 향해 어쩔수 없이 내달리던 나와 동세대들에게 이 영화, 잠시나마의 설레임의 쉼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짝사랑이었는지, 첫사랑이었는지를 모를만큼 시간을 스쳐 흐른 뒤, 문득 떠올라 생각나는 나 혹은 그녀, 내게 그녀는 무엇으로 남아 기억되고 있는가, 어딘가 구겨 두었던 기억의 습작을 펼쳐본다. 이 영화, 그런 영화다.
ps.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왜 이토록 진하고 먹먹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내게도 첫사랑의 순간을 스케치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