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 살면 행복합니다... ★★★☆
줄을 잡지 않고서는 일어나기도 힘들고, 동물용 MRI에서 촬영해야 하며, 혼자서는 등 뒤의 지퍼를 열고 닫을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찐 카티 쾨니히(가브리엘라 마리아 슈마이데)는 미용사로 취직을 원하지만 외모로 인해 취업이 거절된다. 그러자 쾨니히는 직접 미용실을 운영하기로 결심하고 돈을 모으지만 만만치 않은 상황. 취업 안내 센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전직 미용사 질케(크리스티나 그로브)와 함께 이동 미용실을 차린 쾨니히는 돈을 모아가지만 급하게 보증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취업센터가 파업으로 문을 닫자, 베트남 불법 이민자의 수송 일을 맡았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미용사로 취직한 쾨니히가 손님의 머리를 만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한다. 그러니깐 영화 전체는 일종의 과거 회상 장면 - 플래시백이 되는 것이고, 즐거워하며 이야기 하는 주인공의 표정을 보건데 영화가 해피엔딩이 될 것임을 미루어 짐작 가능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헤어드레서>는 잘 빚은 캐릭터의 힘이 빛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쾨니히는 스스로 운이 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딱히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 긍정적 성격의 소유자로서, 외모, 출신, 여성이라는 이유 등으로 다양한 차별을 당하지만 차별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싸우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감내하지도 않는다. 단적으로 그녀는 외모로 인해 취업이 거절됐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다이어트를 시도조차 않는다. 어찌 보면 단순한 듯 보이지만, 실제 사람들이 대게 그러하듯 복잡다단한 성격.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하나의 캐릭터가 온갖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도록 강제하지만, 그것이 한 여인의 잔혹사로 여겨지도록 끔찍한 정서로 발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지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주인공과 영화에서 모든 걸 끌어안을 듯한 여유와 너그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여성성.
우선 그녀는 외모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다. 직업 안내 센터를 통해 사실상 취업이 결정된 것으로 알고 간 쾨니히는 자신의 비만에 놀라는 사장과 직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취업불가라는 수모를 감내한다. 출신에 따른 차별도 경험한다. 아마도 동독 출신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 별도의 추가 서류와 엄격한 심사 과정. 독일 이등시민으로서의 비애. 여성으로서의 차별도 자연스레 따라온다. 대출을 신청하는 데 필요한 남편의 직업. 쾨니히는 “남자가 대출을 받을 때 부인의 직업을 요구하지는 않잖아요”라며 불평등함에 불만을 표출한다.
쾨니히가 이러한 차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꾸미지 않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뚱뚱한 여자라고 뚱뚱한 남자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비록 사회생활을 위해서 남편이 필요하다지만 자신의 취향을 어겨가면서까지 누군가와 사귈 생각은 없다. 이혼 후 어릴 때 자란 마을로 딸과 함께 돌아온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게다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그녀는 다이어트에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취업 안내 센터에서 당당하게 먹는 것으로 긴 대기시간을 버틴다.(물론 건강을 위해선 비만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주인공이 다이어트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과거에 무수히 많은 다이어트 시도가 실패로 귀결됐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영화적으로는 아마 비만을 정체성의 상징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차별을 당하는 쪽에 있는 쾨니히가 드디어 타인을 차별할 기회(?)가 생긴다. 베트남 불법 이민자를 수송하던 쾨니히는 일이 잘못되면서 10여 명의 베트남 불법 이민자들을 잠시 동안 보호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상황이 꼬이면서 불법 이민자들은 결국 며칠 동안 쾨니히의 보호를 받게 된다. 쾨니히가 스스로 타인에게 받아왔던 차별을 되돌려 주리라 마음먹었다면, 그녀는 당장 티엔(김일영)을 포함한 불법 이민자들을 독일의 낯선 거리로 쫓아 낼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차별을 이들에게 되돌려주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고 따뜻함으로 감싸 안는 그녀와 베트남 불법 이민자들의 관계는 불법 이민자들이 문예공연단으로 속이기 위해 부른 노래가 <인터내셔널가>라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바로 약자들의 연대. 민중연대의 관점. 쾨니히가 베트남 거주지역의 미용실에서 자신이 소망하던 미용사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쾨니히가 보여준 삶의 태도에 대한 보답이리라.
※ 쾨니히의 알몸이 등장하는 장면(섹스 장면을 제외하고)은 전반적으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도드라지게 힘겨운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다. 힘들게 ‘헉헉’거리는 숨소리. 어떤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웃어넘길 줄 아는 쾨니히.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찌 인생이 힘들지 않겠는가. 둔중한 육체와 힘겹게 넘어가는 숨소리는 쾨니히의 감춰진, 내색하지 않는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 베트남 불법 이민자를 인솔하는 티엔을 본 순간, 혹시 한국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후 정보를 찾아보니 배우 이름이 바로 김일영. 독일에 있는 후배에게 물어보니, 독일 TV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방송 리포터로도 활동하는 재독 2세 교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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