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전제를 밝혀둔다. 영화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특정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영화적 맥락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크라이스트(그리스도)’와 ‘안티크라이스트(반기독교)’는 서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적인 사고 방식과 태도, 습성 등을 상징한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언제나 이분법적 사고에 충실하다. 진리와 비진리, 하나님과 사탄, 선과 악, 참과 거짓, 신자와 비신자 등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기독교로 상징되는 자기 중심적인 ‘주체적 태도’는 자신과 다른 타자를 비진리, 악, 거짓, 사탄 등등의 이름으로 정죄하며 억압하고 파괴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폭력이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다는 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변화되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지 말고 가지 말고 듣지 말고 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위선이 아닌, 사랑을 빙자한 스스로의 확신 가운데 자행되는 까닭에 주체적인 폭력은 결코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변화될 수 없는 치명적인 ‘악’이다. 결국 극단적인 ‘선’을 향한 지향은 필연적으로 극단적인 ‘악’을 파생시킨다.
영화 <안티크라이스트>는 타자의 시선을 잃어버린 자기 중심적 ‘사랑’(남편-월렘 데포 분)이 어떤 파국적인 ‘악’('비탄'과 '고통'과 '절망'에 빠진 아내-샤를로트 갱스부르 분)을 야기하는지를 보여준다. 곧 ‘안티크라이스트’의 근원은 왜곡된 진리로서의 ‘크라이스트’ 내부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안티크라이스트’라는 역설적인 제목, 도발적인 소재, 충격적인 표현을 통해 진정한 '크라이스트'적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날선 통찰력에 경이를 표하며 꽉 찬 별 4개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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