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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이 곧 권력인 수컷 냄새 그득한 갱스터 무비.. ★★★★
TV에 노태우 대통령이 나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수사관들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뛰어 나가자마자 전화로 범죄자들에게 단속을 알려주며 영화는 시작한다. 즉,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하 <범죄와의 전쟁>)은 범죄와의 전쟁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명확하면서도 노골적인 조롱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1982년 부산, 부서 전체를 대신해 해고된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압수한 히로뽕을 처리하기 위해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족보로 먼 친척뻘인 두 사람 - 최익현은 공무원 시절 인맥과 비상한 머리로, 최형배는 주먹과 실행력으로 서로 보조를 맞추며 부산의 암흑가를 접수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1990년 정권 차원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난 후, 익현의 입지는 흔들리고, 이 틈을 이용해 라이벌 조직 보스 김판호(조진웅)가 익현을 유혹한다. 결국 경찰에 체포된 익현은 수사기관과 자신을 위협하는 형배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범석 검사(곽도원)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로 극찬을 받고, <비스티 보이즈>로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했던 윤종빈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는 윤종빈의 장기가 바로 남성들의 권력 관계를 다루는 데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수컷 앞에서 강해보이고 싶어 하는 수컷들의 허풍과 냄새가 그득한 <범죄와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133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무색하리만큼 재미가 있고, 디테일과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 가히 한국판 <대부> 또는 <좋은 친구들>로 불려도 좋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사실 최익현의 캐릭터가 반달, 그러니깐 반은 일반인, 반은 조직폭력배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점에서만 보면 <범죄와의 전쟁>은 캐릭터 코미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재미와 웃음을 준다. 굳이 친척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형배의 아버지를 찾아가 형배의 무릎을 꿇린다거나, 형배의 행동을 따라하며 위세를 과시하는 익현의 여러 행동들은 아슬아슬 담장을 거닐 듯 위태위태하다. 즉, 익현의 행동은 다분히 유머러스하지만, 동시에 영화적 긴장감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기존 조직폭력배를 다룬 한국영화와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동안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들은 대게 조폭을 미화해 영웅화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지점에서 조소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데 반해, <범죄와의 전쟁>은 익현을 통해 조직폭력배의 생리,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대게 주인공이 조직폭력배에 가담하게 되는 영화는 주인공의 타락을 통해 뭔가를 보여주려 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익현은 처음부터 타락했으며, 끝내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익현의 삶을 보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듯 보인다.(“내가 이겼다”)
이 영화엔 무수한 권력관계가 그려진다. 익현과 형배도 묘한 경쟁과 권력구도를 보이고 있으며, 형배와 판호, 검사와 경찰, 고위직 검사와 평검사, 정치인과 사업가 등의 관계들, 그리고 이 관계는 한국에서의 권력이 주로 인맥, 그 자체에서 발생함을 보여준다. 익현이 반달로서 형배와 대등한 관계(자신이 보기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바로 인맥이며, 명단이 빽빽하게 담겨진 익현의 수첩은 한국에서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가장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인 소품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배우들의 연기가 말 그대로 최고라는 것이다. 최민식, 하정우의 연기는 두 말할 필요 없고, 주연급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조연급들의 연기 앙상블이 최고조에서 결합해, 관객에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분명한 건 조진웅, 마동석, 곽도원, 김성균, 김혜은이라는 배우들의 이름을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는 사실이다.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내가 이겼다”
※ 윤종빈 감독은 남자를 증명하고 싶은 듯, 심지어 <용서받지 못한 자> 이전에 만들었던 단편 영화의 제목이 <남자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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