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유쾌하며 유머러스하다... ★★★☆
이 영화가 피파 리의 로맨스를 다루고는 있어서 제목이 딱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피파 리의 인생 전반을 훑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피파 리의 지나간 과거가 딱히 드러내고 싶을 만큼 양지의 삶이 아니었던 만큼 영화 제목은 원제(은밀한 삶-Private Lives)를 그냥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적당해 보인다.
아무튼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유명한 출판인인 허브 리(알란 아킨)과 그의 아내 피파 리(로빈 라이트 펜)가 한적한 주택가로 이사와 지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참석한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피파 리의 요리솜씨, 정숙함,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관객들도 피파 리가 완벽한 현모양처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피파 리의 과거 회상은 그녀가 지금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혼돈과 방황의 시기를 거쳐 왔음을 알려준다.
어린 시절, 신경실적인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 자랐던 피파 리와 엄마와의 미묘한 갈등은 사춘기의 가출로 이어지고, 마약에 찌들어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피파 리와 엄마의 관계라든가 현실에서 피파 리와 딸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중년 여성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모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영화로서 더 적합한 듯 보인다. 왜냐면 모녀의 갈등과 화해가 이후 행동의 구체적인 촉발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웃에 새로 등장한 연하남 크리스(키아누 리브스)의 비중이나 그와의 로맨스가 영화 전체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피파 리의 행동을 촉발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죄책감’이다. 마약에 찌든 그녀 앞에 홀연히 중년 유부남인 허브 리가 나타나고, 피파 리는 중년 남성의 관심과 보호 속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그러나 허브 리와의 결혼을 앞두고 현재 부인인 지지 리(모니카 벨루치)가 보란 듯이 둘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고, 이후 피파 리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중압감에 짓눌린 채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는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억눌린 의식은 몽유병으로 외화되고,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그녀는 삶의 공허함에 힘들어한다. 그녀가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된 건 친구처럼 지내는 산드라(위노나 라이더)와 허브 리의 불륜을 목격하는 순간인데,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제일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 있다.
영화는 꾸준히 피파 리의 현실과 과거를 교차 편집하면서 그녀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나간다. 한 인간의 일생을 훑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매우 진지할 것이라는 예견은 버리는 게 좋다. <피파 리의 특별한 로맨스>는 의외로(?) 매우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며, 깔끔하고 세련되게 정리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알란 아킨, 줄리안 무어, 키아누 리브스, 위노라 라이더, 모니카 벨루치, 마리아 벨로 등 연기파 배우들이 요소 요소에 대거 출연하며, 이들이 망가진 듯 펼치는 코믹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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