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외로움이 무르익은 계절.
만추(晩秋)에 찾아 온 사랑.
[만추] 만추. 외로움이 무르익은 계절.
아주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늦은 새벽녘.
잠은 안 오고, 마음은 심란한데...
아무리 핸드폰 목록을 만지작거려도
딱히 마음 편안히 전화를 걸 곳이 없는 밤.
스르륵 외로움이 스며든다.
막 교도소를 나온 애나가 그렇다.
오랜만에 찾은 가족들은 바쁘게 인사를 건내고,
주방으로 손자 곁으로 핑계를 붙이며, 바쁘게 그녀의 곁을 벗어난다.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집.
잘못 새겨진 어머니의 묘비.
남겨진 중국식 레스토랑.
오로지 그들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을 뿐이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공간을 함께 할 뿐,
그 안에서도 그녀는 혼자다.
오랜만에 마주한 사랑도 그러하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며 그녀를 외면한다.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덩그런히 그녀가 머물러있다.
외로움이 절정으로 무르익은 계절.
그녀는 지금 만추(晩秋)에 머물러 있다.
[만추]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사랑이 찾아왔다.
새로운 옷을 사 입고,
귀고리까지 하고서
그녀는 조금 힘을 내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롭게 죄수번호와 위치를 묻는 전화는
그녀를 다시 현실로 추락시킨다.
오랜만에 한 귀고리로 인한 가려움이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속삭이는 듯 하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고...
다시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고,
애나의 인생에 남은 것은
이제 시리고 추운 겨울 뿐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렇게 다가 올 추운 겨울을 예감하며...
외로움이 쓸쓸하게 무르익던 만추에
애나는 훈을 만난다.
[만추]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사랑이 찾아왔다.
한 걸음 떨어져 있던 교도소 안에서와는 달리,
직접 마주한 가족들의 모습.
눈으로 확인한 자신을 떠나간 사랑.
아마도 예상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애나는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교도소로 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차마 돌아가지 못하였지만,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외로움이 고통스러웠기에
다시 우연히 마주친 훈에게
자신을 원하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리라.
그만큼 외로움은 고통스럽다.
[만추]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는 외로움.
도대체 어떻게 부인을 마음을 얻었냐는
그 남편의 물음에 훈은 답한다.
그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라고.
훈은 그처럼 사람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재치있게 애둘러 그녀의 이름을 묻고,
다투는 연인을 통해서
그녀의 말문을 트게 만들고, ( 이건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
못 알아드는 중국말임에도 "하오" "화이"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에
알고 있다고 답하며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감당키 힘든 외로움과
그 버거움에 지쳐가는 그녀를 편안히 위로해준다.
그 덕분일 것이다.
"왜 남의 포크를 사용했냐, 사과하라!"며
자신을 배신한 사랑에 화를 내는 것은 말이다.
화를 내고, 슬픔을 떠트린다는 것.
받아드려야 할 절망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사람은 끝내 홀로 일어서야 하지만,
외로움이 꺾어버린 의지는
오로지 사람만이 채워줄 수 있다.
[만추] 가을에 머무는 그녀. 이제는 겨울이 아니라 봄을 기다린다.
훈과 헤어져서 어머니를 찾은 그녀.
손수 접은 종이꽃을 보여주고,
지도로 자신이 있을 곳을 알려준다.
교도소로 도망치려던 애나가
어머니의 딸로 되돌아 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 바로 선다.
훈 덕분이다.
외로움이 무르익은 만추를
훈과 함께한 애나는
이제 다가올 겨울이 아니라 봄을 기다린다.
가슴 먹먹하게, 마음 졸이게 했던
마지막 엔딩장면...
훈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인사하는 연습을 하는 그녀의 모습.
훈이 오든 오지않든...
그녀는 겨울이 아니라 봄을 살아갈 것이다.
P.S
1_현빈이 아니라 탕웨이의 영화입니다. 즉, 만추는 애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2_스토리나 대사를 통한 재미나 감정을 보여주고 관객이 소비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화면, 흐린 시애틀의 날씨, 배우들의 표정, 목소리톤, 흐르는 음악...그렇게 "느끼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친절히 건내주는 방식에만 익숙하다면, 그 잔잔함에 지루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허나, 느끼기 시작한다면 영화내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러니, 취향 잘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아는만큼 보이는 영화도 있지만. 이 영화는 느끼는 만큼 스며드는 영화입니다.
3_지독한 외로움에 삶이 뿌리채 흔들리는 잔잔하지만 끔찍한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어쩌면, 인생 최고의 영화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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