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서 셀애니메이션의 매력과 아드레날린이 분출한다... ★★★☆
여하튼 영화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는 머나 먼 미래. 순정파 레이서 JP(기무라 타쿠야)와 천재적인 정비사지만 마피아와 결탁해 승부조작으로 돈을 버는 프리스비(아사노 다다노부), 그리고 JP의 첫사랑이자 어렸을 때부터 레이서만을 꿈꿔온 소노시(아오이 유우)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우주 최고의 레이싱 대회인 레드라인에 참여하게 된다. 최고의 레이서들만이 모이는 레드라인은 이기기 위해 경쟁자에게 중화기를 이용한 공격도 허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개최를 불허한 독재국가 로보월드는 군대를 동원, 참가한 레이서들을 공격해 온다. 이런 상황에서 JP는 우승과 사랑의 쟁취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레드라인에 참가한다.
<레드라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셀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극장용 영화라는 점이다. 물론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셀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별다른 특징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개봉 편수가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셀애니메이션 제작 국가라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에겐 희소성이 있다 할 것이다.
찾아보니, 내가 최근에 본 셀 애니메이션은 2008년에 관람한 <페르세폴리스>였으니 거의 삼 년 만에 셀애니메이션 영화를 다시 관람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페르세폴리스>와 <레드라인>은 셀애니메이션의 활용에 있어 거의 극과 극의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페르세폴리스>가 셀애니메이션, 그것도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은 영화에 담으려는 내용의 부각, 즉 화려한 이미지로 인해 내용의 전달이 침해되기보다는 차라리 가장 단순한 형식을 도입해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원작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했지만, 이는 그만큼 복잡한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최적화된 형식으로서 선택된 것이다.
반면, <레드라인>은 사실 뻔한 내용에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경로를 밟아간다. 복잡하지도 않거니와 약 1시간 30분 동안 집중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단순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셀애니메이션은 시각적 쾌감을 주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즉, <레드라인>은 기본적으로 내용보다는 셀애니메이션이 주는 매력을 전달하는 데, 아니 셀애니메이션의 매력이 먼저 다가오도록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레드라인>은 주인공들의 팔이 길게 늘어나는 등의 기법을 이용, 어마어마한 속도감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등 셀애니메이션 기법이 줄 수 있는 매력을 한껏 뽐낸다.
시각적 쾌감만이 아니라 레이싱 과정에서 귀청을 때려대는 테크노 또는 하드코어 메탈의 강렬한 음악은 청각적 쾌감도 동시에 전달하며, 로보월드 대통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장엄한 음악은 <레드라인>에 무게감마저 제공한다. 특히 나치를 연상하게 하는 독재국가 로보월드와 이에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투쟁과 이에 대한 묘사는 <레드라인>이 어쩌면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닐 수도 있음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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