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의 간극... ★★★☆
눈이 덮인 깊은 숲 속에서 아버지 에릭(에릭 바나)과 함께 살고 있는 한나(시얼샤 로넌)는 16년 동안 매일의 고된 훈련을 통해 외국어에 능통하고, 온갖 살상기술을 배운 살인병기로 길러졌다. 한나의 목표는 엄마를 죽이고 자신을 쫓고 있는 마리사 위글러(케이트 블란쳇)를 죽이는 것이다. 어느 날, 준비가 된 한나는 일부러 CIA에 잡혀 자신을 마리사라고 하는 한 여인을 죽이고 CIA 기지에서 탈출해 베를린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떠난다. 이 여정에서 한나는 처음으로 낯선 세상과 소통한다.
소녀 킬러. 소재만으로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시도다. <니키타>, <킥 애스 : 영웅의 탄생>의 힛걸, 분량은 작지만 <킬 빌 1>의 고고 유바리 역시 인상적인 소녀 킬러로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새로 등장하는 소녀 킬러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새로운 액션? 새로운 무기?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 감독은 (소녀) 킬러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보다는 소녀 (킬러)의 소통과 성장, 그러니깐 소녀의 감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런 연출 방향이 관객의 기대와 잘 맞느냐와는 별개로 조 라이트 감독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방향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영화 <한나>는 액션 장르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딱히 액션의 쾌감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같지는 않다. 한나는 힛걸과 같은 파괴력 넘치는 액션도 니키타와 같은 필살기도 보여주지 않는다. 몇 차례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는 대단히 비장하거나 테크노 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민망할 정도로 소박하고 단순하며 부실하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에 조 라이트 감독은 액션 장면 연출에 열과 성의를 다하지 않은 것 같다. 굳이 자신까지 나서서 액션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연출자의 의도가 그러해서인지 배우들이 액션을 할 때의 몸 움직임도 어설퍼 보인다. 이건 어쩌면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액션에 큰 기대를 걸었을 관객들에겐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을 주었을 법하다.
조 라이트 감독은 액션은 물론이거니와 스릴러적 재미에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은 듯 보인다. 그나마 숨어 있던 한나를 찾기 위해 마리사가 예고 없이 침대 밑을 들여다보는 장면 정도를 제외하고는 딱히 인상적인 장면도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 숨겨진 비밀, 아버지나 마리사의 정체, 한나의 정체성, 왜 에릭은 한나를 굳이 세상에 내 놔야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들은 별다를 게 없거나 또는 모호하게 처리된 채 마무리 된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일부의 모호함은 <본 시리즈>처럼 후속편을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킬러로서의 스킬이 아니라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 왔던 소녀가 처음 세상과 소통하면서 느끼는 감성들이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가 떠오르는 화면들은 이 영화의 초점이 액션이 아니라 감성임을, 액션을 빙자한 성장 드라마임을 말해준다. 글로만 모든 것을 배웠던 소녀가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을 때, 친구를 만났을 때, 자유로운 바람을 만끽할 때의 놀람과 감동의 순간을 영화는 제공한다.
영화 <한나>는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감독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과의 간극이 느껴지는 영화다. 그 간극에서 큰 실망감을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련함과 감동을 얻을 수도 있다. 후자에 기울어 있음에도 여전히 아쉬운 건 액션 장르를 표방한 만큼의 액션을 보여주었다면 그 간극은 대단한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 <한나>는 발음조차 어려운 Saoirse Ronan 시얼샤 로넌이 잘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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